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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장애인 포교15년 연화원 이사장 해성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수화를 벗삼아 마음 속 장애를 덜다

<사진설명>해성 스님은 1998년부터 장애인을 위한 운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수화로 운전교습을 하고 있는 해성 스님.

비교하지 않는 삶은 축복이다. 정진하는 수행자들의 ‘몰록’거리는 깨달음도 무명으로부터 오는 어두운 분별에 대한 완벽한 해소가 목적일 터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 연화원 이사장 해성 스님은 인연있는 이들에게 분별심(?)을 가질 것을 역설한다. 그것도 다다익선(多多益善), 욕심껏 많이 말이다. 스님이 말하는 분별은 물욕을 극대화하고 번뇌를 가중시키는 부정적 의미의 비교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자각, 나보다 낮은 곳에 처한 이들에 대한 작은 관심이다.

93년 광림사서 첫 수화 법회

“주변을 살펴보면 신체의 불편함으로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편안함에 안주해 장애인들의 불편함에 큰 관심을 두지 않지요. 나와 조금 다른 이웃에 대한 배려, 이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분별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애인 포교 사각지대라는 불교계에도 최근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시나브로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훈풍은 15년을 한결같이 장애인과 울고 웃었던 해성 스님의 원력과 보살행이 밑거름임을 부인할 이들은 없다. 스님은 1993년 도심포교당인 광림사에 연화복지학원을 개원한 이후 수화법회를 시작으로 한글, 서예, 운전, 꽃꽂이, 컴퓨터 교육 등 장애인을 위한 각종 교양강좌를 개설했다.

또 불교수화용어집과 불음가요 음반 ‘넌 혼자가 아니야’를 발간하고 장애인 세상 나들이 행사를 갖는 등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도 함께 경주해 오고 있다.

“동대 선학과와 삼선승가대학에서 공부하며 불교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그래 봉사할 곳을 찾다가 ‘사랑의 전화’라는 곳에서 봉사를 하게 됐지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1년에 한번 장기 자랑을 해요. 그래서 발표회에서 보여줄 것이 없을까 찾다가 불교에서 유일하게 수화교육을 하던 조계사 원심회와 인연이 닿았어요.”

그러나 원심회와의 인연은 평범한 수행자의 삶을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돌려놔 버렸다. 수화를 배우다, 그만 청각장애인들의 빈한한 삶에 자비심이 동해 버린 것이다.

“말을 못하니 부모와도 자식과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외톨이라고. 버림받은 몸이라고. 불교공부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수화하는 스님이 없으니 배울수도 없다며 모두들 저를 쳐다봐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한글-컴퓨터 등 교양 강좌 시작

조금 불편할 뿐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세상은 출구없는 암흑이었다. 쏟아지는 편견과 멸시. 그들은 맨 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스님은 마치 내일인양 가슴이 먹먹했다.
“능력도 없는 저를 바라보는 그들의 간절한 눈길은 그대로 뾰족한 송곳이었어요. 그 인연으로 장애인 포교를 시작하게 됐지요. 1993년 2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음으로 수화법회를 열었을 당시 참석했던 그들의 환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청각장애인들은 천성적으로 문장 구성이 서툴렀다. 수화 자체가 토막 단어로 이뤄진 불완전한 언어인 탓이다. 편지 한 장 쓰는 것에 그토록 버거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글 교실은 그래서 시작됐다. 글을 알아야 세상과 소통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문장 구성법을 가르치고, 편지 쓰는 법을 알려주고, 수화에 없는 형용사를 이해시키고,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장대했다. 글을 읽고 쓰게 되자 일반인들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세상도 조금씩 문이 열렸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는 마치 봄날 나무에 새순이 돋듯 따뜻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편지를 주고 받으며 불신의 벽은 하나 둘 무너지고, 스님에게는 부모와 가족들의 감사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함께 손잡고 법회에 참석하는 가족들이 늘어갈 때마다 가슴은 보람으로 뻐근했다. 스님은 내친 김에 한문에, 사군자에, 컴퓨터에 강좌 과목을 계속해서 늘려갔다.

