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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하늘을 보다 화엄의 문을 열다

기자명 법보신문

‘천문학자, 우주에서 붓다를 찾다’ 펴낸
이 시 우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별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때 일생이 끝납니다. 열반의 길이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베푸는 것임을 별들은 보여줍니다.”

“석양이 질 무렵 미국 코네티컷주 미들타운에서 차를 몰고 한 시간 정도 가면 천문관측대가 나타납니다. 그곳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먹고 어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하늘에서 별이 하나둘씩 내려오죠. 그때부터 새벽 5시경 모든 별들이 시야 바깥으로 사라질 때까지 별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곳에서 처음에 발견한 것은 고독이었습니다. 그 고독에 익숙해질 무렵 별이 무기체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숨쉬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겠더군요.”

이시우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가 들려준 미국 유학 시절, 그에게 있어서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창(窓)은 별이었다. 천문학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에게 별은 단순한 관찰대상을 넘어 친구이자 자식같은 존재였으며, 우주와 대화하는 통로였다.

“작은 먼지에서 시작된 그 생명체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듭한 끝에 결국 완전한 소멸에 이르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별의 마음(우주심)을 발견했습니다. 후일 『화엄경』을 읽었을 때 제가 천체망원경 끝에서 발견한 우주가 바로 붓다가 새벽별을 바라보며 느낀 그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별은 무기체 아닌 하나의 생명

전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한림원 정회원이기도 한 이시우 교수가 최근 『천문학자, 우주에서 붓다를 찾다』를 펴냈다.

관측천문학 전공인 그는 직업 특성상 주로 밤에 활동해야 했고, 딱히 친구를 사귈 필요성도, 종교를 가져야 할 필요성도 느낀 적이 없었다. 사실 쉰이 넘을 때까지 불경은커녕 성경조차 한번 읽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불교와의 인연은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부인 김용주 씨가 독실한 불자인지라 10여년전 부인과 함께 성주 도솔암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그때 만난 이가 도솔암의 주지 지해 스님이었다.

그때 무슨 마음의 변화가 일었던 것일까. 서울로 돌아온 그날부터 이 교수는 매일밤 잠자리에 들기 전 108배를 시작했다. 불교를 공부하기에 앞서 속세에서 붙은 먼지를 떼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손에 든 책이 반야심경, 그리고 이어 금강경, 화엄경 등을 차례차례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 이듬해 이 교수는 돌연 서울대 교수직을 사직하고 나왔다. 아직 정년이 5년 8개월 남아있는 시점이었다.

“후배들이 자리를 못잡고 있는데, 저는 벌써 30여년간 학교에 머물고 있었으니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가 학교를 일찍 나온 데는 또 한 가지 커다란 이유가 있었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에 65세는 너무 늦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그리고 후학들을 위해 자신이 지닌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결심한 배경에는 어쩌면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해탈로 가는 별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드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쉰 여덟의 나이에 시작한 불교공부는 하늘과 별과 고독 속에서 발견한 천문학을 다시 인간과 연결시키는 과정이자 수행이었다.

그 과정에서 『천문학자와 붓다의 대화』, 『천문학자가 풀어낸 금강경의 비밀』, 선시집 『똥막대기』 등을 펴냈다. 이번에 발간한 『천문학자, 우주에서 붓다를 찾다』는 화엄의 세계를 천문학적으로 풀이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별의 생성과 소멸과정을 화엄의 언어로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별의 인생은 완전한 열반의 과정

“우주내 만물은 물질의 속성인 우주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개체들은 서로 간에 에너지의 순수교환으로 모두 초기의 고유 자성을 잃으면서 안정된 이완 상태로 나아갑니다. 별들이나 은하들은 조우, 섭동으로 초기의 고유한 자성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천체의 세계에서 일체개고이고 제행무상이며 제법무아입니다. 인간 또한 우주의 질서인 우주심을 따라왔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육신에는 우주 물질의 근본 속성인 우주심이 근본심으로 내재하면서 언제나 이를 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욕망에 억눌려 청정한 근본심이 잘 발현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근본심을 현현하며 깨침에 이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입니다. 근본심은 곧 우주심이므로 깨침은 단순한 자기 부처의 현현을 넘어 우주 즉 화엄세계와의 합일을 뜻합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 중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란 말이 나온다. 작은 먼지 속에 우주가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 먼지가 우주 탄생의 최초의 모티브였다는 사실은 현대 과학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작은 먼지 속에도 내포돼 있는 +극과 -극이 매개체가 되어 수소가스와 헬륨가스를 응집시키고 이것이 결합의 연속을 반복해 거대한 원시 성운을 이룬다. 이런 거대한 성운이 중력적으로 수축하면서 국부적으로 밀도가 큰 영역에서 급격한 중력붕괴가 일어나면서 빛을 내는 별들이 탄생한다.

별의 탄생은 급격한 혼돈의 결과이며 엄청난 고통의 에너지가 축적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고통의 결과물로 탄생한 별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는 질량에 따라 일생이 결정되고 별다른 고통 없이 안정된 상태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살아간다.

이 교수가 들려주는 별의 마지막 모습은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의 양식을 모두 갖고 나옵니다. 그것을 많이 발산하면 수명이 짧아지고, 적게 발산하면 오래 머물게 됩니다. 가끔 별이 아프면 불안정해지는데 이때 물질을 밖으로 방출해 안정을 되찾습니다. 별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때 일생이 끝납니다. 열반의 길이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베푸는 것임을 별들은 보여줍니다. 그래서 별들은 임종을 맞이할 때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열반에 이릅니다. 그러면 방출된 물질에서 다음 생명이 탄생합니다.”

그의 별 이야기를 사성제(四聖諦)에 대입하면 완벽한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된다. 하지만 별의 소멸과정이 완전한 열반에 이르는 과정인 반면 인간의 경우는 다르다. “인간은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인위적인 조절이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그것이 바른 말과 바른 행위를 하며 바른 생활을 하고, 바른 견해로 바른 사유를 하며 바른 마음챙김으로 바른 집중을 하며 바른 정진을 하는 팔정도인 것이다.

그는 “땅만 보고 사는 사람보다 하늘도 가끔 쳐다보는 사람이 훨씬 수행하기에 좋을 것”이라며 자신이 책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우주 살피면 수행도 절로 익어

“삼매의 수행에서 마음의 침몰이나 술렁거림이 일어날 때 이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달이나 별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천체를 그냥 바라보면서 신비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전해주는 부사의(不思義)한 설법을 깊이 생각하면서 지관(止觀) 수행을 닦아간다면 한층 더 빨리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50여년간 천체망원경으로 별의 삶을 바라보던 천문학자는 이제 자신이 천문학을 통해 발견한 화엄세계를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하나의 별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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