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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향내 나는 죽음

기자명 법보신문

하루해가 앞산을 지나가다가 가지 몇 개 남아 붉게 타고 있는 단풍나무를 만나서 아쉬운 듯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주춤거리고 있다. 한때 무성했던 것들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시간, 요즘 오래된 인연들이 병고에 시달리고 생사를 달리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수행을 점검해 본다.

부처님께서는 태자시절에 사대문 나들이를 하면서 생로병사의 모습을 최초로 목격했다. 특히 북문에서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보고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며칠 전에는 정년퇴임을 한 달 앞두고 평소에 남모르게 선행을 실천했던 아름다운 어느 소방관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이렇게 무상을 설하고 있지만 모두가 남의 일일뿐 자기 일이 되지 못하고 죽음에 임박해서는 허둥지둥 갈 길을 모르고 헤매게 된다.

더구나 ‘얼짱’ ‘몸짱’이라 하여 몸에만 치우쳐 몸이 나고 죽는 줄로 알고 좋은 것만 골라 먹으면서 영원히 살려고 한다. 조그만 고통이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쉽게 포기하는 일이 세계제일이라고 하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요즈음 어떻게 하면 잘 죽느냐의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부처님과 역대조사가 생사가 둘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생사가 둘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심이 되어야 한다. 몸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 앞에 갑자기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보이는 것에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끼고, 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하면 본래 하나인 세계를 체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의 출발점은 죽음의 자각으로 시작해서 생사일여의 세계를 체득하고 생사를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수행자가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간절히 화두를 챙겨야 하는데 발심이 되지 않으면 진흙 밭에 빠진 것처럼 참으로 어렵기 때문에 한없는 참회를 통해서 무상이 신속함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은 쉽게 타협할 수 없는 공부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지식을 만나지 않으면 급한 마음에 몸은 무상한 것으로 보고 마음은 항상하다는 생각에 묶여서 몸을 핍박하고 마음을 아트만처럼 실체가 있는 것으로 상정해 놓는다.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이 일어날 때면 상정해 놓은 마음속으로 피하여 참 성품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 아무리 오랜 세월을 보낼지라도 잠복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얼마 전 참으로 향내 나는 죽음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일 선생을 모시던 보살님이 선생이 돌아가셨는데 너무나 편하게 가셨다고 하였다. 지난 여름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선원을 방문하여 수련생들을 격려해 주었을 때 암울했던 지난 시절 박치기 왕 김일 선수라는 화려했던 옷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이제 부터는 삶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 한다고 했더니 그간 잘 실천을 해서 너무나 편하게 가셨다고 한다. 선생에게 감명 깊게 들었던 이야기는 힘들고 험한 운동을 하면서도 보신 한다는 핑계로 산 생명을 함부로 죽인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항상 부처님의 가피력에 감사한다고 하였다. 참으로 생명을 사랑하였기에 그처럼 편안한 임종을 보여 주었던 것 같다.

하늘이 바다에
도장을 찍었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haejoum@ggse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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