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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중국ㆍ일본 禪學 연구의 거목…지난달 타계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선학계의 석학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선생이 향연 83세로 지난 11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올초에 건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던 야나기다 선생께 나중에 다시 찾아뵙고 그 동안 공부한 것을 말씀드리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열반에 들어 어디서 뵐 수 있을지 마음이 황량해진다. 선의 철학화를 내세운 교토학파(京都學派)의 영향권에 있었으면서도 독자적인 중국선의 해석으로 인해 야나기다류의 학풍을 세운 그의 공적은 불후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야나기다는 1922년 시가현(滋賀縣)에 있는 연주사(延壽寺)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이 사원이어서인지 어릴 때부터 불교에 심취하기 시작해 15세 때는 임제(臨濟)학원전문학교〔현재 하나조노(花園)대학의 전신〕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임제종(臨濟宗)의 사찰인 영원사(永源寺)에서 스승의 지도로 참선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오타니(大谷) 대학에서 공부한 후 하나조노 대학, 교토(京都)대학의 인문과학 연구소, 중부(中部)대학의 교수를 두루 역임하면서 중국선종에 대한 연구와 거의 모든 방면의 선적(禪籍)을 텍스트로 한 해석을 내놓았다. 해인사의 승가대학에서 강연을 하는 등 한국에도 자주 왕래하여 한국의 승려와 불교학자들과의 교류도 두텁게 쌓았다. 그 동안 수십 권에 이르는 역서, 저서와 수백편에 이르는 논문은 선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저서로 『초기선종사서(初期禪宗史書)의 연구』, 『임제(臨濟) 노트』, 『잇큐우(一休) 광운집(狂雲集)의 세계』, 『선과 일본 문화』 등은 중국선불교의 사상적 가치를 재발굴함과 더불어 일본선불교의 약동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역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야나기다는 수행과정에서 임제선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인 입장에서 교파에 소속되거나 종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의 직장이 임제종의 종립대학인 하나조노 대학인 관계로 임제종과의 깊은 관련은 부인할 수 없으나, 학문적인 세계에서만은 선의 세계가 지향하는 대자유ㆍ대해탈의 기쁨을 만끽하며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문과 선 정신의 접목은 일찍이 그의 학문적 스승인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 1889~1980)의 영향이 크다.

니시다 키타로오(西田幾多郞, 1870~1945),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1870~1966), 니시다니 케이지(西谷啓治, 1900~1990), 히사마츠 신이치. 이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근대의 불교와 종교연구에 있어, 특히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선에 심취한 사상가들이다.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야나기다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1939년에 출간된 『동양적 무(無)』로 유명한 선철학자인 히사마츠는 야나기다의 학문과 정신의 스승이었다. 야나기다는 히사마츠의 ‘각(覺)’ 사상에 심취하는 한편 FAS 선(禪)운동에 참여하였다.

FAS 선운동은 히사마츠가 말하는 각의 입장에서 절대자와 자신의 동일성에 바탕한 삶 속의 깨달음을 향한 대승선 운동이었다. 이것은 원래 히사마츠에 의해 조직된 쿄토대학의 학도도량(學道道場)에서 출발하였는데 그 표어가 FAS이다. 즉 ‘형상없는 자아〔Formless self〕에 눈뜨고, 전 인류의 입장〔All mankind〕에 서서, 역사를 넘어서 역사를 창조〔Superhistorical history〕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개인적인 종교의 세계를 넘어서 무아무불아 무가무불가(無我無不我 無家無不家)의 세계, 즉 나가 아님에 나 아님이 없고 내 집 아님에 내 집 아님이 없는 인류공생의 깃발을 내건 운동이었다. 야나기다는 이 운동의 영향으로 종파를 떠나 자유로운 연구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적 기반 위에서 그는 중국선종의 연구에 있어 비판적 자료연구를 통해 선종의 텍스트가 그 시대의 요청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간파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중국의 『임제록(臨濟錄)』, 『조주록(趙州錄)』, 고려시대에 간행된 『조당집(祖堂集)』, 일본의 『정법안장(正法眼藏)』, 『광운집(狂雲集)』 등의 해석을 관통하는 야나기다 해석학의 세계를 형성하였다.

야나기다는 위앙종(仰宗)이 중국에서는 일찍이 자취를 감추게 되지만 해동(海東)에 전해져 한국인의 기질에 적합한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정착되었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언급하고 있다.

처음에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을 읽었을 때, 철저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설에 놀랐고, 진귀조사(眞歸祖師)의 전등설(傳燈說)에 말문이 막혔는데 지금 새롭게 유래를 알고 보니 중국에서 5가(家)의 제1진(陣)이 되는 위앙종이 태어나 바로 해동에 정착하니 중국에서 그 전통이 끊어진 사정을 알겠다. 이는 조계(曹溪)의 현지(玄旨)였으며, 고려의 조계종도 동근동종(同根同種)의 선불교이다. 조계종(曹溪宗)은 규봉종밀(圭峰宗密)에 의해 선교일치를 지향하는 한편, 대혜(大惠)의 간화선를 받아들여 수도론(修道論)의 정채(精彩)를 더한다.

