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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고려-항주의 교류史를 돌아보며

기자명 법보신문

푸른 서호에서 만난 눈푸른 의천의 향기

<사진설명>맑은 날 서호는 뱃놀이를 나온 휴가객들로 한껏 흥청이는 분위기에 빠져든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푸른 하늘과 푸른 호수, 그 사이에 우뚝 솟은 보숙탑과 그림 같은 전각들, 아름다운 다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우러져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연출한다.

‘…성현은 몸을 돌보지 않고 도를 사모하니, 저 당나라 현장 법사가 서역으로 가시었고 의상 조사가 중국에 건너가셨거늘 단지 편안한데 주저앉아서 스승 구하기를 힘쓰지 않는 것은 출가의 본의가 아닙니다.… 다음해 4월 경오일 밤에 국사는 상과 태후에게 글을 남긴 채 미복으로 상선에 몸을 싣고 떠났다.…’ -영통사 ‘대각국사비명병서’ 가운데.

정주(貞州, 지금의 개풍군 대성면 풍덕리)에서 평민의 복장으로 배에 몸을 실은 고려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출렁이는 서해 바다를 가로질러 중국 땅에 닿기까지는 몇날 며칠이 걸렸을까. 미처 생각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파도 한 점 없는 바다처럼 드넓은 대평원 한 복판 상해공항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상해까지 비행시간은 불과 두 시간, 이제는 인천-항주 간 직항노선이 개설돼 상해에서 항주까지 차로 두어 시간을 더 이동해야하는 불편함마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상해 남쪽으로 약 151km 떨어져 있는 항주는 중국 8대 고도(古都)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10세기 중국 오대시대에는 오월국의 수도였고 남송 시대엔 다시 남송 왕조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항주에는 지금도 화려하고 풍요했던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휴양도시

중국 사람들은 항주를 소개할 때 이 말을 빼놓지 않는다.

“하늘엔 천당이 있고 땅엔 소항이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소항이란 소주와 항주를 이르는데 특히 항주에는 ‘인간 천당’이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아열대 계절풍성의 따듯한 기후 지역인 항주에서는 예부터 벼농사의 2모작이나 3모작이 가능해 먹을 것이 풍부하며 누에를 키워 비단을 직조하는 기술이 일찍이 발달해 ‘비단의 고향’으로 불린 만큼 헐벗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진, 태풍, 가뭄,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이곳 항주만은 피해가는 것도 이 땅에 그런 별칭을 안겨주었다. 여기에 중국을 대표하는 호수 서호가 있어 아름다운 풍광까지 갖추었으니 항주는 오늘날까지도 중국을 대표하는 ‘동방 휴가의 도시’로서 명맥을 잇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찍이 마르코폴로도 항주에 머물며 이곳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설명>항주에 머물렀던 대각국사 의천 진영.

항주에는 서호 외에도 전단강이 흐르고 경항운하가 있어 예부터 뱃길이 잘 발달됐다. 항주라는 명칭 또한 ‘배가 많은 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배보다 자동차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항주는 상해시민들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지다. 주5일제 근무제가 정착돼 있는 중국에서 한 주의 마감인 금요일 저녁이 되면 부유한 상해 시민들은 차를 몰고 이곳 항주로 온다. 주말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서다. 덕분에 이맘 때 즈음이면 상해에서 항주로 이어지는 도로는 몰려드는 차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항주는 중국의 대표적인 차 생산지이기도해 서호 변에서 하루 종일 차를 마시며 마작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주말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항주에는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오는 날에도 좋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물이 많은 항주에는 안개 끼는 날이 많은데 맑은 날이라면 아침저녁을 말할 것도 없고, 혹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린다 하더라도 여전히 풍광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항주에 도착하고부터 계속해서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항주 사람들은 비오는 것을 길조로 여긴다고 하는데 자전거까지 푹 덮이는 널찍한 비옷을 입고 자전거 패달을 밟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곳이 중국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광동성 다음으로 부유한 절강성의 성도 항주의 거리엔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온갖 종류의 고급 승용차들이 넘쳐난다. 벤츠, 아우디, BMW 등 우리나라에서도 부유층이나 소유할 수 있다는 고급차들이 거리를 가득 매우고 있는 모습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동남불국’ 별칭, 불교 융성

