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각가 이 수 천

기자명 법보신문

만해의 시 한수가 예술의 불씨 당겨

서사 이미지 응축한 문자 눈길
대리석-벽돌 색감 효과도 압권

<사진설명>돌을 깍고 자르는 육중한 기계 앞에서도 미소를 보이는 작가. 그의 심성 속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균형있게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겨울답지 않은 푸근한 날씨다. 이렇게 춥지 않은 겨울날은 어쩐지 행운 같다. 한 해의 마지막으로 마냥 기울어가는 시점에 몇 차례 약속을 다시 정한 후에야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올해 마지막으로 찾아나서는 이 길에 여전히 채한기 기자와 함께 했다. 그간 법보신문에 ‘불교미술인을 찾아서’란 코너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적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다녔다. 다행히 이 춥지 않은 겨울날 양평을 지나 용문에 있는 지평이란 곳에 위치한 이수천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이름이 너무 크고 깊어 보인다. 특히 여자로서는 의외의 이름이다.

양평과 용문 주변은 상당수의 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공간이다. 서울 주변에 이토록 많은 수의 작가들이 모여서 작업실을 꾸미고 저마다 자기 작업에 몰입하는 곳은 드문 예다. 따라서 작가를 찾아 이곳에 참 많이 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이곳에 왔다. 이수천의 작업실은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작업실과 살림집이 한데 모여 있는데 그 아래로 작은 마을이 평화롭게 놓여있다. 2층 방(일명 다실)에서 내다본 지평의 겨울 풍경이 그야말로 ‘예술’이다. 작가는 늘 그 창을 통해 자연의 변화와 사람 사는 모습의 기미를 일러 받으면서 이를 작업으로 끌어올리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나는 이 방을 만들고 꾸민 작가의 안목과 솜씨에 마냥 놀라워하면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사진설명>충만.(68X29X64, 대리석)

작가가 끓여준 차를 음미하면서 조각품 몇 점과 오석으로 만들어놓은 돌 온돌(마치 돌침대 같은 이 판석 안에는 별자리와 그 별의 이름들이 음각으로 각인되어있다) 등을 보았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만들어진 이 판은 우주를 깔고 앉거나 베고 누워 큰 꿈을 꾸려는 작가의 마음의 지도를 읽게 한다. 그런가하면 거대하고 무한한 것을 늘상 염두에 두고 작고 미욱한 인간 존재를 성찰하려는 견인력 같은 것을 감지케 한다. 새삼 이 작가의 이름인 수(壽)와 천(天) 두 글자를 떠올려본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성과 함께 메시지와 의미망으로 촘촘히 직조되어 있고 아울러 한국 전통문화의 접목 아래 조율되는 작업세계를 보여준다.

이 작업실, 작업을 구상하는 방은 마치 선방처럼 차분하고 정갈하기 그지없다. 최소한의 기물만이 자리하고 있고 방 가운데에 창 하나를 두어 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쇠락한 겨울풍경이지만 오히려 이 헐벗고 쓸쓸한 풍경이 모든 것을 비우고 가라앉히며 놓아버리도록 이끈다. 겨울풍경은 산 자들을 고요하게 한다. 명상에 잠기거나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에는 겨울만한 계절이 없다. 작가의 작업 또한 그런 맥락에서 하나씩 몸을 내민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이후 이태리 까라라로 가 오로지 대리석과 함께 한 시간을 보내고 귀국했다고 한다.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해 이를 이겨냈다고 하는 작가에게 작업은 유일한 희망 같아 보인다. 청소년기에 우연히 만난 한용운의 시와 그로인한 불교에 대한 관심이 평생 작가의 의식과 작업방향을 규정 지워 주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난 불교의 조각적 해석이, 나아가 그런 영향으로 인해 형성된 정신주의적 태도나 성찰이 이 작가의 작업이 되고 있다.

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그의 작업은 불교적 사유와 정신세계의 반향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위에 한국의 전통 조각적 요소들을 결합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 얹혀져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조각에 문자가 적극 개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자는 이미지와 함께 메시지를 증폭시키고 그 주제와 이념을 보다 선명하게 각인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것 자체로 흥미로운 조형요소로 나앉아있다.

이 작가의 작업은 매번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이를 곰곰이 궁구하는 과정에서 풀려나온 작업들로 보인다. 첫 개인전 주제어는 ‘세간과 출세간’이었다. 윤회세계에서의 깨달음이 출세간적 경지일 텐데 작가는 작업을 통해 그런 꿈을 소망한다. 그 다음에는 여시아문(‘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같은 식이다. 이 당시 작업은 불교적 색채가 강렬하고 직접적인 편이다. 특히 법문의 조형화는 문자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여 이미지와 문자를 조각 세계로 수렴하고 있다. 이후 근작에 와서는 여전히 종교성 짙은 의미가 드리워져 있지만 그 보다는 자신의 담담한 일상에서의 느낌, 자아 반영적이고 투영적인 이야기를 조형화하는 쪽으로 좀 더 기울어있어 보인다. 좌대·박스형의 지지대 위에 가시나무 조각이 놓여있는데 가시나무 본체나 좌대의 상단에는 문자가 새겨져있다.

작고 메마른 뼈다귀나 깡마른 육체를 연상시키는가 하면 의인화된 존재성, 작가의 자화상으로 다가오는 이 가시나무는 드러누워서 가만히 지난 시간의 기억을 마치 누에가 실을 풀듯이 풀어내고 있다. 달력과 책, 바다와 강을 배경으로 가시나무 조각은 처연하게 누워있다. 그 어딘가에 아주 작은 문자들이 정교하고 예민하게 새겨져있는데 이미지와 문자의 이 같은 결합은 읽는 조각, 문자를 손으로 더듬어 인지하고 싶다는 촉각성의 유혹을 강렬하게 불러일으키고 더불어 마치 실제 인쇄된 문자처럼 다가오고 가시나무 그 자체로 착각되는 일루젼의 강조, 모종의 문장이나 서사를 응축하고 있는 상황성 등이 절제된 조형형언어로 구사되고 있다.

재료는 모두 대리석이며 그 중에서도 오석이 주를 이루는데 이 오석이 갖는 색상과 단호함의 재질성이 사유의 결정이나 응축과 잘 연결되어 보인다. 한편 오래된 벽돌을 구해 이를 결합하고 조립해서 만든 형상들도 독특한 재료의 성질과 색감에서 효과적으로 보인다.

작가의 선방, 다실을 나오면서 별자리가 선회하는 그 온돌 판에 앉아 명상에 잠기고 또 그것이 자연스레 작업구상으로 옮겨 앉아가는 작가의 일상이, 그 삶과 작업의 수행이 손에 잡힐 듯하다.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