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경 스님] 달팽이 뿔

기자명 법보신문

세상사 달팽이 뿔 위의 다툼 일뿐

양나라의 현인인 대진인이 위나라 왕을 만났다. 당시는 춘추전국시대로써 작은 나라들끼리 끝없이 물고 물리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하며 나라의 존폐를 건 전쟁에 골몰하던 때였다. 그가 하루는 왕에게 물었다.

“이른바 달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시는지요?”

“알지.”

“그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나라를 세운 이가 있는데 촉씨(觸氏)라 하고, 그 달팽이의 오른쪽 뿔 위에 나라를 세운 이가 있는데 만씨(蠻氏)라고 합니다. 그들은 가끔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움을 일으켜서 사상자가 수만 명이나 됩니다. 혹 도망자가 있으면 보름 동안이나 추격을 할 정도로 치열합니다.”

대진인의 말을 듣고 있던 왕이 웃으며 말했다.

“어허, 그런 거짓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오?”

대진인이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왕께서는 저 사방과 상하의 우주가 다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함이 없을 것이네.”

“다함이 없는 우주에 노닐던 사람이 돌아와 인간세계의 여러 나라를 돌아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들이 극히 작아 보일 것입니다. 심지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겠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겠지.”

“사람이 살고 있는 여러 나라들 가운데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가운데 그 서울인 양(梁)이 있고, 양 가운데 왕인 당신이 계십니다. 그러면 왕께서 저 달팽이 뿔 위의 촉씨나 만씨와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다를 것이 없겠군.”

여기서 대화를 그친 대진인이 물러갔다.

그러나 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르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혜자가 들어가 왕을 뵈었다. 왕이 말했다.

“지금 왔던 그 손님은 실로 큰 인물이다. 성인도 그를 당할 수 없을 것이다.” 『장자』
풀잎에 매달려 있는 달팽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장자는 해학적으로 이를 확대하고, 인간세를 축소했다. 그러니 세상사 달팽이 뿔처럼 크기를 다투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일상의 시각을 한번 바꿔서 사유해본다면 이런 우화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연 이틀 내리고 있다. 약사전 뜰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쏟아놓은 낙엽을 쓸기 위해 벌써 몇 차례 대중 운력을 했다. 경복궁 돌담을 따라 길가에 늘어선 은행나무가 물들어가고, 그 잎이 떨어지는 이즈음이 이곳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기도 하다. 그 감당할 수 없이 많은 낙엽을 청소부는 새벽이면 혼자 묵묵히 쓸어갔다. 바람이 모아 놓은 낙엽을 다시 흩어 놓기도 하고, 바닥의 것 보다 더 많은 잎이 흰 눈처럼 청소부 비질 뒤로 쌓이기도 하지만, 그는 ‘또 쓸면 그만이지’하듯 무심하였다.

강원 산간엔 벌써 여러 차례 눈이 왔다하고, 또 한때가 지나가는 이즈음, 우리가 매달린 달팽이 뿔은 어떤 것일까?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dharmak@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