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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렴! 킹콩

기자명 이상교
살아나렴! 킹콩

글·이상교 그림·노성빈

'에이, 귀찮아…'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른 애들이 기르는 햄스터는 잘도 죽던데, 용일이가 기르는 햄스터는 잘 돌보지 않는데도 팔팔합니다.

'먹이 주었니? 목욕은 시켰니? 아이구, 냄새! 밖에 좀 내놓으렴.'

식구들마다 햄스터에 대해 한 마디씩 잔소리를 했습니다.

'형 햄스턴데 어째서 나한테만 시켜요?'

엄마께 따졌습니다.

'함께 샀으니 네 햄스터도 되잖아?'

엄마가 대답하기 전에 누나가 앞서 말했습니다.

햄스터 한 마리를 기르기 시작한 지 석 달이 되어갑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모르면서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기르기 시작했을 때는 햄스터의 먹는 모습, 노는 모습이 다 신기하고 귀여웠습니다. 자는 걸 들여다보아도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용일이 생각에도 수놈 같았습니다. 귀여운 편이긴 하지만 들창코에 꼬리는 돼지 꼬리를 닮았습니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용일이는 일기를 쓸 때입니다. 햄스터가 쪼록,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누었습니다. 몸집에 비해 오줌 누는 소리는 컸습니다.

'하하하! 그놈 오줌 누는 소리 한번 크다!'

아빠는 신문을 접으며 웃었습니다. 다림질을 하던 엄마도 웃고 용일이도 킥킥 웃었습니다.

'수컷이면 더 좋아요.'

처음에 용일이는 햄스터가 용일이와 같은 남자인 것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햄스터가 수컷이든, 암컷이든 귀찮았습니다. 친한 친구인 은광이가 토끼 한 쌍을 기르는 것을 본 뒤로 부쩍 더했습니다.

'토끼는 훈련시키면 오줌도 가린대.'

은광이는 제 토끼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햄스터에게 오줌 누기를 가르친다는 건 쉬운 일 같지 않았습니다.

'네 햄스터가 꼼짝 않는구나

얼어서 죽었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못 지어줬는데…

일요일에는 은광이와 함께 영화사 절 어린이 법회에 갔습니다.

'오늘은 시간에 맞춰 잘 왔구나.'

어린이 법회를 이끄는 화평 스님을 절 문 앞에서 만났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은광이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용일이는 쑥스러워서 입만 벙긋 벌렸다 다물었습니다. 법회 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스님을 따라 법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법회를 시작하기 전에 끝말잇기를 먼저 했습니다. 다른 때도 스님이 하는 얘기를 잘 듣게 하려고 끝말잇기 아니면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같은 것을 먼저 했습니다.

'누가 아는지 보자.'

스님이 문득 말했습니다.

'내가 산에 있는 절에 가면서 커다란 나무 지팡이를 쿵쿵쿵 짚고 간다면 무슨 까닭에설까? 대답해 볼 사람?'

스님은 법당 안 아이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산길이 꼬불꼬불 힘들어서요.'

곁에 앉은 은광이가 대답했습니다.

'멧돼지 같은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지팡이를 휘둘러 쫓으려고요.'

이번에는 기열이 형이 말했습니다.

'두 가지 대답이 다 틀린다.'

스님은 반짝거리는 스님 머리를 손으로 쓸었습니다.

'뭐지? 스님은 젊기 때문에 허리나 다리가 아플 리는 없고…'

용일이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맞는 대답을 해서 아이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습니다.

'모르겠니? 그럼, 내가 이야기해 주마. 어째서 쿵쿵쿵 짚으면서 산길을 걷는가 하면 눈에 안 띄게 작은 벌레들이 내가 걷는 발 밑에 밟혀, 죽거나 다칠 것을 걱정해서 멀리 달아나라고 쿵쿵쿵 신호를 보내는 거란다. 사람이나 동물, 눈에 안보이게 작은 풀벌레라도 살아있기는 다 같아서다.'

스님은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용일이는 발 밑을 조심조심 살피며 걸어왔습니다. 개미라도 밟을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용일아, 이리 나와 보렴!'

베란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형은 학원 다니느라 바빠 햄스터한테 마음 쓸 겨를이 없습니다.

그저께 밤 용일이는 잔소리 듣는 것이 싫어 햄스터 장을 아예 베란다 구석에 내놓았습니다.

'빨리 나와 보래두!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베란다에 놓인 슬리퍼 바닥이 차가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 좀 봐라. 네 햄스터가 꼼짝 않는구나.'

엄마는 햄스터 집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햄스터는 제 먹이통 옆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꽃샘 추위가 아직 남은 걸 잊고 밤새 햄스터를 베란다에 내놓은 것이 탈이었습니다.

'얼어서 죽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빨래를 마저 넌 엄마는 햄스터 집을 용일이 손에 건네주었습니다. 햄스터는 따뜻한 거실 안으로 들여놓았는데도 웅크린 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뭐랬니? 산 짐승을 함부로 기르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았니?'

엄마도 속이 상해했습니다.

