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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에 ‘완전히 좋은 때’란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다람살라 수행 20년, 청 전 스님

제가 사는 곳은 인도 땅입니다. 티베트에서 망명 나와 계시는 달라이라마 큰스님이 계신 곳에서 한 20년을 살았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은 티베트 불교입니다. 굳이 한국불교, 티베트 불교라고 구분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보면 똑같습니다.

한국에 오면 느끼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가 한국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한국에서 인도라고 하면 가난하고 더럽고 위험한 나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의 모습이 한국 사람들처럼 얼굴을 찌그린 모습은 아닙니다. 그 분들의 편안한 모습, 여유로운 모습은 종교적인 삶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여유로움은 종교적인 삶에서 비롯

여러분들은 세속 생활의 톱니바퀴에 물려 얼마나 바삐 사십니까. 한국사회의 모습은 제가 20년 동안 살았던 인도와 비교해 볼 때 굉장히 거칩니다. 화를 자주내고, 빨리 하려고 하고, 남을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가 너무 거칠다,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거칠다. 편안하지 못한 모습이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편하지 못할까요. 2500년 전 부처님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자체의 모습은 똑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문물의 발전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것은 남 보다 큰 집, 남보다 큰 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어느 상황에 있건 마음이 편해야 얼굴도 편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나옵니다. 즉, 마음 씀이 고를 때 몸도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 씀이 조금이라도 편치 못하다면 진수성찬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거친 사회를 이기고 바른 마음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부처님 법 안에서 편안한 행복의 마음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칠불 통계 중에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이라, ‘모든 악은 행하지 말고 착한 행동을 하라’는 게송이 있습니다. 또,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 자신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착하게 살지 못하고 악한 쪽, 이익이 있는 쪽으로만 살아갈까요.

그것은 우리의 습관이 잘못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릇되게 습관된 것, 그것이 곧 신(身), 구(口), 의(意) 삼업입니다. 그리고 그 삼업을 정화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몸으로 지은 허물, 몸으로 지은 바르지 못한 업장을 맑게 정화하는 것이 절입니다. 남을 흉보고, 욕하고, 거짓말하는 등 입으로 지은 구업을 정화하는 것이 염불이나 진언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업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이 참선이나 경을 읽는 것입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신심이 가장 강하다고 합니다. 절을 하는 방법도 우리와는 달리 온 몸을 땅에 드리우는 오체투지를 합니다. 그리고 신, 구, 의 삼업을 한 번에 정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지순례를 꼽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성지순례는 일생에 한 번 원력을 세워 준비하고 참회하여 발원하는 종합적인 신앙행태입니다.

옛부터 순례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부처님의 자리를 찾아가며 자기를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혜초 스님이라든가 중국의 유명한 현장 스님, 의정 스님, 법현 스님과 같은 스님들이 목숨을 걸고 성지 순례를 하셨습니다. 그만큼 훌륭한 수행을 하신 것입니다.

저는 1993년에 티베트의 성산(聖山)인 카일라스 산(Kailas)을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을 우리는 흔히 수미산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그룹을 지어 여행사를 통해서 다녀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을 봤습니다. 저는 카일라스 산 순례를 통해 수행을 다지고 점검하며 업장을 소멸하겠다는 원력을 갖고는 고집스럽게 걸어서 그 성산을 향해 갔습니다. 도중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먹는 것이 없기도 하도 텐트를 안 가지고 갔기 때문에 그냥 허허벌판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곳은 지대가 높은 히말라야 쪽이라서 여름에도 춥고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내려갑니다. 어찌어찌 해서 밥을 얻어먹고 잠을 잤습니다. 보릿 가루같은 짬바를 먹고 버티며 자고 일어나 나면 걸어가기를 꼬박 35일을 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일생에서 가장 혹독한 수련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순례가 어쩌면 지금까지도 인도의 달라이라마 큰스님 밑에서 수행할 수 있는 힘의 밑받침이 된 것 같습니다.

