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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와 문화재 관람료

기자명 법보신문

남궁 영
동아방송대 교수


지난 연말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생겨 불국사에 들를 기회가 생겼다. 1,400여 년 전 이 땅에 불국토의 이상을 심었던 곳, 불국사는 여전히 아름다운 불교 예술품들과 용맹 정진하는 스님들과 기도하는 신도들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연화교와 칠보교, 노인의 지혜로 청년의 발걸음을 떼라고 일러주는 청운교와 백운교. 그저 가까이 다가가 어루만지고 품고 싶은 저 다리들을 밟고 선 사람들은 구름 위를 딛듯 사뿐히 사바세계로 들어섰을 것이라고 상념에 잠겨 본다.

그런데 순간 쇳소리를 내는 스님의 설교 음성이 확성기를 통해 계속하여 경내에 울려 퍼지고 있어 신경을 자극한다. 어디서 음악 대신 틀었거니 생각했지만 영 귀에 거슬린다. 옆문을 통해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하고 공양을 마치니, 할머니 보살이 황급히 조그만 상으로 돌아와 발원 해줄 터이니 만원을 시주하란다. 못이기는 척 시주를 하고 가족의 이름을 적고는 “보살님은 어디서 나오셨어요?”하고 물으니, ‘불국사 소속’이란다. 보살이 장부를 정리하는 틈에 보살이 황급히 나온 부처님 뒷곁을 들여다보니, 한 보살이 여기는 오는데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른다. 임시 칸막이까지 설치하고 냉장고에 간단한 조리대(과일을 깎는 듯)며, 부엌에나 있을 집기, 상자들이 널려 있다. 경건히 머리를 조아린 부처님 뒤란이 이렇듯 소란스러웠다니 씁쓸해 마지않는다. 전통적으로 부처님 전에는 시주함이 놓여 있다. 그리고 제단에는 정성들인 공양물을 놓을 수 있다. 부처님께 절하고 시주하고 돌아서는데, 다시 장부를 내밀고 시주하면 발원해준다니 벙벙할 따름이다. 그것도 대웅전, 부처님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저 부처님께 민망할 따름이다.

요즘 어느 절에나 가면 볼 수 있는 풍경이 바로 보살들이 시주를 권하는 것이다. 또 무슨 공사를 그리 할 것인지, 입구부터 기왓장을 쌓아놓고 발원공양을 권하고 있다. 물론 종교시설이 신도나 방문자로부터 보시를 요구하는 것이 나쁘지도 잘못 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방식과 불쾌감을 일으키는 권함은 아니함이 못하다. 이렇듯 모은 시주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사찰 운영에 큰 영향이 없다면 재고함이 좋을 듯하다. 사찰마다 특색이 있고 역사가 있듯, 사찰마다 품위 있고 독특한 시주 방법을 개발한다면, 신도나 관람자나 자발적으로 공양하고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불교계에서도 시주 또는 공양하는 방법을 개발하였으면 싶다. 개신교에서는 교리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십일조를 봉행하고 있고, 천주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편에 따라 성의껏 헌금하고 있으며, 신부도 전혀 이에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종교는 헌금액수가 곧 믿음의 척도가 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찰의 경우 일반 신도나 특히 관람자의 경우는 스님들을 뵙고 법문을 듣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저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절하고 약간의 공양을 하는 게 전부다.

마침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고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다 하니, 공양은 사찰의 신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일반 관람자들한테는 그야말로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편안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서비스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공양은 불·법·승 삼보를 존경하는 행위이다. 특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삶의 바른 길을 열어 보이시고,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데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행위다. 부처님 자신도 이른 아침에 가사와 발우를 챙겨 들고 머물러 계시던 곳을 나와 맨발로 걸어 도시나 촌락에 들어가 탁발을 하셨다. 그러나 일곱 집을 넘기지 않으셨다 한다. 그 동안 음식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굶으셨다. 공양은 이웃에 대한 보살행이며, 중생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 스님과 사찰의 안위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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