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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불교학 메카

기자명 법보신문

권 오 민
경상대 교수

지난 연말 동국대 총장으로 선임된 오영교 씨는 선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동국대가 세계적인 불교학의 메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피력하였다고 한다.(본보 881호) 그 기사를 접하면서 본보 877호 1면 톱으로 실린 “동대 불교대 존립기반 휘청”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오버랩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다른 대학으로 전과하는 바람에 학과운영은 물론이고 불교대학의 존폐위기로까지 치달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설에서는 이러한 위기의 원인을 잘못된 전과제도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전과제도만을 탓하는 것은 너무나도 단견이다. 비약일지 모르지만, 승려의 환속이나 탈종을 제도로 막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혹 사설대로 “불교대학은 단순한 단과대학이기 앞서 종립대학이라는 동국대의 건학이념이 담겨있기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여 그러한 거대이념에 개개학생을 볼모로 잡아 두는 꼴이 되고 만다. 솔직히 말해 전과문제는 졸업 후의 비전과 연관된 문제가 아닌가? 이는 인문학의 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아니 훨씬더 심각하다. 불교학은 재화를 생산해낼 만한 이론이 아니기에 구체적인 직업과 연관짓기가 어려우며, 굳이 연관짓자면 불교계(혹은 불교학계)일 것인데, 불교계에서 그들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불교대학의 위기나 개혁에 관한 담론은 교계신문의 단골메뉴이다. 교계신문을 비롯한 불교계에서는 한결같이 외친다. 불교대학은 동국대의 중추이자 한국불교학의 산실이라고. 한국불교의 장래를 짊어질 동량을 길러내는 곳이라고. 그렇다면 불교대학은 학생 개개인을 위해 설치된 대학인가, 동국대나 조계종단 혹은 불교계의 필요에 의해 설치된 대학인가? 만약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면 조계종단이나 불교계에서는 응당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이 종종 듣는 수익자 부담원칙이며, 개교할 때의 정신이었다.

또한 불교대학은 학생 개개인의 교양과 신앙증진을 주목적으로 하는가, 아니면 불교학자나 포교사 혹은 오늘의 불교적 이념을 새롭게 모색하는 불교전문가를 배출하기 위한 곳인가? 만약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 교과과정에 의하면 단수전공자는 최소 45학점, 복수전공자는 36학점으로 과정을 이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정도라면 아마도 교양강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불교학은 그렇게 한가하게 여가를 즐기듯이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다. 8만 대장경이라는 저 거대한 텍스트의 양이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다만 찬탄과 예배의 대상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불교학이 학문을 위한 학문이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응용불교학이나 현실에 부응하는 사회연계 교과목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백번 옳은 말이지만, 그것은 ‘불교학’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자칫 본말이 전도되어 불교학이 고사하는 또 다른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불교학자 또한 만능이 아니다. 불교생태학이나 불교사회학 불교행정학, 그러한 것들은 불교학자의 소임이 아니다. 그 분야의 전공자의 소임이며, 불교학자는 다만 그들에게 필요한 불교적 이념을 제공해야 한다. 동국대는 명실공히 불교종립의 종합대학이 아니던가?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불교학이라는 거대하고도 정치한 지식체계는 종내 사라지고 껍데기와 구호만 남게 될 것이다.

오영교 씨는 동국대를 세계적인 불교학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저명한 외국학자 몇 명 초빙하는 것으로, 혹은 떠들썩하게 세미나 몇 번 하는 것만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실력 있는 학생과 그들을 길러낼 만한 제도, 자신의 학문에 엄격한 교수자가 먼저이다. 십여 년 전에 내한한 선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야나기다 세이잔은, 어느 강연회에서 『조당집』등의 선서가 씌어진 동기와 뜻을 알기 위해 하루 15시간, 십여 년을 한결같이 베껴 쓰고 읽었다고 하였다. 참으로 경외스러웠다. 그러나 문득 회의가 들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이며, 언제 교수가 될 것인가?

동국대가 어떻게 세계적인 불교학의 메카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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