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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단상

기자명 법보신문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부처님오신날을 성탄절로 통용

이러다간 ‘예배-장로’뿐 아니라
‘자비’도 타종교 용어될 판

연말이면 ‘성탄절’을 기리는 행사와 장식이 온 나라를 뒤덮습니다. 성탄절이란, 우리나라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을 말합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의 거리는 성탄절 분위기로 가득합니다. 시청과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도심은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기리는 장식들로 마치 유럽의 기독교 국가에 와있는 착각을 들게 합니다.

성탄절, 이 단어는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선 크리스마스 지칭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이란 말이 크리스마스의 우리식 표현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60년대 후반만 해도 불교계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성탄절로 지칭했었으니까요. 일례를 들자면 1967년 5월 25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전국신도회 주도로 2000여명의 불교계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국불교대표자회의에서는 ‘4·8성탄절 공휴일 제정 추진’을 결의한 바도 있습니다. 다만 성탄절이란 용어를 기독교에서 ‘더 많이, 더 자주’ 사용하다보니 불교계에선 시나브로 이 말을 사용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냥 ‘성탄절’이라고 쭉 사용하면 될 것을 애써 피하려다보니 ‘석탄절’ ‘불탄절’과 같이 생경한 조어들이 등장했다가 마침내 오늘날 사용하는 ‘부처님오신날’로 정착된 것이지요.

비슷한 사례는 더 있습니다. 본시 불교용어인 ‘장로’ ‘예배’라는 말도 개신교에서 활발하게 사용하니까 외려 불교에서 ‘원로’ 또 ‘참배’라는 말로 대체해 쓰는 것과 같이, 이웃종교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피하다가 아예 이웃종교의 용어가 되어버린 경우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몇 해 전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자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빗대어 ‘머잖아 자비까지도 천주교 용어가 되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있었습니다.

이는 불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팽배해 있는 ‘(남과) 부딪히기 싫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고가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성인이 탄생한 날’이란 뜻의 성탄절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최근 미국 이야기를 하나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최근 지인과 지지자 140만 명에게 카드를 보냈는데, 카드에 ‘메리 크리스마스’처럼 기독교를 연상시키는 문구는 물론 산타클로스나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은 종교적 표현이 빠졌다는 겁니다. 대신에 ‘희망과 행복이 깃드는 홀리데이가 되길 기원한다’는 문구가 적혔는데, 이유는 카드를 받는 사람이 비 기독교인일 경우 기독교적 표현에 불쾌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언론들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다’는 표현 대신 ‘대통령이 홀리데이 카드를 보냈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물론 기독교 단체들의 반발이 있었고, 일부 언론에서는 대통령이 크리스마스를 평범한 휴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크리스마스카드에서 ‘크리스마스’가 사라지는 것은 서구사회 흐름인 듯싶습니다.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이런 추세는 정작 다종교가 공존하고 있으면서도 공직자들까지 직분을 이용한 선교에 혈안이 된 우리나라와는 상반된 현상입니다.

공존의 가치를 중시하고,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범 기독교권 국가들의 최근 흐름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기를 올 ‘예수님 성탄절’을 기해 기원해 봅니다.
 
〈대표이사〉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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