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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김수로왕비 허황옥

기자명 법보신문

신화 속 안개 거니는 한국 최초의 우바이

한국 여인들의 질기고도 순수한 불심은 이 땅에 불교를 지탱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왕실 여인들은 불교가 음지로 처했을 때나 양지에 처했을 때나 변함없이 온몸으로 불교를 지켜낸 가장 큰 버팀목이었고, 그 여인들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불심은 우리 불자들을 키워낸 젖줄이었습니다. 역사의 뒷켠에 가려졌던 그들의 이야기를 ‘한국왕실의 여인불자들’에서 다시 만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나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운명의 상대를 찾아 수만리 험한 바닷길을 헤쳐온 한 여인에게 이보다 더 달콤한 프로포즈가 있을까.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소개된 허황옥과 김수로왕의 만남은 한국역사상 최고의 프로포즈 장면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실존이냐 허구냐 의견 ‘분분’

상서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잔잔한 밤바다. 홀연히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붉은 깃발을 나부끼며 가야국을 향해 다가왔다. 해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왕의 사신들이 횃불을 드니 배가 북진해 해안에 닿았다. 이를 보고 왕의 신하 중 하나가 대궐로 달려가 아뢰니 왕이 듣고 기뻐하였다. (중략)

그녀가 점점 장막으로 가까이 오자, 왕이 나아가 함께 장막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고 단 둘이 남게 되자 그녀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인데 성은 허 씨요,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열여섯입니다. 올해 5월 부왕과 황후께서 저에게 말씀하기를, 어젯밤 꿈에 상제께서 나타나 ‘가락국의 왕 수로를 하늘에서 내려 보내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사람이다. 새로이 나라를 다스리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그대들은 공주를 보내 그의 배필로 삼게 하라’ 명하시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수로왕이 대답하기를 “나는 공주가 멀리서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그래서 지금까지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는 청을 따르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지금 현숙한 당신이 이렇게 저절로 왔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구려.”

그렇게 인사를 마친 둘은 나란히 장막에 마련된 침실로 들어가 두 밤을 지내고 또 하루 낮을 지낸 다음 비로소 장막을 나왔다.

수로왕의 프로포즈는 허황옥의 심중을 적중했다. 김수로왕으로부터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를 평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무려 2박3일 동안 침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만 봐도 수로왕이 던진 첫 마디는 이 여인에게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허황옥. 한국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성불자인 그녀는 실존했던 인물일까. 실존인물이라면 정말 인도에서 온 공주일까. 인도에서 수만리 바닷길을 따라 운명의 반려자를 찾아왔다는 허황옥와 김수로왕의 뜨거운 로맨스는 너무도 매력적이지만 선뜻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 또한 백인백색이다.

허황옥에 관한 전설은 ‘아유타국’이라는 나라의 이름과 수로왕릉 대문에 새겨진 ‘쌍어문’ 그리고 허왕후릉 비석에 새겨진 ‘보주태후’라는 지명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제각각 달라진다.

허왕후가 BC 5세기경 인도 갠지스강에 세워졌던 아요디아에서 왔다는 주장은 1970년대 아동문학가 이종기 씨의 동화에서 처음으로 제기됐다. 이종기 씨는 이어 1977년 태국 메콩강 유역에 아요디아 제국의 식민지인 아유티아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곳이 바로 허왕후의 나라라고 주장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

1987년 한양대 김병모 교수는 허왕후릉비에 새겨진 ‘보주태후(普州太后)’라는 문구에 주목했다. 중국 쓰촨성 보주에도 김수로왕릉의 대문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 문양 즉 쌍어문이 있음을 발견한 김병모 교수는 이를 토대로 ‘아요디아 제국에 반란이 일어나 그 일족이 중국의 옛 보주, 지금의 쓰촨성 일대에 머무르다가 김해 가락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홍익대 김태식 교수나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 등 비교적 최근에 허왕후와 관련된 논문을 쓴 학자들은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해석하는 데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수로왕릉 앞에 두 마리 물고기가 새겨진 정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세워진 것은 조선 정조대(1792)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우르크 Ⅳ기 문화에서 기원하는 쌍어문은 고대 인도 전역에서 널리 유행했던 문양으로, 중앙아시아와 중국·만주·일본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쌍어문이나 보주라는 지명이 허왕후의 존재를 해명하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대인들에게 인도라는 나라는 경전에 등장하는 나라였을 뿐, 가야와 인도를 잇는 바닷길이 열렸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허왕후의 아유타국이 곧 아요디아라는 고고학적 증거 또한 어디에도 없다.

