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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바다서 下心 가슴에 새겼죠”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01.30 11:17
  • 댓글 0

하룡건설 기획실장 이용하심 보살

10년 전 친구의 배신
재산·가족 모두 잃고
위안 찾아 3년간 고행

‘내가 곧 부처’ 깨닫고
한 조각 욕망도 털어내
도반들과 새 삶 개척

<사진설명>용하심 보살은 매일 아침 참회아 이웃에 대한 축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둠이 사그라지는 이른 새벽, 경기도 광주 한꽃 빌리지 5층에 마련된 임시법당에서 아침 예불과 독경을 마친 이용하심(53) 보살은 평소처럼 부처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으로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합니다. 오늘 하루도 나와 인연을 맺은 이 모두가 부처님입니다. 일체 만물이 행복하기를 발원합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0년째 이어오고 있는 아침의 일상이다. 이 시간만 되면 입가엔 미소 꽃이 핀다. 참선하면서 웃는다니, 안거 도량이었다면 용하심 보살의 등엔 장군죽비가 불호령을 내렸을 터. 그러나 그녀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노라면 미소가 절로 흐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그녀는 심한 배신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직접 당하고보니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토록 믿었던 친구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빚보증을 서준 것이 그렇게 큰 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용하심 보살은 전선을 만드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CEO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의 재산을 가진 재력가였다. 친구의 배신으로 안게 된 부채는 수십 억원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빚잔치를 위해 내놓았지만 그래도 빚을 갚을 수 없었고, 한참 동안 빚 독촉에 시달려야만 했다.

배신한 친구를 원망할 새도 없이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공무원인 남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3, 고1인 두 자녀가 겪을 고충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어차피 혼자 감내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어떠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했다. 당시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가슴속에서 불덩이 같은 독기가 치밀어 올랐다. 친구에 대한 원망과 미움으로 세상 모든 것이 증오스럽기만 했다.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삼독(三毒)의 불길을 가슴에 안은 채 발길 닿는 대로 향하다가 도착한 곳은 어릴 적부터 다녔던 삼각산 도선사였다.

“부처님 법을 따르면 잘 살수 있다면서요? 많은 돈을 절에 보시하고 양로원, 고아원에도 베풀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저를 하루아침에 내동댕이칠 수 있나요?”

부처님을 마주하자 원망과 한탄이 눈물과 섞여 쏟아졌다. 부처님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밀려오자 이곳의 부처는 나의 부처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나를 버린 부처가 아닌 나를 지켜줄 부처를 찾아 길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결국 그녀는 부처님을 찾아 전국의 사찰을 떠도는 고행을 시작했다.

설악산 봉정암을 21번째 오르던 어느 날, 6개월간의 고행으로 용하심 보살의 몸은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었다. 발톱은 빠지고 무릎은 저려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 하는 고통을 맛보았다.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워진 몸뚱이를 끌다시피 하며 봉정암을 오르는 동안 고통을 잊기 위해 입으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원망과 증오를 잊은 채 오직 관세음보살님만을 찾으며 마음을 집중했다. 그리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마침내 21번째 봉정암 석가사리탑을 마주했다.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깜깜한 동굴 속의 무명을 헤치듯 마음이 환해졌다.

‘모두가 내 탓인 것을 그 원인을 다른 사람과 부처님에게 돌리려 했다니….’

무릎을 내리쳤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찌릿한 전율이 흘렀다. 한없이 부끄러워 울지도 못한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지금껏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온 ‘내 마음이 부처’라는 의미를 이제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한 것이다.

한 생각을 바꿨을 뿐인데 마음 속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원망해야 할 대상도, 구해야 할 나만의 부처도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토록 갈구하던 해답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그리움과 상실감이 용하심 보살을 휘감았다. 뼈 속 깊이 감춰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무섭게 그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가족에게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또 천륜마저 버리고 돌아선 매정한 자신을 용서하리란 확신도 없었다.

그녀는 다시 고행의 길을 택했다.

“인연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인연은 스치는 것일 뿐입니다.”

보성 대원사에 도달했을 때 현장 스님이 용하심 보살에게 던진 말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그것도 단지 합장 반배했을 뿐인데 스님은 한 없이 자비로운 얼굴로 용하심 보살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아픔을 콕 짚어 낸 것이다. 얽혀있던 삼독의 실타래가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용하심 보살은 한 조각 남아있던 과거에 대한 욕망마저 깨끗이 털어냈다.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웠고 편했다. 3년간 헤맸으나 긴 고통의 터널은 찰나로 다가왔다.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모두가 떠나버린 그녀 옆에는 어느새 새 얼굴들이 하나 둘 다가왔다. 도반이었다. 그리고 함께 일해 보자는 사람들도, 함께 일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모여 만든 회사가 지금 그가 몸담고 있는 ‘하룡건설’이다. ‘불자들이 모여 집을 짓는 회사’는 믿음과 신용을 바탕으로 3년 만에 재무 구조가 탄탄한 회사로 거듭났다.

큰 돈은 아니었으나 여유가 생기니 용하심 보살의 눈에는 어려운 이웃들의 아픔이 들어왔다. 불현듯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같은 소망이 떠올랐다.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에 일요일 무료급식 봉사를 시작했다. 일요일은 지역 복지관마저 문을 닫아 독거노인들에게 가장 힘든 하루다. 어버이날에는 어르신들을 초청해 노인잔치를 열었다. 추석과 설 등 명절에는 2~3일간 먹을 수 있는 쌀과 밑반찬을, 겨울이 오기 전에는 정성을 양념으로 버무린 김장을 담갔다. 그리고 매달 20여 명의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에게 3만원씩 보시했다. 온전히 그의 힘만으로 일을 하다 보니 한 달 벌이의 대부분이 이웃을 위한 보시에 사용되고 있다.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나 평탄한 길만 걸었다면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을 몰랐을 거예요. 아무래도 부처님께서 가장 빠른 방법으로 참 행복을 가르쳐주려 그렇게 하셨나봐요.”

용하심 보살은 지난해 큰 서원 하나를 세웠다.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실천하며 가까운 도반과 함께 살아가는 수행공동체 마을을 세우는 것. 이 마을은 이미 경기도 광주군 초월읍 신월리 무갑산 초입에 ‘우리는 한꽃 빌리지’라는 이름으로 조성돼 있다. 3개동 21가구로 구성된 한꽃 빌리지는 10가구가 분양된 상태다. 용하심 보살은 분양이 모두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단지 내에 불교도서관을 겸한 법당을 마련, 공동체 마을의 불자들이 늘 수행하고 정진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다.

“마을에 사는 모든 대중들이 출근할 땐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발원하고, 퇴근할 땐 하루 일상에 대해 참회하며 불자답게 살아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불자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는 용하심 보살은 늘 하심(下心)을 강조했다.

“하심은 낮은 곳에서 세상을 보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낮추어 낮은 곳으로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마음이지요.”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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