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中. 항주의 사찰들

기자명 법보신문

향훈 가득한 사찰엔 ‘최대-최고’도 즐비

<사진설명>영은사 대웅보전에 봉안돼 있는 24.8미터의 목조 석가모니불. 사진은 중국여행출판사가 발행한 「영은사」에 수록된 대웅보전 전경이다.

아름다운 호수 서호를 품고 있는 항주는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또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서호의 아름다움 가운데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10가지 절경 즉 ‘서호10경’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항주에서의 일정은 빠듯해진다. 하지만 사계절을 모두 서호에서만 보낼 수 없으니 서호 10경은 일찌감치 접어두고 서호 주변의 아름다운 고찰들로 눈길을 돌려본다.

서호는 삼태산, 보석산, 옥황산, 남병산 등 주변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그런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들도 많이 있다. 어느 사찰부터 가야할까 고민을 하고 있으면 중국 사람들은 “연기 많이 나는 사찰로 가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중국 사람들이 사찰에서 유독 향을 많이 피우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상을 접하고 나면 그야말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향연기 없으면 인기없는 절

우선 향의 크기도 우리의 것과는 달라 작은 것이 젓가락 굵기 만하고 큰 것은 연필만큼이나 굵은 것이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우리처럼 촛불로 향을 피우는 것은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사찰마다 전각 앞에는 향을 붙일 수 있도록 불이 활활 타고있는 대형 화로가 마련돼 있는데 이 속에 향을 한참 넣어 불을 붙인 다음에 힘껏 흔들거나 비벼서 횃불처럼 타는 향불을 꺼야 한다. 그러고 나면 향 연기가 타오르는데 그 연기가 얼마나 많은지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불이라도 난 모양새다. 중국 사람들이 이처럼 한꺼번에 한 다발씩 향을 피우는 이유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복을 한꺼번에 빌기 때문이란다. 향 한대가 한 사람을 상징하니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에 이웃사람들 몫까지 한꺼번에 다 축원을 해주려면 한다발 갖고도 모자랄 법 하다. “향 연기가 나지 않는 절은 인기가 없는 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사찰은 하루종일 향 연기에 휩싸여 있으니 기관지가 약하거나 감기에 걸린 사람이라면 미리 적절한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진설명>영은사는 북적이는 참배객들로 하루도 한산할 날이 없다.

서호 주변의 대표적인 사찰로 첫 손에 꼽히는 영은사는 중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서기 326년에 세워졌으며 전성기 때에는 사격이 천 여 칸에 달했고 3000여 명의 스님들이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중국 10대 명찰 가운데 하나인 영은사는 경내의 크기만도 불국사의 네배에 달한다. 휴가 때는 하루 10만 여명, 평소에도 하루 평균 1만여 명이 영은사를 참배해 넓은 경내는 어느 곳이나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대웅전은 비록 맑은 날이라 할지라도 흡사 안개에 휩싸인 듯 향연기로 뒤덮여 있다. 천왕전, 대웅보전, 약사전, 장경루 등 수 십 동의 전각이 첩첩이 들어서 마치 산을 이루는듯 하다. 장경루에는 영은사의 갖가지 보물들이 전시되고 있으며 최근에 새로 조성된 오백나한당에는 순동으로 조성된 나한상들이 모셔져 있다. 나한상 한 분마다 무게가 1톤에 달한다고 하니 오백나한당 안에는 무려 500톤에 달하는 나한상들이 모셔진 셈이다.

영은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높이 209미터의 거대한 석회암 봉우리인 비래봉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불보살상이 빼곡히 조각돼 있는 이 비래봉은 보는 이들에게 더 없는 신비감을 주고 있는데 그런 감흥만큼이나 신비로운 전설을 품고 있다.

영은사는 1600여 년 전 인도의 스님 혜리가 항주에 왔다가 이곳의 산세를 보고는 “신선의 영이 이곳에 깃들어 있다(仙靈所隱)”며 사찰을 세우고 영은사(靈隱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영은사를 창건한 혜리 스님이 이곳에 왔을 때 인도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석회암 봉우리가 있는 것이었다. 혜리 스님은 이 봉우리가 인도에서 날아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는 혹 이 봉우리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봉우리 곳곳에 불보살상을 조각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이 석회암 봉우리가 인도에서부터 날아 이곳에 왔다하여 ‘비래봉(飛來峰)’이라 불렀고 오나라와 송, 원나라를 거치며 하나둘씩 조각해 넣은 불보살상이 지금은 330여 개에 달하고 있다.

