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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은…

기자명 법보신문

문화재 관람료 사찰을
중생 재산 뺏는 ‘산적’ 취급

근본대책 못 세운 교계도 잘못
재화 아닌 진리의 선양이 우선

“옛적에 길목을 막고 ‘지나가고 싶거든 통행료를 내라’고 했다던 산적이 떠올랐다.”

한 일간신문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마찰 관련기사 중 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산적이란 사찰을 지칭합니다. 요익중생(饒益衆生)의 요람이란 칭송을 받아도 부족할 사찰이 중생의 재산이나 뺏는 산적에 비유돼 몰매를 맞는 일이 지금 현실에서 진행 중입니다.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렇다고 별 뾰족한 대안도 없으니 난감할 뿐입니다.

기사를 보면서 오래전 읽어 지금은 기억조차 흐릿해진, 김정한의 단편소설 『사하촌』을 다시 꺼내 펼쳤습니다. 『사하촌』은 “먼동이 트면 곧 죽고 싶은 마음 저녁밥 먹고 나니 천년이나 살고 싶네.”라는 소설의 한 구절처럼 사찰 소유 농지를 부치는 절 밑 소작농들의 지난한 삶을 그린 소설입니다. 가뭄으로 소출이 없으니 소작료와 차압조치를 면제해달라는 빈농들의 호소를 끝내 외면한 사찰을 향한 민초들의 분노가 이 소설에선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또쭐이, 들깨, 철한이, 봉구-이들 장정을 선두로 빈 짚단을 든 무리들은 어느새 벌써 동네 뒤 산길을 더위잡았다. 철없는 아이들도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서 절 태우러 간다고 부산히 떠들어댔다.”는 소설의 마지막 구절처럼 결국 마을 민초들은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사찰이 소작농들의 사정을 들어줘서 타협이 이뤄졌는지, 아니면 분노한 마을사람들에 의해 불태워졌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졌지만, 이 소설이 던져주는 교훈은 마을로부터 외면 받는 사찰은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립공원입장료 폐지이후 벌어질 충분히 예견된 충돌사태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한 불교계와, 근본대책은 세우지 않고 탐방객과 사찰의 물리적인 마찰을 방조한 관계부처는 모두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불교계도 정부도 할 말이 많겠지요. 그 주장에 나름의 일리가 있고 타당성이 있다는 점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속사정이 사찰이 산적이나, 봉이 김선달 부류쯤으로 매도되는 끔찍한 현실을 덮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사태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정부의 대책이야 그쪽에서 알아 할 일이니 차치하더라도, 불교계가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할 지 시급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관람료 징수위치를 사찰 앞으로 옮기는 안을 비롯하여 기존의 장소를 지키되 문화재관람료 징수의 필요성에 대해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는 것, 아예 이번 기회에 문화재관람료도 폐지하고 해당되는 재정을 정부가 조달하는 문제 등이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겠지요.

어느 방안을 찾든 간에 간과해선 안 될 원칙은 사찰(불교계)이 국민으로부터 비난받거나 매도되는 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어떤 방안이든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합동징수 하던 시절보다 불교계에 재정적으로 유리한 안은 없다는 점입니다.

작은 것에 욕심 부리다가 큰 것을 잃는(小貪大失) 어리석음을 피하는 것, 난관을 쇄신의 기회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찾는 것, 불교가 목숨처럼 지켜야할 것은 재화가 아니라 진리의 선양임을 깨닫는 것, 이것이 오늘 한국불교가 받아들여야 할 시대정신이 아닌가 합니다. 

〈대표이사〉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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