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시 한해를 보내며

기자명 법보신문

권 오 민
경상대 교수

올해도 이렇게 속절없이 저물어가고 있다. 작년도 그렇게 지나갔으며, 재작년도 새로운 밀레니엄이라고 세계가 요란하였던 7년 전의 그 해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왔다. 올해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해를 넘겨 보내지만, 다시 희망에 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것이다. 60갑자에 메여있는 우리네 범부들의 삶에서 해넘이와 해돋이는 분명 하나의 이벤트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해가 그 해이니 그렇게 아쉬워할 것도 희망할 것도 없지 않는가. 새로운 밀레니엄에 걸었던 그 해의 희망도 한갓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뒤이어 이라크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북한의 핵문제는 해소 불가능한 상태로 꼬였으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우리의 삶도 더욱 고단해졌다고들 한다. 신문에는 여전히 어지러운 기사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의 역사 또한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었겠는가.

부처님시대에도 먹고 먹히는 물고기의 법칙(matsya nyaya)이 지배하였으며, 세속은 항상 차별의 대립과 모순 속에서 격랑처럼 요동치며 흘러가는 곳이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버려라[捨]’ ‘싫어하라[厭]’ ‘떠나라[離]’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격랑의 세속에는 오늘이 없다. 있지만 그것에 눈감고 싶어한다. 영원히 오지 않을 내일만이 존재한다. 소망스러운 일은 항상 내일의 몫이다. 모두가 내일을 향해 치닫는다. 불전의 우화 하나. 토끼 한 마리가 도토리 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도토리 하나가 머리 위에 떨어졌다. 잠결에 놀란 토끼는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서 뛰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다른 토끼들 역시 무슨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함께 뛰었으며, 산중의 뭇 짐승들도 덩달아 뛰기 시작하였다. 산중의 어른인 사자가 물었다. ‘너희들 도대체 어디를 향해 그렇게 달려가느냐?’

우리 범부들은 대개 과거로부터 현재, 현재로부터 미래로 이어진 시간(세월)이라는 터널을 거쳐간다고 생각하며, 대개 터널이 끝난 밝은 광명의 내일을 소망한다. 우리네 삶의 종착역은 어디일 것인가. 우리가 손뼉치며 맞이할 희망의 내일은 언제일 것인가. 그러나 시간은 철도의 레일 마냥 끝없이 이어져 있다가 종착역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시간은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현실(5온)의 변화 즉 무상을 구획지어 일컬은 말에 불과하다. 육체(色)나 느낌(受) 등은 무상하며, 그것이 ‘나’가 아니라는 사실은 논증이 필요 없는 경험적 사실이다. 현실의 변화가 바로 시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실과는 별도의 시간을 설정하고, 삼세를 관통하는 불변의 ‘나’를 통해 미지의 내일을 추구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구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현재일 뿐 지금을 놓치면 영원을 놓치는 것, 그러니 게으르지 말라. 이것이 불타의 마지막 법문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 마지막 구절이 사람의 마음을 후벼판다. “오늘만 오늘만 하면서도 악은 나날이 늘어나고, 내일 내일하면서 선은 나날이 줄어들며, 올해만 올해만 하면서도 번뇌는 한이 없고, 내년에 내년에 하면서 보리(菩提)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시간 한시간이 흘러 흘러 하루가 그냥 지나가고, 하루 하루가 흘러 흘러 한 달이 후딱 지나간다. 한달 한달이 흐르고 흘러 문득 연말에 이르며, 일년 일년이 흐르고 흘러 잠시간에 죽음의 문턱에 이른다.”

보내는 해와 맞는 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날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 되어야 할 것인데. 옛 선사들도 말하였다. 우리는 지나간 세월에 아쉬워하고 오지 않은 세월에 희망을 걸며, 영원의 시간을 갈망함으로써 오늘을 살지 못한다고. 오늘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현실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시간에 쫓겨가고 망념을 좇아간다고.

어느 보름날 운문스님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15일 이전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의 일에 대해 뭔가 한 마디 말해보라.” 대중들이 아무 말이 없자 스스로 대답하였다. “하루 하루가 좋은 날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늘 그러하시길--.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