그러나 스님의 마음에는 알알이 작은 고민들이 박혀 있었다. 수화로 법문 하는 것은 사실 쇠귀에 경 읽기와 다를 바 없었다. 불교 관련 용어도 부족하고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용어조차도 불교에 대한 왜곡이 심했다.

“당시 수화책이 30여종이 있었는데 불교 관련 용어가 3개에 불과했어요. 그나마도 타종교인이 주축이다보니 불교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었지요. 그래서 원심회와 힘을 모아 불교수화용어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정작 힘들게 불교용어를 만들어 수화 관련 기관에 수록을 요청을 했더니, 거절을 하더라구요. 공식 용어가 아니라는 거예요. 타종교의 벽이 그렇게 높아요. 그래서 아예 책을 내 버렸어요.”

스님은 ‘자비의 수화교실’과 ‘불교수화용어집’ 두 권의 불교 관련 수화책을 잇따라 발간했다. 그러나 용어 정리에서 발간까지 상당한 고통이 뒤따랐다. 책 발간에는 적지않은 재원이 소요되는, 스님 혼자하기에는 버거운 불사였던 탓이다. 허나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천우신조가 뒤따랐다. 우연히 방송을 통해 스님의 어려운 처지를 전해들은 보덕학회 관계자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맹구우목의 인연 덕분에 불교수화책들은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로 이제는 표준수화사전에 20여개의 불교수화용어가 수록됐고 수화 통역사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자료로 극진한 대접까지 받고 있다.

운전면허-꽃꽂이 강의로 자활 도와

<사진설명>해성 스님은 2000년부터 여성 장애인을 위한 꽃꽂이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에 대한 스님의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악몽의 1998년, IMF 외환위기로 나라가 파탄지경에 빠진 절명의 순간에 스님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운전교육을 실시했다. 장애인에게도 운전면허 취득이 허용되자 스님의 어려운 주머니 사정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곧바로 수화로 만든 ‘야! 쉽다 운전면허(청각장애인용)’를발간해 이론 교육을 시키고, 송파구의 협조를 구해 탄천에 장애인들을 위한 기능 연습장을 마련했다. 전국에서 처음 시작된 장애인 전용 운전교실은 이렇게 탄생됐고, 현재까지 450여명의 장애인들이 면허를 취득해 자활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2000년에는 여성 청각장애인들의 꽃꽂이 교실을 새롭게 시작했다. 운전교실의 수강생이 대부분 남성인 점을 감안, 여성 장애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었다. 손으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특성상 손의 감각과 기능만큼은 최고라는 것이 스님의 생각. 이런 믿음 때문이었을까. 1~2년의 교육과정을 수료한 수강생들은 모두 전문가 못지 않은 섬세한 기술의 소유자로 탈바꿈했고 스님은 2003년에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광림사 1층에 ‘꽃 사랑 소리사랑’이라는 꽃가게를 열어 이들의 자활을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다. 수입은 많지 않지만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는 것이 스님의 자랑이다.

“부모가 장애인인 아이들은 진로에 대해 학교 선생님과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혼자서 삭이는 경우가 많지요. 아이들의 이런 답답함을 달래주기 위해 국영수 과외를 시작했어요. 과외 선생님들과 공부뿐 아니라 진로에 대한 조언들을 받으면서 아이들 표정이 몰라보게 달라졌지요.”

장애인 전용 노인요양원 건립 꿈

스님은 장애인 전용 노인요양시설 건립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다. 함께 했던 청각장애인들이 하나 둘씩 늙어가고 있지만 이들을 받아 줄 마땅한 요양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2005년 수화 호스피스 과정을 개설하고, 수화 호스피스 봉사단인 파드마 봉사단을 발족한 것이 이런 미래에 대한 준비의 일환이다.

“늙으면 모두가 장애인이에요.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귀가 잘 안들리잖아요.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나의 노후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스님은 경기도 가평 야산에 마련한 유기농사업장 ‘감로당’에 적잖은 희망을 품고 있다.
도반들이 마련해 준 1000여평에 불과한 밭이지만, 스님은 이곳에서 구슬 땀을 흘리고 있다. 스님이 흘린 굵은 땀방울은 미래 장애인 전용 노인요양시설 건립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02)2202-5831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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