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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사냥꾼의 먹이가 된 원숭이왕

기자명 법보신문

목숨 구해준 은혜 ‘배고프다’며 원수로 갚아
‘적’은 자신의 행복만 집착하는 제도의 대상

대승사상에 입각하여 육바라밀에 대해 설하고 있는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을 살펴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는 나를 괴롭힘으로 인연하여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응당히 이 사람에게 대비의 불쌍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여기서 ‘그’란 나를 괴롭히는 자,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적’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적이 지옥에 떨어질까 염려해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고, 심지어 그 원인이 된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반성해야 한다니. 도대체 ‘적’이란 어떤 존재기에 그를 위해 대비의 마음을 내고, 심지어는 그를 통해 나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라는 것인가.

이에 대해 달라이라마는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을 구분하며 우리가 우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외부의 적에 대해 자비를 지녀할 까닭을 비교적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다.

“외부의 적에게 자비를 지녀야할 까닭은 그가 나와 같은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이 고통을 원하지 않고 행복을 원한다는 점에서 나와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대가 나를 해칠 때 그로 인해 인욕수행이 가능합니다. 인욕수행으로 나에게 큰 도움을 주는 선지식입니다.”

우리는 적을 우리와는 다른 생각과 욕망을 지닌, 심지어는 그 모양새조차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대상체로 여기곤 한다. 마치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며 종종 ‘나쁜 편’을 이상한 괴물의 형상으로 그리곤 했던 것과도 흡사하다. 이로 인해 우리는 적 또한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그런 평범한 생명체라는 점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전생 설화 가운데 하나인 원숭이 왕 이야기(『육도집경』중에서)는 적에 대한 우리의 이러한 관점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한다.

부처님이 전생에 원숭이 왕으로 태어났을 때의 일이다. 원숭이 왕은 어느 날 깊은 구덩이에 빠진 채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는 사냥꾼을 발견한다. 원숭이 왕은 사냥꾼을 구하기 위해 구덩이 속으로 넝쿨을 늘여 타고 내려가 며칠을 굶어 기진맥진해진 사냥꾼을 등에 업고는 넝쿨을 타고 간신히 땅위로 올라왔다. 원숭이 왕 덕분에 목숨을 구하게 된 사냥꾼은 그러나 ‘구덩이에 빠져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을 지경인데 저 원숭이를 잡아 허기를 채우지 않는다면 굶어죽을 것’이라며 돌아서 가는 원숭이 왕의 뒤통수를 돌로 내리쳤다. 배은망덕한 사냥꾼의 손에 붙잡힌 원숭이 왕은 악한마음을 품은 사냥꾼을 도리어 불쌍히 여기며 ‘지금 내 힘으로 제도할 수 없는 사람은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서라도 반드시 제도하리라’고 서원했다.

원숭이 왕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냥꾼을 적으로 여기기에 앞서 자신의 행복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어리석은 존재로 여겼다. 굶어 죽을 것이 두려워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냥꾼을 기필코 제도하겠다는 원숭이 왕의 서원은 인욕 수행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적이란 나와 다름없는 생명체이며 행복을 바라는 존재이고 수행의 스승인 동시에 자비로 제도해야할 중생임을 보여주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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