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선 스님]등대와 불빛

기자명 법보신문

『육조단경』에서는 세상에 아무리 수행방법이 많아도 정혜등지가 되지 않으면 참다운 수행이 아니라고 하였다. 정과 혜는 마치 등과 불빛 같아서 등이 있으면 불빛이 있으나 등이 없으면 불빛이 없나니 등은 불빛의 몸이요 불빛은 등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나 몸은 본래 하나이니 정과 헤도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등은 등대라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평소에 알고 지내던 거사님이 조그만 항구도시에서 큰 목재상을 하면서 신심이 두터워 복지 시설에 큰 보시를 행하며 스님들 수행을 위해서도 많은 뒷바라지를 하며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사님은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지내고 오후에는 산에 가서 좌선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하면서 더 이상 만족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다. 점심 공양을 하고나서 거사님이 태어난 바닷가 마을에 인연이 있는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 하멜을 기념하는 등대를 자비를 들여서 웅장하게 세우고 자작시 한편을 짓고서 이름은 새기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했더니 “금강경에 이르기를 모든 장엄이 곧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이 장엄이라고 해서 부질없다”는 생각에 상을 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참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거사님이기에 겸손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그렇다면 평소에 마음을 어떻게 장엄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사업을 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일이 없지 않아서 사실은 미운 사람은 보고 싶지가 않다고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그럴 때에는 호흡을 관찰하며 향 한대를 피우면서 미운 마음을 태워 버린다고 하였다. 그러면 깊은 선정에 들어가게 되며 때로는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나타나서 더욱 신기 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깨어나고 보면 선정이 사라져 버리니 괴롭다고 했다. 사실은 몇 년 전에 전화로 이러한 사실을 물었을 때 나무꾼이 나무만 잘하면 됐지 따로 무슨 신통을 구하느냐고 했더니 당시에는 서운했는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좋고 나쁜 상대적인 생각을 떠나서 다시 고요한 마음을 구하고 있으니 이 마음 그대로 해탈인줄을 모른다. 그래서 보통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시끄러움이 오면 없애려고 선정으로써 다스리고, 마음이 고요하면 다시 무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신통이나 구하고 있으니 선지식을 만나지 않으면 벗어날 기약이 없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곧 알아차리고 따라가거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바로 돌이켜 화두를 챙기라고 일러 주었더니 벌써 알아차리고 그렇게 실천해보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화두수행이 이렇게 좋다고 하면서 하멜의 등대를 세운 것이 선정과 지혜를 등지하라는 육조스님의 가르침인줄 어찌 알았겠느냐며 정진을 다짐하는 거사님의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겨울의 문턱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북산에는 눈꽃이 만발하여 남쪽 바다 섬 마을 등대불과 마주했음이니 더 없이 상서로운 조짐이 아닐 수 없다.

밝음은 어둠으로 인한 밝음이요
어둠은 밝음으로 인한 어둠이니
밝고 어둠이 사라진 곳에
신령스런 마음달이 저 언덕을 비추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haejoum@ggseon.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