항주의 역사가 말해주듯 예부터 이곳은 많은 물류가 모이는 교통의 요지였다. 풍부한 물류와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문화의 발달도 가져왔고 10, 11세기에는 고려와의 교류 또한 매우 활발했다. 특히 중국 오대시대의 오월 때부터 절강성 지역엔 불교가 흥성하였으며 특히 항주에는 ‘동남불국’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불교가 번성해 있었다.

고려 의천 스님이 구법을 위해 송으로 들어왔을 때 중국의 황제가 스님을 이곳의 혜인선원으로 보낸 것은 그만큼 항주가 불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혜인선원에는 의천 스님이 고려에 있을 때부터 서신을 주고받았던 정원 법사가 주석하고 있었다. 혜인선원은 의천 스님을 맞이하기 위해 혜인교원으로 사찰의 성격을 바꾸었으며 지방 관리는 혜인교원에 대해 조세를 면제했다고 하니 의천 스님을 맞이하는 예가 얼마나 극진했던가를 미뤄 짐작할 만하다.

의천 스님이 중국에 머물렀던 기간은 총 14개월이다. 이 기간 동안 스님은 여러 사찰과 성지를 참배하며 도를 구하거나 불사를 돕기도 했는데 의천 스님의 이런 행적은 영통사에 남아있는 ‘대각국사비명병서’에도 잘 남아있다.

‘…처음 밀주(密州)에서 변경에 이르고 다시 오월(항주)을 왕래하기를 14개월이었다. 그동안 명산 승경의 여러 불적에 예참하지 않음이 없었고, 만난 고승 50여 인에게 또한 일일이 법요를 물었다.…또한 황제로부터 받은 금은 비단, 그리고 국왕과 인예태후(모후)가 붙여 보낸 재보가 수만금을 헤아리었는바, 이것을 모두 도량과 법을 들은 많은 법사들에게 베풀었다.…’

<사진설명>항주의 옛거리. 남송의 수도였던 항주에는 고풍스런 옛 시대의 건물들이 잘 보전돼 있어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를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민간차원의 외교활동이라 할 만하다. 의천 스님은 고려로 귀국한 후에도 혜인교원에 경전과 불사금을 보내는 등 지속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로 인해 혜인교원은 혜인고려사, 고려사로 다시 한 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의천 스님의 이 같은 활동은 송과 고려 간의 불교 교류를 더욱 왕성하게 만들었다 볼 수 있다.

의천 스님은 고려로 돌아간 후 다시 스님들을 고려사에 보내 이미 입적한 정원 법사의 사리 일부를 고려로 가져가 모시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당시 항주의 관리로 파견돼 있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이것이 송나라의 정세와 민심을 파악하기위한 의도라 여기며 황제에게 이를 허락하지 말 것을 청했다. 하지만 황제는 소동파의 뜻을 물리치고 의천 스님이 사리를 나누어가도록 허락했다. 의천 스님과 고려사, 고려에 대한 송 황실의 신뢰와 우호가 얼마나 깊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날 항주에서 고려, 의천 스님, 혹은 고려사의 자취를 손에 넣기란 힘든 일이다. 고려사가 복원돼 잊혀져있던 역사를 다시 깨운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법을 구하는 틈틈이 서호 변 어느 오솔길을 거닐며 고국 고려와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릴 모후, 그리고 그리운 인연들을 떠올렸을 의천 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니 가느다란 빗줄기에 잠긴 서호가 더 없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흠뻑 물기를 머금은 안개 속 항주가 다시 문을 열어 한국 불교와 반가운 재회의 악수라도 나눈 듯 해 설레는 맘으로 중국 10대 명찰 영은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중국 항주=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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