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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문화와 불교

기자명 법보신문

말의 시비 끊이질 않는 세상
소음에 가까운 말들 난무

말 경계하는 게 불가 미덕
일부 막말하는 스님 안타까워

말에 대한 말이 참 많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의 말에 대한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고 있고, 다음으로 차기 대통령 후보군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들도 갖가지 해석을 낳고, 그 해석들이 또 다른 말을 만들어내는 일이 정신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말의 또 다른 표출이랄 수 있는 인터넷 댓글들은 가히 말문을 닫게 할 정도입니다.

말, 참 중요한 것입니다. 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말이 없으면 세상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말이 없다면 정치도, 교육도, 경제도, 외교도, 어떤 것도 제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통령 등 정치인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말을 삼가거나 가려하라는 말은 할 수 있지만 아예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친 말입니다.

법정 스님이 쓴 『말과 침묵』에는 우리가 얼마나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교훈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말보다 침묵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스님의 가르침은 아예 입을 닫고 살라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좋은 말, 향기로운 말은 하되, 가급적 말을 삼가고, 특히 소음에 가까운 말은 가능한 하지 말아야 더 좋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침묵이 필요할 때는 침묵을, 반드시 말이 필요할 때는 정제된 말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흔히 듣는 ‘말을 하기 전, 할지말지 세 번을 생각하라’는 세간의 경구도, ‘말을 마치 화살 쏘듯이 하라’는 출세간의 가르침도 말의 중요성과 아울러 정제되지 않은 말이 가져다주는 해악을 경계한 것입니다. 침묵의 가치를 잘 설명한 예화 ‘아주(鵝珠)’ 이야기가 『선가귀감』에 전합니다.

“어느 비구가 구슬 만드는 집으로 탁발을 갔다가, 주인이 먹을 것을 가지러 간 사이에 마침 거위가 구슬을 삼켜 돌연 도둑으로 몰렸다. 사실을 말하자니 거위가 죽임을 당하는 살생계를 짓게 될 것이고, 거짓말을 하면 망어계를 짓는 것이니 몹시 고민스러웠다. 이윽고 비구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 때문에 고발되어 많은 매를 맞았지만 끝까지 참아내었다. 나중에 거위의 배설물에서 구슬이 발견되었다. 침묵이 거위도 살리고 구슬도 찾게 했으며 계도 지키게 한 것이다.”

이렇듯 말에 대한 경계는 지계와 수행을 생명으로 삼는 불가(佛家)에서는 더욱 엄격합니다. 십중대계(十重大戒) 중에도 말과 관련된 것이 40%, 즉 네 가지에 이르지 않습니까. 무릇 세간의 범부들도 말을 가려야 마땅하거늘 하물며 수행자에 있어서야 더할나위 있겠습니까.

최근 지방 사찰의 한 스님이 신도들에게 막말을 해 중앙종무기관에 고발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도들을 향해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고 어머니뻘 되는 보살님에게조차 당연하다는 듯이 뻣뻣이 앉아 큰절을 받으면서 상식에 벗어난 막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신도들이 고발을 했겠느냐만, 이런 일은 절집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절을 살다 간 고승들의 삶을 살펴보더라도, 늘 하심하고 말을 가려서 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도들에게는 물론이요, 당신의 상좌에게도 깍듯이 말을 높인 큰스님들도 적지 않습니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 이것은 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가려서 하는 것이야말로 말에 대한 경계가 철저한 우리 불교계가 앞장서 이끌어야 할 문화가 아니겠습니까.
 
〈대표이사〉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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