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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대하여

기자명 법보신문

욕망 버리라는 게 불교지만
교계마저 욕망의 노예화 만연
지금 불교계에 ‘불교’있는가

욕망의 의미란, 아직 구하지 못했거나, 이미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 나아가서는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을 채우려는 욕구가 아닐까 합니다. 다시 말해, 바라는 것,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또한 욕망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도덕론자들에게는 이성과 의지에 의해 반드시 소멸되거나 통제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물론 욕망에 대한 다른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라캉은 욕망을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라고 했습니다. 사막을 걷는 나그네가 오아시스를 보고 지친 발걸음을 내딛듯이, 인간의 꿈도 신기루처럼 허망하다 하더라도 그 꿈이 있기에 살아가려는 의지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루처럼 얻으려는 대상은 막상 쥐는 순간에 저만큼 물러나는 것과 같이 충족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결국 욕망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대상은 죽음뿐이라고 했습니다.

라캉은 그의 유명한 ‘욕망이론’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특히 자신의 욕망을 대의명분 속에 숨기려 들 때 욕망은 권력자의 눈길처럼 음험해지며, 오직 인간은 대상이 허상임을 알 때 그것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시선 속에 욕망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을 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미덕으로 자신의 이론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사유과 통찰의 깊이에서 비교를 할 수 없겠으나, 이는 금강경의 사구게 ‘범소유상개시허망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를 연상시킵니다.

과문하지만, 욕망을 음험한 대상에 방치해 두지 않고, 갈래갈래 분석하여 그 극복의 길을 제시한 가르침은 아무래도 불교가 으뜸일 것 같습니다. 장자(壯子)의 허심일물(虛心任物), 즉 허심으로 사물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춰 욕망을 버리고 살아가라는 가르침도 돋보이기는 하지만 왠지 형이상학에 치우친 감이 큽니다. 기독교도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을 신의 영역으로 환치시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듯 합니다.

허우성 교수의 ‘불교의 욕망론’이란 논문에 따르면, 불교에서는 ‘동요와 괴로움의 원인을 그 중심에 위치한 알맹이 없는 자아와, 그것의 내 것 만들기라는 욕망행위’로 봅니다. 그리고 그 극복의 방법은 계정혜 삼학이며, 결과는 적멸과 안락의 일주와 무행위라는 점을 일단 제시합니다. 또 예서 멈추지 않고 다시 무행위주의가 초기불교내의 최후의 목표가 아니라 멈춤에 대한 도전과 비판의 계기, 즉 자비, 보살행의 도입을 강조하는 패러다임을 드러냅니다. 범천의 권청이나 붓다의 전도선언, 대승의 육바라밀과 같은 역동적 행위들은 곧 개인과 사회의 안락을 가로막는 욕망의 해결 프로세스로 등장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늘 안타까운 것은 이런 좋은 대안이 과연 불제자들 사이에 기능하고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작금의 불교계에는 승속을 불문하고 마치 부나방처럼 끝없는 권력욕과 재물욕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욕망의 끝은 어딘지, 과연 끝이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들에게 욕망의 끝은 죽음의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대념처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매몰되어 있는 당사자들에게 꼭 필요한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생각에, 일부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맺습니다.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 안에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안다. 또는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 안에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안다. 또한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를 알고, 또한 생겨난 감각적 욕망이 버려지게 되는 이유를 알고, 또한 버려진 감각적 욕망이 미래에도 생겨나지 않게 되는 이유를 안다.” 

〈대표이사〉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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