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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경』 ③

기자명 법보신문

바라는 만큼 채워지지 않는게 괴로움 실상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願)이 있기 마련이다. 이곳과 저곳이라는 공간적인 구별은 원의 보편성을 제한하지 못한다. 옛날과 오늘이라는 시간적인 차별도 그 타당성을 막을 수 없다. 원은 삶의 근원으로부터 말미암아, 끝없는 만족을 향해 멈추지 않고 피어나는 생명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원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경전의 말씀은 이렇다. 그때 세자재왕부처님이 법장(法藏)비구에게, “그대가 수행하고자 하는 바와 불국토(佛國土)를 장엄하는 일은 그대 스스로 마땅히 알고 있는가?”하고 물으셨다.

이에 구도자는 참으로 가슴 깊숙한 데서 우러나오는 솔직한 대답을 한다. “부처님, 그런 뜻은 너무 넓고 깊어서 제가 알 수 있는 경계(境界)가 아닙니다. 모든 부처님들이 정토(淨土)를 이룩하신 수행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여주십시오. 제가 듣고, 마땅히 말씀하신대로 수행하여, 원하는 바를 원만히 성취하겠습니다.”

생사(生死)가 엄연한 세계에서 펼쳐지는 원이라면, 어쩔 수 없이 자체 한계를 갖는다. 인정되는 모든 것 또한 생사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생사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성취는 맹목적인 추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대단한 구원의 약속을 믿고 따르더라도 결과는 언제나 생사의 삶을 사는 자신의 부질없는 욕망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래서 괴로움이 그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법장비구는 “제가 알 수 있는 경계(境界)가 아닙니다”하는 고백을 한다. 바라는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야 말로 괴로움의 실상이다. 사소한 삶의 모습들로부터 궁극이라고 믿어지는 성취에 이르기 까지, 온갖 바램은 생사의 굴레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벗어나고자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어쩔 수 없는 괴로운 현실. 이는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살까 말까하는 선택의 대상도 아니다. 생사속의 삶이란 원래 그렇다. 막연히 바라는 의욕만으로 생사의 세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 속에 안주하여야 한다면, 완전한 원이라고 할 수 없다. 원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고, 확실히 실현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은 처음부터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마침내 부처님은 법장비구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모두 나타내 보여주시고, 법장비구는 그에 걸맞는 원을 세운다. 그렇다. 원은 나라고 하는 개인의 현실을 비추는 빛과 같다. 여기에 원(願)의 진면목이 있다. 그래서 원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힘을 갖는다. 다양한 얼굴을 갖으면서도 무한(無限)한 역동성을 발휘한다. 이는 원을 성취하는 행(行)이 제 몫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괴롭다고 하는 삶의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그 한계에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바램의 폭과 깊이는 한결 더해간다.

이를 경전에서는 “오겁(五劫)이라는 엄청난 시간 동안의 사유(思惟)를 통해서 선택(選擇)하였다”고 증언한다. 당연히 갖가지 성취를 바라는 한편으로 괴로움에 어쩔 줄 모르는 모든 사람들의 고뇌를 자신의 고뇌로 떠안는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모든 관계의 총체임을 절실히 깨닫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성취를 부러워하지도 얕보지도 않는다. 다만 존중할 따름이다. 자신의 행은 단순한 개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 더 나아가서 모든 생명들에게 까지 이른다.

따라서 원(願)이 나아가는 길에는 거칠 것이 없다. 실현의 때를 가리지 않는다.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실현되지 않는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이는 곧 실현하는 때가 따로 없기에, 언제나 실현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다함이 없는 원에 의해 우리의 삶은 다시 태어나고, 동시에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획득한다. 무한한 원이 한계상황(限界狀況)에 갇힌 모든 사람들을 향한다. 한없는 인연(因緣) 속에 들어가, 인연 자체가 되어, 인연을 체득하면서 말이다.
 
여여 문사수법회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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