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린 겨울 추위 없다면 봄에 어찌 매화를 보리

기자명 법보신문

전 쌍계사 금당선원 선덕 도 현 스님

존재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찻잔에 있는 차를 마시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소유하는 삶입니다. 이것을 마시면 존재하는 삶입니다. 실시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현재 진행형, 바로 지금입니다. 존재하는 삶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살지 않고 미래에도 살지 않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임제 스님의 말씀 가운데 ‘즉시현금 별무시절(卽是現今 別無時節)’이라, “바로 지금이다, 다시 때가 없다.” 요즘 말로 하면 실시간입니다. 그 다음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에서나 실시간을 산다”는 말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실시간을 살면 가는 곳마다 극락이고 어디라도 참다운 세계라는 말입니다.

계 지키려는 노력이 신행

오늘 저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는 원시 경전의 말씀을 주제로 해서 법문을 하겠습니다.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 이 말에서 ‘나’가 누구인지 압니까. 나이기도 하고, 여러분들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법을 보고 나를 보기 위한 부수적인 조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주로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허공같이 하고 물같이 하고 바람같이 하라. 그 말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에 이르려고 한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삼보에 의지하고, 둘째 오계로서 마음의 규범을 세우고, 셋째 신행으로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 칠보를 증식함으로써 깨달음을 성숙케 하는 밑거름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삼귀의는 “부처님을 의지처로 삼겠습니다.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겠습니다. 승가를 의지처로 삼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중심에 두겠습니다.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중심에 둡니다. 부부 간에 애정으로 감싸는 마음을 중심에 둡니다. 매사에 진실한 마음을 중심에 둡니다. 일상에 늘 깨어있는 마음을 중심에 둡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삼귀의는 처음 절에 갈 때부터 귀에 못이 앉도록 들어서 익숙하지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 오계는 좀 이상할 겁니다. 오계라고 하면 살생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사음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그렇게 하잖아요. 이것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오계를 말할 때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다섯 가지 덕행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제일 처음에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하고 못나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까지 다 감싸 안아야 자기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라는 것이 잘 지키면 왜 만들었겠습니까.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신행생활입니다. 오계에 중심을 두고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 경을 읽는 사람은 경을 읽으며 신행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신행 방법은 선택과목입니다. 자기 하는 것만 최고라고 하면 안 됩니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삼보에 의지해서 오계로서 마음에 규율을 세우고 신행으로서 마음의 중심을 잡습니다. 그 다음에 칠보를 증식함으로써 깨달음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의지해서 오계를 생활 규범으로 세워서 신행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법문도 듣고 해서 신행을 북돋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칠보를 드릴 겁니다.

칠보는 깨달음의 밑거름

무량수경에 보면, 극락세계가 일곱 가지 보배로 장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보배하고도 많이 통합니다. 보배라고 하면, 금, 은, 수정, 옥, 그거, 유리, 산호를 말합니다. ‘그거’는 조개 중에서 제일 큰 조개입니다. 요즘은 무엇을 보배라고 합니까.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진주 등 여러 가지가 많을 겁니다. 세상의 그 많은 보배들을 한 마디로 줄이면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에 해당되는 것이 물질적 재산이라면, 지금 제가 여러분들에게 주려는 재산은 정신적 재산입니다.

신, 계, 참, 괴, 문, 희, 혜 이렇게 일곱 가지 보배가 있습니다. 신, 우리가 성불을 믿고 삼보를 믿는 것은 보배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 풍진 세상에 방향계가 없어서 어디에 좌초될지 모르는 배와 같습니다. 그 다음은 중심을 규범을 세우는 계, 이것도 보배입니다. 그 다음은 참입니다. 참은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고쳐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괴입니다. 남부끄러운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봐도 아름답습니다.

그 다음은 문입니다. 어른, 선생님, 교수님, 목사님, 신부님, 스님들이 하는 좋은 말을 다 합하면 법문입니다. 그 다음은 희, 베푸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불가시적인 통장입니다. 긍정적인 말도 다 베품의 하나입니다. 그 다음이 혜입니다. 지혜입니다. 불교에서 지혜를 말할 때는 판단력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많지요. 판단을 잘못해서 낭패 보는 일도 많지요. 그런데 아주 차분하게 선정에 들어서 정확한 판단을 한다면 후회할 일이 적어지죠. 후회할 일이 적어지면 심신에 얼마나 유익하고 이익된 것이 많습니까. 그것이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 계, 참, 괴, 문, 희, 혜 이 보배를 두 마디로 줄이면 뭐라고 하지요? 인격입니다. 칠보를 갖춘 사람을 인격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법에 대한 것은 이야기만으로는 안 됩니다. 정신적으로 부수적인 조건들을 갖추어 가면서 거듭 사고하고 체험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장 먼저 사성제 법문을 하셨지요. ‘고집멸도’에서 도는 바로 팔정도입니다. 우리 불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선이라는 이쪽 세계와 악이라는 저쪽 세계에 치우치지 않고 가는 것,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는 곧 부처님의 행입니다. 행이며 말이고 생각입니다. 부처님과 도인은 팔정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며 우리는 팔정도를 배워서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들었다고 해서 단박에 알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법이 어느 날 아침에 알아질 수 없습니다. 자신이 부수적인 조건을 갖춰서 팔정도에 대해서 자꾸 생각해보고 생각해보면, 부수적인 조건과 법에 대해서 투철해질 때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옛 황벽 스님의 게송에서,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이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인고.”

특별한 삶은 열심히 사는 것

특별한 삶을 살려면 부지런하고 남달라야 합니다. 이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마치 길 안든 송아지에게 고삐 씌우기 위해 잡아당기면서 시달리는 것과 같고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데 줄을 잡고 거슬러 언덕에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해야 만이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러한 노력을 매화나무에 비유해서, 겨울의 시린 고비를 견디는 아픔이 없다면 어떻게 매화 향기가 봄에 코끝에 스치겠느냐고 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대로 움직여서는 마음의 중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남들처럼 사는 생활과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뚫어지게 주시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살아있는 기쁨을 즐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남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다루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내재하는 중심입니다. 우리는 삼귀의, 오계를 마음의 중심에 삼아 신행하고 정신적 재산을 저축하며 순수한 삶을 사는 불자여야 합니다.

신행생활은 스스로 만드는 행복임을 명심하시고 현재 붙들고 있는 일을 정성껏 차근차근 수행하면서 순간순간 실시간의 기쁨을 누리고, 일상 속에서 그러한 순간순간을 날로 늘려가야 합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고 조금 전보다 다른 지금을 만드세요. 우리가 절에 다니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11월 25일 부산 미타선원(주지 하림)에서 봉행된 동안거 결제 용맹정진법회 법사로 초청된 도현 스님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도현 스님은

열 다섯살의 나이에 범어사 덕명 스님을 은사로 1963년 부산 범어사에서 입산 출가했다. 1972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제방 선원에서 30여년간 수행 정진한 스님은 태국에서 5년 동안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수행법을 체득하기도 했다.
스님은 현재 지리산 연암 토굴에서 홀로 수행정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