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의 애환까지 보듬는 자비의 가위손

기자명 법보신문
  • 복지
  • 입력 2007.01.16 13:49
  • 댓글 0

이·미용 봉사하는 호스피스 김 영 순 보살

환자 엉킨 머리손질하며 업장 소멸 발원
폐결핵으로 생사 넘나들 때 이타행 결심

<사진설명>호스피스 활동가인 김영순 보살은 직접 이·미용 기술을 배워 장기환자들의 머리카락을 다듬는다. 사진은 지난 1월 8일 김영순 보살이 국립의료원에서 이·미용 봉사를 하는 모습.

“한 주가 지나 또 이렇게 뵙습니다. 머리가 많이 엉켜있네요. 제가 오늘 특별 서비스를 해드리고 멋쟁이로 만들어 드릴게요. 일단 머리부터 감을게요.”

국립의료원 627호. 약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들의 애환을 보듬는 자비의 가위손 김영순(58·묘금도) 보살. 김 보살은 이들에게 생명을 연장하는 의술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영적인 위안과 안락을 베푸는 호스피스 활동가다.

호스피스 활동가가 무슨 가위질이냐 싶겠지만 이·미용 봉사는 김 보살이 자처한 것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면 국립의료원에서 만나는 장기 환자들의 엉킨 머리카락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탓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분들 대부분은 침상에 누워 생활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심하게 엉켜있어요. 그 모습을 보면 왠지 그 분들의 삶에 엉켜 있는 업들이 생각나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머리를 감겨드리고 조금 손질하면 그 분들도 좋아하시고 저 또한 엉킨 업을 푼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놓여요.”

김 보살은 장기 환자들의 머리 손질을 위해 미용실을 자주 다녔다. 머리를 하거나 안 하거나 미용사들의 가위질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남다른 손재주를 타고난 그에게 머리 손질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김 보살은 자신의 손뜨개질로 번 수입으로 미용가위, 빚 등을 사 들고 국립의료원의 장기 환자를 만났다. 처음엔 세련되지 못한 손놀림으로 빈축을 샀지만 이제는 호스피스 시간이 지나도 머리카락을 잘라달라는 환자까지 생겼다.

매주 1번 찾아오는 이·미용 봉사자로서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통에 김 보살의 봉사활동은 금세 인기를 탔다. 특히 김 보살은 머리 손질을 하면서 환자나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는 동시에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른다.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는 지게 마련이지만 어디에선가 꼭 다시 피어있지요. 이렇듯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과정이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평등한 진리입니다. 또 다른 생을 위해 거치는 단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환자나 가족들에게 임종을 준비시키죠. 관음정근은 그 분들을 위한 제 신심을 표현한 것뿐이에요.”

김 보살 역시 폐결핵으로 1984년부터 1993년까지 생사를 넘나들었었다. 병원에서도 고개를 젓던 상태에서 그는 부처님에게 서원을 하나 세웠다.

“여생을 늘려 주신다면 이 육신을 베푸는데 쓰겠습니다.” 서원이 갸륵했던 것일까. 건강을 찾은 그는 2000년 불교자원봉사연합회 호스피스 교육을 수료하고 그 길로 호스피스 활동가로 수행했다.

“부처님께 귀의코자 제 원찰인 정릉 묘각사까지 찾아와 참배하던 27살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죠. 부처님께 갈 수 있냐고 물었을 땐 가슴이 아파 선뜻 답을 하지 못했어요.”

7년간 많은 환자들의 임종을 지키며 울었던 김 보살이지만 아직도 죽음은 힘겹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사구게를 지니는 순간 환희심을 느꼈다는 김 보살은 자기완성이 곧 남을 위한 길임을 알고 자비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