허왕후와 관련된 또 하나의 비밀의 열쇠는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조’이다.

금관에 있는 호계사의 파사석탑은 옛날 이 고을이 금관국이었을 때 시조 수로왕의 비인 허왕후가 건무 24년(48) 서역의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처음에 공주가 부모의 명령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향하다가 파도의 신에게 노여움을 사서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아버지인 왕에게 그 까닭을 말씀드렸더니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고 명했다.

이에 그것을 싣고 무사히 바다를 건너 남쪽 해안에 도착하여 배를 정박시켰다. 그 배는 붉은 돛과 붉은 깃발을 단 것이 주옥처럼 아름다웠기 때문에 지금 그곳을 주포라고 한다. 처음에 언덕 위에서 비단 바지를 벗었던 곳을 능현이라 하고 붉은 깃발이 처음 들어간 해안을 기출변이라 하였다.

이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게 되면 한국에 불교가 처음으로 유입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이 아니라 서기 48년이 된다. 하지만 파사석은 인도에서만 나는 돌이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생산되는 돌이며, 다른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파사석탑 하나만 가지고 남방 해로를 통해 불교가 유입됐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수많은 이들이 제각각의 해석을 하고 있지만, 허황후의 이야기는 여전히 한국고대사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신화(神話)는 사실일 가능성도 적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 또한 희박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신화의 매력이다. 후대인들이 자신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발원인 동시에 그 사회 구성원들의 공통된 의식세계가 신화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사실여부를 떠나 허황옥의 이야기를 통해 고대인들이 찾으려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국토 꿈꿨던 애틋함 깃들어

BC 5세기경 인도 갠지스강 유역에 위치해있던 아요디아는 『승만경』의 배경이 되는 도시국가였다. 코살라국의 기타 태자가 부처님을 위해 기원정사를 지을 무렵, 그의 여동생이 시집간 나라가 아요디아다. 아요디아 국왕에게 시집간 승만은 아요디아에 부처님을 초청해 불법을 전파했다. 『승만경』에서 승만부인은 부처님 앞에서 10가지 서원을 세우는 설법을 펼친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내용이 옳다고 인가를 내리며 승만부인에게 장차 보광여래(연등불)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내렸다.

가야인들의 건국신화에 등장한 허황옥은 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한반도에 불교를 전하기 위해 건너온 승만부인의 화신일 수도 있다.

부처님이 나셨다는 그 멀고 아득한 나라에 대한 그리움은 거친 바다를 헤치며 가야국을 찾아온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그리움은 불심의 씨앗이 되었고, 이 땅에 불국토를 일구는 발원이 되어 뻗어나갔다.

역사적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허황옥은 앞으로 이 연재에 등장할 다른 여인들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이 여인을 ‘한국 최초의 불자여성’으로 꼽은 것은 인도와 가야를 연결 짓는 그네들의 이야기 속에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고자 했던, 그리고 이 땅에 불국토가 세워지기를 발원했던 고대인들의 애틋한 불심이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야’는 부처님 성도지 보드가야에서 유래된 불교식 국명이 아니던가. 가야인들은 자신들의 나라 이름에 부처님 성도지라는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불법이 서역이나 중국을 거치지 않고 인도로부터 직수입되었음을, 그리고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은 여인의 피가 자신들에게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믿고 싶었던 고대인들의 마음을, 어찌 역사적 증거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밀쳐버릴 수 있겠는가.

허황옥의 이야기는 신화와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노닐던 시절, 자신들을 구원해줄 연등불의 도래를 기다리던 옛사람들의 간절한 희원(希願)인 것을.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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