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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해인사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권오민
경상대 교수

강원의 특강 때문에 해인사에 며칠 머물게 되었다. 가을빛은 사라지고 있었지만, 차가운 기운과 눈을 시리게 하는 푸른 하늘로 인해 오히려 찬연(粲然)하였다. 새벽예불 후 미명에 드러나는 가야산의 첩첩의 실루엣도, 황혼에 비친 색 바랜 가을빛도 이 세속인의 마음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하였다. 읽을 책들을 싸들고 갔지만, 홍류동 계곡을 지나면서 부질없는 일이었음을 알았다.

해인사도 장엄하였다. 이삼 십 년 전의 기억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 그곳은 격세지감 그 자체였다. 그곳은 더 이상 ‘절’이 아니었다. 가야산 전체가 장엄한 수도원이었다. 한 걸음의 이웃에, 혹은 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암들이 웅대한 모습으로 턱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장경판전은 여전히 대웅전 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간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강주스님의 배려로 판전 안에 들어가 친견할 수 있었다.

판전에 들어서는 순간의 생각은 엉뚱하게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아! 하는 탄식과 전율에 따른 것이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는 인간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 새긴 이들의 불심과 공력, 혹은 판전의 과학적 원리 등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불타 깨달음에 근거하여 ‘진실’을 추구한 이들이 산출해낸 지식의 양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은 수미산보다 더한 무게로 압도하였다.

사간전에 봉안된 고려각판 2275매를 제외하더라도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봉안된 경판의 수는 81,258매. 앞뒤 양면에 판각되어 있으므로 이를 인경할 경우 대략 16만장, 접어서 제본하므로 물경 32만 쪽이 될 것이며, 표의문자인 한자를 표음문자인 한글로 번역할 경우 그것의 세 배가 될지, 네 배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단순계산에 의한 것이고, 거기의 말씀들은 거의 대개가 일상의 담론이 아닌 ‘진실’을 추구한 고도의 철학적 사유에 의한 것이므로 풀이되어 모습을 드러낼 경우, 그 양은 실로 수미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거기에는 도대체 무슨 말들이 쓰여 있는 것인가? 그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비전(이론)과 통찰(실천)에 관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막말로 인류가 산출한 어떠한 지식체계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찬탄과 예배만으로 족할 것인가?

몇 해 전 동국역경원에서 그것을 완역하였다지만, 과연 그것을 실제로 읽고 이용하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경장이나 율장은 확인해보지 않아 말하기 어렵지만, 논장의 경우 낯 뜨거운 것이 허다하다.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문장도 맞지 않을 뿐더러 뜻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무슨 말인지를 모르면, 불교의 진리는 원래 심오하기 때문이라거나, 내가 무식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오로지 말뚝 같은 신심으로 감내해 왔다.

단언하건대, 그것은 몇몇 사람이, 한문을 안다고 해서, 단편적인 교학의 이해를 갖고 있다고 하여 번역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마도 십 수년 훈련된 수백 명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장(玄 ) 역장(譯場)에 어떤 이들이, 몇 명이 종사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 번역된 것도 대장경 중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를 누가 감당해야 하겠는가?

시중에는 정서에 호소하는 가벼운 에세이 류의 불교서적이 넘쳐나고 있다. 그것을 불교의 모든 것인 양 여긴다. 상업주의에 편승하여 너도나도 그러한 글들을 쓰고, 또한 쓰고 싶어 한다. 해인사 장경판전 앞에서, 저 수미산보다 더한 지식의 보고(寶庫) 앞에서, “불교는 오로지 ‘마음’ 한 글자에 담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차라리 만용일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1059년 거란대장경을 간행한 요(遼)나라의 도종(道宗)은 그러한 만용을 불살라 버린 것일까? 해인사서 돌아온 오늘 이 아침, 미래 한국불교의 동량일 중앙승가대 신문 호외의 제목이 ‘팔만대장경을 팔아서라도 교육은 시켜라’(성철스님)였다. 은유였겠지만 매우 혼돈스러웠다. 다시 세간에 돌아왔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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