배고프고 등 찰 때가 바로 공부할 때

순례를 마치고 우연히 인연이 되어 어떤 트럭을 얻어 타고 돌아오는데 그 때 양을 키운다는 유목민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제 삶의 교훈이 되었습니다. 제가 수미산 카일라스까지 가는데 몇날 며칠이 걸렸다고 했지만 그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티베트의 청해성, 서장성, 감숙성, 사천성, 운남성 쪽에는 티베트족, 즉 장족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천성 지역에 살고 있는 장족의 어느 거사님이 업장을 소멸하고 구경에는 성불하겠다는 원력으로 집에서부터 성산까지, 오체투지를 하면서 순례를 했는데 무려 반평생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또 인도의 어느 사도 한 분은 인도 제일 남부에서 카일라스까지 가는 원을 세웠는데 한쪽 발로만 가겠다고 결심하여 무려 12년이나 걸려 카일라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몽골의 어느 스님도 티베트 카일라스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왔는데 몽골에서 타일라스로 오자면 중간에 고비라는 큰 사막이 있습니다. 이 스님은 그 사막을 통과하면서도 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카일라스에 와서 열반에 들었다고 합니다.

반평생을 절을 하면서 카일라스에 왔다는 신도, 그리고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12년간 깨금발로 카일라스를 순례했던 사람, 또 고비사막을 넘으면서도 오체투지를 하며 몽골에서 수미산까지 왔던 사람. 이들을 생각하며 전 항상 게으름을 떨쳐 냅니다. 적어도 이 세 분에게 그 과정이 고통이고 고생이었겠지만 그들의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행복했으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바른 동기와 의욕이 있다면 비록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신앙에는 자기희생이 따를 때 그 신앙생활에 힘이 붙고 자기 수행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절하고 염불하고 간경하고 참선하는 과정을 통해 남을 배려할 수 있게 되고, 내가 희생하더라도 남을 위할 때 참된 보살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사바세계,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서 절대 행복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큰 수행의 힘으로 부처가 되었을 때야 문제가 다르지만 그전에 우리의 모든 현상계에서 절대적인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분 좋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원인으로 조건 지어진 허상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아무리 고통이 와도 너무 고통스럽다며 실망하지 말고. 그것을 극복해서 구경에는 열반으로 가는, 깨달음으로 가는 그런 지혜를 가져야 됩니다.

행복은 자신의 마음에서 나와

그래서 불자들이라면 오히려 자기가 약간 부족할 때 수행하기 좋습니다. 완전하게 풍족하면 수행이 안 됩니다. 명심보감에는 ‘기한(飢寒)엔 발도심(發道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고프고 등이 찰 때 공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밥을 먹어도 약간 적게 먹을 줄 알아야 하고 낭비하지 않으며 남에게 베푸는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티베트 망명 정부가 세워진지 벌써 47년이 지났습니다. 최근 인도와 중국이 화해의 악수를 하면서 달라이라마의 입장이 많이 어려워 졌습니다. 저는 존자께서 진정한 보살이요, 훌륭한 공부를 하신 분이라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티베트에는 ‘새가 늙으면 둥지를 그리워하고 사람이 늙으면 고향을 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존자께서 티베트에 평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여러분이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12월 20일 경남 마산 정인사(주지 원행)에서 봉행된 초하루 정기 법회에서 초청법사로 법좌에 오른 청전 스님이 설법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청전 스님은

1953년 생으로 1977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1987년 남방불교와 티베트불교 수행을 경험하기 위해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의 수행처를 방문한 스님은 1988년 8월 달라이라마와 만난 후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보좌하면서 수행 중이다. 스님의 저서로는 『입보리행론』(2004, 하얀연꽃), 『깨달음에 이르는 길』(2005, 지영사), 『달라이 라마와 함께 한 20년』(2006, 지영사) 등이 있다. 지난 12월 한달 동안 잠시 귀국한 스님은 1월 2일 북인도 다람살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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