'정말 죽었으면 어쩌지?'

햄스터 집 바닥은 청소를 해주지 않아 오줌과 먹이 찌꺼기로 지저분했습니다.

용일이는 기다란 붓자루로 햄스터의 옆구리, 궁둥이를 쿡쿡 찔렀습니다. 그랬는데도 햄스터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죽지 마! 임마.'

돼지코를 닮은 분홍 콧구멍과 주둥이를 붓털로 간지려도 보았습니다.

'야!'

이번에는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은 햄스터를 옆으로 쓰러뜨렸습니다. 거꾸로 뒤집어 놓아도 놓인 그대로였습니다.

'제발 죽지 마! 먹이도 잘 주고, 심심하지 않게 놀아주고 그럴게. 응? 나무관세음보살…'

화평 스님의 지팡이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떡하지? 나무관세음보살…'

햄스터는 딱딱하게 굳었습니다. 분홍빛 손발이 유난히 발갛습니다. 꽃샘 추위에 꽁꽁 얼어죽고만 듯 했습니다.

'정말 죽었니?'

엄마가 물었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죽고만 햄스터를 건드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어디 죽었어? 안 죽었잖아!'

'이 햄스터를 불사조로 부를까?'

'킹콩 어때? 콧구멍이 닮았잖아'

'화장지로 싸서 바깥 쓰레기장에 버리고 와라. 놔둔다고 도로 살아날 것도 아니잖니?'

'형한테는 뭐라고 말하구요?'

그것도 걱정됐습니다.

'뭐라고 말하긴. 할 수 없잖니?'

형하고 같이 학교 문구점으로 햄스터를 사러 가서는 한 시간이나 걸려 햄스터를 골랐습니다. 사 가지고 집으로 데려올 때 용일이는 형과 열 걸음씩 번갈아 가며 햄스터를 안고 왔습니다.

용일이는 하는 수 없이 죽은 햄스터를 화장지로 조심조심 감쌌습니다.

'이름도 지어준다고 하면서 못 지어 주었는데… 이따가 형 오면 죽은 햄스터라도 보여주긴 해야 할거야.'

형이 믿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용일이는 화장지로 감싼 햄스터를 제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형은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야 학원에서 돌아왔습니다.

'형, 햄스터…죽었어.'

좋아하는 땅콩을 주면 입 속에 한꺼번에 몰아넣고 쩔쩔매던 꼴이 생각났습니다.

'죽었다구? 어디 있어?'

형은 놀라며 물었습니다.

'형 오면 보여 주려고 내 서랍 속에 넣어 두었어.'

용일이는 제 책상 맨 위 서랍을 열었습니다.

'으응?'

화장지를 온몸에 감고 고개를 돌래돌래 돌리고 앉은 햄스터! 햄스터는 작고 반짝이는 눈으로 용일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어디가 죽었어? 안 죽었잖아!'

형은 햄스터가 달아날까 봐 손으로 얼른 감싸 안았습니다.

'분명히 죽었었는데…엄마도 죽었다며 화장지로 싸서 밖에 내다버리라고 말했는데…'

용일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햄스터가 되살아나 다행이었습니다.

'몸이 꽁꽁 얼어 정신을 잃고 있다가 네가 화장지로 돌돌 감싸주어 몸이 녹아 되살아났나 보다.'

엄마가 와서 들여다보고 웃었습니다. 햄스터가 죽었던 건 정말입니다. 되살아난 것도. 엄마가 증인입니다.

'형, 이 햄스터 이름을 불사조라고 지을까?'

'불사조는 죽지 않는 새를 말하는 거야. 다르게 지어야 할거야.'

'그럼, 킹콩이 어때? 콧구멍이 킹콩 콧구멍 같잖아.'

형은 불사조보다 킹콩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습니다.

킹콩! 킹콩은 콧구멍을 발름거리다 제 집 철망에 분홍발 네 개로 거꾸로 매달렸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크거나 작거나 목숨을 타고나기는 모두 같다고 했지! 킹콩, 고마워! 나무관세음보살!'



작가소개

이상교 님은 49년생. 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입선하면서 등단. 85년 한국동화 문학상을 비롯해 93년 해강아동문학상, 96년 세종아동문학상, 99년 불교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한국아동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동화집 『옴팡집 투상이』(현암사), 『열 두 살의 봄』(대교출판사),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의사 선생님』(푸른책들), 『꼼쥐가 사랑한 세상』(지경사) 등이 있으며, 동시집 『우리집 귀뚜라미』(대교), 『나와 꼭 닮은 아이』(현암사), 『일 학년을 위한 동시집』(지경사)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노성빈 님은 67년생. 서울산업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출판미술가 협회 회원으로 한국프뢰벨, MBC 뽀뽀뽀 미술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그림 두루마리전에 참가한 바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동화집 『달님이 보았대요』(한국셀로비), 『후텁지근 임금님의 털장갑』(한국셀로비), 『뽀기뿌기 로봇배』(한국페스탈로지), 『하늘나라로 간 그림』등에 삽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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