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달마가 말없이 구법제자를 맞다
동굴 속 달마가 말없이 구법제자를 맞다
  • 법보신문
  • 승인 2007.03.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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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종(禪宗)사찰 순례기

1. 소림사(少林寺)

<사진설명>우리의 일주문 정도에 해당하는 패방에 새겨진 ‘숭산소림’이라는 글자가 소림사에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재가불자들의 간화선 수행 열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개발원이 ‘선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중국 선종사찰 순례단을 구성, 3월 5∼11일까지 소림사에서 운문사까지 중국 선종사찰을 순례했다. 50여 명의 재가불자들이 참여한 순례길을 함께 했다.

“내가 즉위한 이래 오늘까지 많은 절을 짓고, 많은 경전을 사경하고 또 수많은 승려에게 공양을 해왔소. 이 모든 것들이 얼마만큼의 공덕이 되겠소?”
“전혀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 성스러울 것도 없는 커다란 공(空)입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대는 누구십니까?”
“모르겠습니다.(不識)”

남천축국 향지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인도 27대조 반야다라에게 법을 받은 보리달마는 “내가 열반에 든 후 67년 뒤에 동쪽 나라에 가서 법약(法藥)을 크게 베풀라”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중국 땅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불심이 깊어 불심천자(佛心天子)라 불리며 금강경을 강의할 정도로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양무제도 달마의 스승 반야다라가 예언한 것처럼 유위법의 인연 짓기를 좋아할 뿐 법기(法器)는 아니었다.

곳곳에 문명의 이기 흔적

달마는 곧바로 무제를 떠나 양자강을 건넜다. 그리고는 하남성 등대현 숭산에 올라 면벽 수행에 들어갔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소림사(少林寺)다. 소림사는 496년 북위의 효문제가 북위불교의 대표적 고승이었던 불타(佛陀)선사를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중국선종의 영향으로 선불교가 발달한 한국불교에는 중국선종의 초조 보리달마의 수행도량이자 혜가 스님에게 법을 전한 전법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세간에서는 무공이 뛰어난 스님들을 연상하는 중국 무술의 메카로 여겨지고 있다.

<사진설명>소림굴 안에 들어서면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가 향객을 맞는다.

소림사는 위기에 처한 당 태종 이세민을 스님들이 구출한 것이 인연이 되어 맹수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사찰에서만 전해지던 그 무술이 밖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은 국가에 의해 무술의 메카로 부상했다. 숭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각종 무술학교는 소림사 입구까지 무려 50여 개에 달하고 무술을 배우려고 찾아든 사람만도 2만 명이 넘는다.(100여 개 학교에 5만 명이 넘는다고도 함)

조사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소림사를 찾은 순례단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숭산소림이라는 글씨가 눈에 선명한 패방을 지나면서 소림사 천왕문까지 운행하는 미니차량을 이용했다.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자 오늘날까지 전설처럼 내려오는 혜가 스님의 단비구법(斷臂求法)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보리달마가 달마굴에서 9년의 기다림 끝에 중국에서 첫 법을 전한 선종역사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한 입설정(立雪亭)이다.

입설정엔 조사상 봉안

면벽을 하고 앉은 스승에게 법을 구하고자 쌓인 눈이 무릎을 덮어도 밤이 지나는 동안 자세 한번 흩트리지 않고 구법의 의지를 불태우던 혜가가 “천하에 붉은 눈이 내릴 때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스승 달마대사의 한 마디에 팔뚝을 잘라 바치며 확고한 구법의지를 보였던 곳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자체의 사실 여부를 떠나 정작 단비구법의 현장은 이곳 입설정이 아니라, 달마굴 앞이라는 게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입설정에는 초조 달마에서 5조 홍인까지의 조사상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입설정 옆으로 문수전이 자리하고 있다. 문수전 안에는 달마가 9년간 면벽한 모습이 비춰져서 그대로 새겨진 달마굴 내부의 벽채를 옮겨 놓은 면벽석이 있다.

소림사에는 3백여 개의 비석과 석각화가 있는 비림(碑林)이 유명한데, 이 비림은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입설정 뒤편으로 돌아가면 서방에서 온 달마를 기리는 서방성인전이라는 전각이 별도로 세워져 있어, 향객(香客·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소림사 본사를 나오는 길에는 한국의 조동종에서 세운 기념비가 또 다른 기념석들과 함께 세워져 있다.

소림사를 나와 왼쪽으로 난 오솔길이 달마굴로 향하는 길이다. 문명의 이기는 이곳에도 있었다. 이곳에서 계단이 시작되는 곳까지 경운기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촉박한 순례단 역시 이 경운기를 이용했다. 10여분을 올라가니 더 이상 경운기 이동이 불가능한 계단이 나타났다.

40여분 가파른 계단을 올라 달마굴 앞에 서니, 입구에 돌기둥으로 산문을 세워 음각한 묵현처(默玄處)가 눈에 들어온다. 1평 남짓한 굴 안에는 달마가 벽이 아니라 입구를 바라보며 순례객을 맞고 있다. 그 오른편에는 잘린 혜가의 팔이 붙어 만들어졌다는 전설과 함께 팔 모양이 부조로 된 돌이 보이고, 팔에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네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사진설명>혜가 스님이 구법의지를 보이며 잘라낸 팔이 동굴벽에 붙어있다.

스승의 법을 부촉 받아 동토로 와서는 이곳 소림굴에 들어앉아 9년 동안 법을 전할 제자를 기다린 달마와 팔을 잘라 강력한 구법의지를 보인 혜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찌 이 앞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조사 스님들의 흔적을 찾아 조사들이 전하고자 했던 마음의 본질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면면히 이어져온 선맥을 올곧게 이어가겠다는 발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혜가 스님은 날카로운 칼을 뽑아 왼팔을 끊어 달마대사 앞에 내 놓으며 법을 구한 이 자리에서 물었다.

“화상께서 제 마음을 편안케 해 주십시요.”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 편안케 해 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아지면 그것이 어찌 너의 마음이겠느냐.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 마쳤다.”

혜가 스님은 달마대사의 이 한마디에 크게 깨달았다. 이는 달마 스님이 동토에 전한 선의 실체요 정수이며, 중국의 선맥을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선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수많은 선승을 낳는 원류가 되었다.

초조암서 다섯 비구니 수행

달마굴 위쪽으로 오유봉 정상에 높이 12미터에 달하는 달마좌상이 있고, 올랐던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초조암을 볼 수 있다. 전각 하나에 요사채 하나가 전부인 초조암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살고 있고, 혜능 스님이 심었다는 측백나무가 1300년의 풍상을 이겨내고 곧게 서 있다.
 
하남성 숭산=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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