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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와 인문학

기자명 법보신문

김 광 하
작은손길 대표

지난 1월 16일 성공회대학교 성미카엘 성당에서 노숙인 11명이 인문학 과정을 수료하고 수료증을 받았다.

이들은 성공회에서 마련한 철학과 문학 그리고 문화체험 등의 인문학을 공부하고 마침내 수료증을 받은 것이다. 노숙인들은 한결같이 인문학을 공부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지난 8개월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이런 새로운 시도는 이미 프랑스에서 몇 년 전부터 시행하기 시작하여 좋은 성과를 거둔 새로운 자활프로그램이다.

노숙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부랑자와는 다르다. 아이엠에프 이후 우리사회에 새로이 등장한 노숙자는 경제의 양극화 현상과 고도 산업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노숙자로 추락하기까지 대개 2년에서 3년, 길게는 5년까지 걸린다고 한다. 직업을 잃거나 빚에 쫓겨 가정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값싼 고시원을 드나들다가 결국 길에서 노숙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주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다가 결국 좌절하는 과정에서 사회나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접게 된다.

우리 단체는 지난 2년간 노숙인 쉼터(사명당의 집)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낮 동안 목욕과 옷을 세탁할 수 있게 하고, 점심과 차를 대접했다. 노숙인들은 쉼터에 들어오면 누가 그 단체의 주인인지, 또 무슨 이유로 자기들에게 이런 도움을 주는지 파악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종교인지 물어서 친근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쉼터가 다른 곳보다 시설이 못하지만 찾아온다고 아부성 발언을 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당사자의 마음이 어찌 편할 수가 있을까?

노숙자들은 사소한 일에도 매우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해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들은 비록 설익지만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려고 애썼다. 쉼터를 출입하는데 일체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다.

노숙인들은 조건없는 대접에는 서툴다. 조건이 없다고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 속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거래가 있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 끼의 밥이나 하루 밤 쉬는 대가로 종교를 믿어야 한다면, 곧 자신의 양식이나 영혼을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인도에서 활동한 고 테레사 수녀는 거리에서 죽어가는 부랑인들을 데려와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도왔다. 알다시피, 인도는 힌두교 이외 다른 종교에 대해서 저항이 거센 곳이다. 테레사 수녀에게서 발견하는 놀라운 점은 인도에서 활동을 할 때 포교를 하지 않는 것을 첫째 원칙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로 인해 테레사 수녀의 사랑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졌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포교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부나 세금의 재분배를 통한 복지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고통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글머리에 언급한 성공회 사례는 불자인 우리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노숙자가 길에 나앉게 될 때까지 겪은 미움과 불신, 자괴감에서 벗어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교는 인문학 이상으로 소유에 대한 성찰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져 있는 종교가 아닌가! 경전에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과 깨달음으로 이끄는 법보시가 둘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사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불자들의 화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자비와 무주상 보시를 실천하는 것이 불자된 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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