나옹(懶翁), 태고(太古)이후의 간화선에 독자적인 것으로 보아도 좋은가 어떤가. 평가는 스스로 내리는 것이 좋겠지만, 마침 몽산덕이(蒙山德移)의 텍스트가 널리 유포된 것은 이미 지적한대로이다. 대유령상(大庾嶺上)의 대화가 이 시기 처음으로 단경(壇經)에 들어온다. 이에 비해 해동의 선불교는 교외별전과 선교일치(禪敎一致)의 비할 데 없는 긴장감을 반복한다. 1000 년에 걸쳐 일어난 일대 드라마인 것이다.

야나기다가 일역(日譯)을 하고 쓴 「『선문보장록』의 기초적 연구」의 해제(解題)에서 언급한 것이다. 이는 한국, 중국, 일본에 걸쳐 있는 관련문헌을 철저히 검증하고 고증한 가운데 야나기다의 육성이 그대로 손으로 흘러내려 쓰여진 것이다. 이러한 언급은 바로 야나기다가 시대적인 문맥을 텍스트의 사실(史實)보다도 중시했던 학문적 자세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불교세계의 대화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또 하나의 자세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쿄토의 동쪽을 남북으로 흐르는 카모가와(鴨川)강변을 산책하던 야나기다 선생을 만날 때마다 필자를 붙들어 세워놓고 한국불교의 과거와 현재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늘 힘주어 얘기하던 선사와도 같은 그의 풍모가 떠오른다. 또한 앞으로 발해의 불교사가 미개척의 영역이므로 뒷세대들이 여기에도 힘썼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내놓곤 하면서 후학들에 대한 기대, 특히 한국의 유학생들에 대해 보여주었던 따뜻한 애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야나기다는 서양에 선을 알린 스즈키 다이세츠의 가르침에 대해 늘 고마워했다. 특히 1985년에 출간한 『선과 일본문화(禪と日本文化)』는 스즈키에 의해 2차 세계대전 중에 출간된 대표적인 저작과 공교롭게도 같은 제목을 가지게 되었다. 스즈키는 줄기차게 선불교를 매개로 한 일본적 영성(靈性)을 외쳐왔는데, 야나기다는 이 저서가 내외의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한편으론 세계대전 중에 일본을 이해시키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제 본인이 그 제목을 물려받아 선의 본질과 그 위에 꽃핀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선의 사상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말하곤 했다.

일본문화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전후(戰後) 선의 정신에 바탕한 탐구를 통해 해소시킴과 동시에 인류의 보편문화로 승화시킬려는 작업은 우리 한국의 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일본 불교사상가들의 굵직굵직한 삶의 행보는 우리에겐 다시 한번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이 지면을 빌어 고인의 명복을 빈다.
 
원익선(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발해불교는
  동아시아 불교의 공백
  후학들의 열정 기대돼”


야나기다 교수 인터뷰

[다음의 인터뷰는 필자가 돌아가시기전에 야나기다 선생을 만나 질문하고 답변들은 것을 재구성한 것이다.]

필자 : 정년퇴직을 하시고도 쉬지 않고 저술활동을 하시고 계시는데 그 힘은 무엇입니까?
야나기다 :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고, 예전의 저작을 볼 때마다 다시 고쳐 쓰지 않 으면 안 될 것도 산더미처럼 많이 있어요. 새로운 착상이 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원고를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서 밤과 낮이 따로 없습니다.

필자 : 연구를 하시면서도 계속 선수행을 하고 계십니까?
야나기다 : 요즈음은 몸이 충실하지 못해 실제로 좌선 수행은 하지 못하고 부끄럽지만 와선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선중에서도 좌선이야말로 선의 요체에 해당됩니다. 허리를 곧게 펴서 세우고 결가부좌의 자세로 자신을 수행자의 모습으로 가다듬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기본입니다.

필자 : 발해불교에 대한 연구는 불교사 연구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있습니까.
야나기다 : 거의 미개척 분야이므로 연구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일본과의 불교교류면에서 우리가 이제까지 접하지 못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상당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불교 연구의 커다란 공백이므로 후학들의 열정을 기대합니다.

 

대표적인 저술

『초기선종사서(初期禪宗史書)의 연구』, 호오조오칸(法藏館), 1967.10
『선의 어록(語錄)』1ㆍ2ㆍ3, 치쿠마 서방(築摩書房), 1969.3ㆍ1971.3ㆍ1976.6
『불교강좌-임제록(臨濟錄)』, 다이조오 출판(大藏出版), 1971.11
공저『선의 어록16-신심명(信心銘), 증도가(證道歌), 십우도(十牛圖), 좌선의(坐禪儀)』, 치쿠마 서방(築摩書房), 1974.7
『일본의 선어록-무소오(夢窓)』, 코오단샤(講談社), 1977.11
『순선(純禪)의 시대-조당집(祖堂集) 이야기(ものがたり)』, 하나조노(花園)대학 선문화 (禪文化) 연구소, 1984.7
『선과 일본문화』, 코오단샤(講談社)학술문고, 1985.10
『선입문7-잇큐유(一休) 광운집(光雲集)』, 치쿠마 서방(築摩書房), 1994.5
공저『불교의 사상ㆍ무(無)의 탐구-중국선』,카도가와 서방(角川書房) , 1996.2
『달마의 어록-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호오조오칸(法藏館), 1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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