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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畵僧들]〈7〉 명성 우일

기자명 법보신문

보응-일섭 두 금어 아래서 수학

<사진설명>범어사 팔상전 팔상탱.

명성 우일(明星 又日) 스님은 1910년 계룡산 아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922년 계룡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계룡산 동학사 성열(成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당시 최고 화승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보응 문성 스님을 친견하며 불화와의 첫 인연을 맺었다.

보응 문성 스님의 화소(畵所)에 들어가 습작을 시작한 명성 스님은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는데 출초를 혼자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자 보응 스님은 “너는 내 수제자 일섭의 제자가 되라”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세연이 그리 길지 않았음을 직감한 보응 스님이 제자의 앞길을 위한 세심한 배려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부터 보응 스님의 손제자요 일섭 스님의 제자가 된 명성 스님은 보응, 일섭 두 스님의 화소를 오가며 탱화와 불상조각, 단청 실력을 닦았고, 명성 스님의 재예가 경지에 오르자 일섭 스님은 제자와 함께 전국의 불사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명성 스님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독성도와 산신도를 시대별로 비교해 보면 스님의 작품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20대 초반에 그린 ‘금륜사 독성탱’(1933년 작)과 ‘동학사 미타암 산신탱’(1935년 작), 30대 중반과 40대 후반에 그린 ‘망월사 산신각 산신탱’(1945년 작)과 ‘천왕사 원통전 독성탱’(1959년 작)을 살펴보자.

‘금륜사 독성탱’은 화면 중앙에 나반존자가 한 손에는 지팡이를, 한 손에는 염주를 들고 앉아 있으며 한 동자는 찻물을 끓이기 위해 부채를 부치고 있고, 한 동자는 찻(물)잔을 나르고 있다. ‘천왕사 원통전 독성탱’ 역시 유사한 장면인데 왼손에 염주를 들고 있는 것은 같지만 오른손은 지팡이는 들지 않은 대신 땅을 짚고 있다. 나반존자가 약간 비스듬히 앉아 있는 모습니다.

‘금륜사 독성탱’은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두운 분위기가. 나반존자의 엄숙한 모습뿐 아니라 바위와 나무, 하늘과 구름을 표현한 방식에서 웬일인지 짙은 녹색과 밤색을 사용함으로써 ‘이른 저녁’을 표현한 것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다.

반면 ‘천왕사 원통전 독성탱’은 전체적으로 밝음은 여유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운무와 뒷산 역시 원근법으로 처리돼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직각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도 왼쪽에 작게 배치해 나반존자를 압도하지 않도록 표현했다. 나반존자 역시 꼿꼿하게 앉아 있는 금륜사 나반존자에 비해 약간 비스듬히 앉아 있고, 표정 또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한가로운 도인’을 연상시켜 부드러움을 한껏 표현하고 있다.

<사진설명>동학사 산신탱(왼쪽) , 망월사 산신탱(오른쪽).

따라서 ‘금륜사 독성탱’에 비해 ‘천왕사 독성탱’은 원근법과 톤 낮은 색채, 그리고 나반존자의 미소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밝고 여유로운 안정감 있는 도상을 선사하고 있다. 20대와 40대 필력에서 나온 것이리라.

‘동학사 미타암 산신탱’과 ‘망월사 산신각 산신탱’ 역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동학사 산신탱’에서 산신의 표정은 밝지만 나무와 바위에 사용된 색채는 어둡다, 어쩌면 산신의 표정을 부각시키기 위한 기법을 사용했을 수 도 있겠지만 이 처리는 결국 전체적으로 품격 높은 탱화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도록 하는 단점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옆에 앉아 있는 호랑에 역시 눈 처리가 매끄럽지 않아 ‘포효하는 사자’라기 보다는 ‘무엇인가에 놀란 듯한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망월사 산신탱’〈사진〉은 이에 비해 격조 높은 솜씨를 여실히 보여준다.

호랑이에 기대앉은 산신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도상이다. 무엇보다 산신의 표정에 주목해 보면 ‘동학사 산신탱’에 비해 입을 꾹 다문 표정이지만 망월사 산신이 더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다. 배경이 되는 뒷산 역시 밝은 톤을 사용하고 있으며 산신과 동자의 옷 주름 하나가지도세심하게 표현해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면서도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신심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연화사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화엄사 대웅전 신중탱’,‘내장사 대웅전 신중탱’ 등의 다양한 탱화 조성에 매진한 명성 스님은 감로탱화에도 남다른 솜씨를 보여주었다.

<사진설명>망월사 극락전 감로탱 부분도.

명성 스님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망월사 극락전 감로탱’〈사진〉에서는 재미있는 인물묘사를 엿볼 수 있다. 누각에서 지나가는 행렬을 지켜보며 합장하고 있는 11명의 귀족들의 세심한 인물 표현도 일품이지만 거리에 나와 있는 세계각국의 인물이 눈길을 끈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사람은 물론 아랍인들까지 그려 넣었는데 각국의 의상 특징과 함께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명패 달듯 일일이 글씨로 써 놓았다. 1945년 당시의 세간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이다. 또한 ‘연화사 대웅전 감로탱’에서는 화면 중앙에 ‘영산재 시현’을 그대로 표현해 놓았는데 나비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특히 명성 스님의 대표작이면서도 대작 중 하나로 꼽히는 ‘범어사 팔상전 팔상탱’〈사진〉(1978년 작)은 인물표현, 원근· 색채, 세밀함이 모두 조화를 이루고 있어 명성 스님의 필력이 절정기에 이르렀음을 시사하고 있다.

명성 스님은 세수 58세 되던 해 스승인 일섭 스님이 입적하자 “내가 시봉을 잘못한 탓”이라며 국가에서 내리는 일섭 스님의 무형문화재전승제자의 영예를 거부함은 물론 “앞으로는 나를 스승이라 부르지 말라”며 평생 불사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명성 우일 스님은 세수 89세로 입적했지만 스님의 제자들은 지금도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명성 우일 스님의 제자로는 조기환, 허길량, 김광열 씨 등이 있으며 조기환 씨는 탱화와 단청, 허길량 씨는 목조각, 김광열 씨는 목조각과 돌조각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제공 = 성보문화재연구원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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