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년 간 청진기로 사무량심 온기 전해

기자명 법보신문
  • 복지
  • 입력 2007.01.23 13:49
  • 댓글 0

정년 없는 간호봉사 정 서 옥 보살

혈압체크·상담 등 전문성 살린 자비행
육신 보다 마음 치유 중요해 불교 귀의

<사진설명>지난 1월 16일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혈압을 체크하고 상담을 나누는 정서옥 보살.

‘천식 때문에 많이 힘드신 모양이네. 어제도 안 나오셨는데….’

정서옥(70·성불화) 보살은 흰 가운을 입은 채 걱정스런 눈빛으로 진료실 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음 날. 지금도 천식 때문에 숨을 몰아쉬며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 올 것만 같은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년 없는 간호사로 30여 년 동안 의료 봉사를 펼친 정 보살에게도 죽음이 힘겨운 건 마찬가지였던 것.

“늘 보이던 분이 갑자기 안 보이면 마음자리가 불안한 데 부음 소식을 듣고도 꼭 다음날이면 저 문을 열고 그 분이 걸어 들어올 것만 같아요.”

정 보살은 사회복지법인 인덕원(대표이사 성운) 부설 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관장 고재욱)에서 노인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관세음보살로 통한다.

1998년 간호사 생활 30년을 정리하고 이듬해 은평노인복지관이 문을 열 때부터 의료봉사를 시작, 현재 역촌노인복지센터를 포함해 하루 평균 100명의 노인들이 정 보살의 청진기에 자신의 건강이며 가족 이야기 등을 털어 놓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돌아가니 그럴 법도 하다.

“평생 간호사란 이름으로 환자들을 진료해오다 정년을 맞자 삶이 너무 무기력했어요. 그러던 중 치매 노인들이 계신 인덕원 호암마을을 다녀온 후 식사보조, 목욕봉사를 시작하던 것이 의료 상담까지 하게 됐어요. 마음이 외로운 그 분들에게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것이 참 진료더군요.”

30년 세월동안 간호사란 직업으로 해 온 진료가 넌덜머리가 날 법도 한데 정 보살은 아직도 베푸는 삶엔 미치지 못한다며 오히려 열성이다. 교편을 잡던 중 아픈 이들을 돌보고 싶어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지원, 간호사가 되었으니 봉사활동이 간호 업무고 간호 업무가 봉사활동이었다.

그러나 정 보살이 처음 은평노인복지관에서 혈압체크, 의료상담 등 봉사를 시작했을 땐 불신하는 무언의 시선들이 있었다. 정 보살은 ‘정말 네가 간호사냐, 네가 우리들의 건강과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느냐’는 노인들의 시선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런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았고 결국 삼천사 성운 스님에게 ‘성불화’란 법명을 받고 불교를 귀의처로 삼았다. 남은 생애에 꼭 알아야할 귀중한 법을 만난 것.

“삼보에 귀의하기 전 성운 스님은 제게 여느 일반인과 같았어요. 그러나 부처님의 자비를 남은 생에 사회복지로 회향하겠다는 스님의 원력이 절 이렇게 감화시켜 보시엔 정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2001년 정 보살이 불자로서의 삶을 걷기 시작하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만나는 노인들의 마음 치료가 더 수월해졌다. 언제나 하심하며 고운 얼굴과 말씨로 노인들을 대하다 보니 이제는 노인들이 차 한 잔 마시라며 천원, 2천원을 한사코 내민다.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이나 일반 환자들도 아픈 몸보단 마음 치유가 제일 중요해요. 그들의 마음자리를 살펴 처방을 내려야하죠. 아무리 진료와 약이 좋아도 마음을 읽지 않고 처방하면 병은 낫지 않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풀고 어여삐 여기며 행복을 기뻐하는 정 보살은 오늘도 진료실 안 부처님께 합장 반배하며 청진기에 사무량심의 온기를 담는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