영은사는 ‘운림선사’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데 대웅전 앞 천왕전에는 이 애칭을 담은 편액이 하나 걸려있다. 이 편액은 강희황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남쪽지방을 순찰하던 강희제가 이곳 영은사를 방문했을 때다. 주지 스님은 황제를 맞은 기쁨에 황제에게 사찰 이름을 써 달라고 부탁했고 기분이 좋아진 황제는 급히 글을 쓰느라 영(靈)자의 비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우(雨)자를 너무 크게 써버리는 실수를 했다. 황제 체면에 현판 글씨 하나를 제대로 못 쓰는 망신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황제가 당황하자 이를 눈치 챈 신하가 먹을 갈아주는 척하면 손바닥에 운림(雲林)이라는 글씨를 써서는 슬쩍 황제에게 보여주었고 이를 본 강희제는 빙긋 웃음을 지으며 일필휘지로 ‘운림선사(雲林禪寺)’ 네 글자의 현판을 완성했다. 황제는 완성된 글씨를 가리키며 “서호에 피어난 구름이 숲을 이루고 있는 절”이라는 그럴 듯한 설명까지 덧붙여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항주 북고봉에 올라 술을 한잔 마신 황제가 취한 상태에서 글을 쓰다 실수한 것이라고도 하는데 그러고 보니 첫 글자인 ‘운’자의 서체가 빠르고 활달한데 비해 뒤에 오는 ‘림선사’ 세 글자는 다소 침착해 보여 이런 이야기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운림선사’엔 유쾌한 전설이

<사진설명>영은사 입구에 있는 비래봉. 330여 개에 달하는 불보살상이 조각돼 있다.

이곳 역시 ‘중국’ 답게 크기 면에서 보는 이를 압도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웅보전에는 높이가 24.8미터에 달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봉안돼 있어 고개를 힘껏 젖히지 않고는 상호를 바라보기가 버거울 정도다. 중국에서 제일 큰 나무로 조각한 좌불상이라고 하는데 이 대웅보전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높이만도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다.

대웅전 앞 오백나한당에도 높이가 12.6미터에 달하는 청동닫집이 있다. 이 역시 청동 닫집 가운데 세계 최대란다. 그러나 우리의 닫집처럼 천정에 매달은 것이 아니라 기둥을 받쳐놓고 있어서 정확히 닫집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닫집에 걸려 있는 ‘아미산’이라는 편액도 눈길을 끈다.

모든 것이 거대하고 웅장한 영은사지만 아담하고 아늑한 곳도 있다. 바로 영은사 안을 흐르고 있는 조그만 계곡이다. 마침 비가 내린 덕에 흘러내리는 물이 꽤 많다. 계곡을 따라 발길을 옮겨가며 적당히 안개에 쌓인 영은사를 바라보면 꽤나 운치가 있을 듯 하지만 몰려드는 관광객과 참배객으로 한산한 날이 없으니 이도 쉬운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서호 남쪽 남병산 기슭에는 945년 지어진 정자사가 자리하고 있다. 어둠이 옅게 깔릴 무렵 이곳 정자사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서호에까지 들리면 잔잔한 호수와 어울리면서 서호10경 가운데 하나인 ‘남병만종(南屛晩鍾)’이 연출된다.

정자사는 항주에서 태어나고 입적한 법안종의 제3조 영명연수(905~975) 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정자사지」에 따르면 오월국 충의왕이 영명연수 선사를 위해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리 대가람은 아니지만 영은사와 함께 항주의 대표적인 고찰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곳 항주가 중국 불교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찰이기도 하다.

경산사는 일본다도의 원류

<사진설명>영명연수 선사가 창건한 정자사는 영은사와 함께 대표적인 항주의 고찰이다.

영은사 남쪽에는 천축산이 있는데 이 산 아래부터 위로 법경사, 법정사, 법화사가 차례로 있다. 이 사찰들은 각각 하천축, 중천축, 상천축을 상징하고 있어 천축삼사로 불린다. 모두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이 가운데 법경사는 항주 유일의 비구니 사찰이기도 하다.

항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찰 가운데 하나가 8세기 당나라 때 창건된 경산사다. 남송 시대의 대표적 선원인 오산 십찰 가운데 첫 손에 꼽히는 경산사는 당나라 황제로부터 ‘국일대각선사(國一大覺禪師)’의 칭호를 받았던 법흠(法欽) 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이곳에서는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리기 위해 직접 차를 심고 재배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경산차(徑山茶)’인데 이곳 경산사는 일본 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다선일미(茶禪一味)’, 즉 일본 다도의 가르침이 전해진 사찰이라고 한다. 지금은 영은사 등의 명성에 밀려 그다지 북적이는 모습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차가 재배되고 다도 수행이 이뤄졌다는 것은 항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인 ‘차(茶)’ 또한 불교적 토대 위에서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그런 역사성을 보여주듯 경산사 입구에는 용정차의 유래인 우물 ‘용정(龍井)’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항주=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