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요

기자명 법보신문

과거의 경험-미래의 염려일 뿐
해몽하려 말고 그냥 깨어버려야

지난주 나흘간 계속해서 악몽을 꾸었습니다. 첫날은 뒷집 사람과 딸애가 죽는 꿈을 꾸고, 둘째 날은 전쟁이 나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또 여러 사람이 날 모함하는 꿈을 꿨는데, 현실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어요. 꿈속에서 자유롭고 괴로움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물론, 있지요. 그것은 꿈을 깨면 됩니다. 수행자는 꿈을 깨고 나서는 ‘꿈이네’, ‘꿈이잖아’ 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밖의 사물들을 인식합니다. 눈은 빛깔과 모양을, 귀는 소리를, 코는 냄새를, 혀는 맛을, 몸은 감촉을, 그리고 머리는 법을 인지한다 해서 이 인식 대상을 육경(六境·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 하고, 인식 기관을 육근(六根·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라 합니다.

이렇게 인식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마치 TV에서 생방송 되는 것과 같고, 또 인식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뇌에 저장됩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녹화해서 보관하고 있던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돌리면 그 전에 일어난 상황이 재생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은 다 이렇게 인식, 저장, 재생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꿈’이란 과거에 있었던 경험이나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상상하는 것, 즉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하고 걱정하는 것이 뒤죽박죽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눈으로 본 것뿐만 아니라, 어떤 생각을 일으켜 걱정한 것도 다 저장, 기록됩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제가 이렇게 법문 중에 남편에 관한 얘기를 하면, 여러분은 ‘남편’이라는 단어를 통해 연애 시절을 생각하게 되고, 연애 시절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남편과 함께 커피를 마셨던 커피숍으로 생각이 흘러가고, 커피숍에서 옛날 애인 생각으로 옮아갑니다. 법문은 듣고 있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한다는 말입니다.

명상한다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으면 처음에는 정신이 집중되고 조용하지만 조금 있으면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 않습니까? 그게 거의 꿈과 같은 상태입니다. 비유해서 말씀드리면 비디오테이프로 재방송하는 것이 꿈입니다. 눈을 감으면 끊임없이 망상이 일어나는데 눈을 뜨면 이 현실의 인식 작용이 워낙 선명하니까 그 망상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거지요. 그런데 눈을 감으면 망상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이고 잠이 들면 꿈이 현실처럼 느껴지지요. 그러니까 꿈은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의 되살림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염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꾸 악몽을 꾼다는 건 걱정이 많다는 겁니다. 그 걱정들이 상념으로 뭉쳐서 꿈에 나타나게 되거든요. 또 음식 먹은 것이 체하거나 정신적으로 아주 긴장했을 때 주로 악몽을 꾸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긴장하면 위가 제대로 활동을 못 하여 체하게 되는 거죠. 가위 눌리는 꿈이나 철봉대에 배를 대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자꾸 미는 꿈이라든지, 작은 구멍 속에 자꾸 기어 들어가는 꿈이라든지, 실타래가 막 뒤엉키는 악몽을 꾸게 되는데, 한 번만 꾸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꾸어 왔던 꿈이 계속 반복되는 것도 있어요.

그런 악몽을 꿀 때는 일어나서 일단 심호흡을 하고 체한 위를 만져서 내려 보내면 좋아요. 몸은 아무 이상 없는데 악몽을 꿀 때는 ‘내가 걱정이 참 많구나’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이 맞는지 안 맞는지 생각하고, 근심 걱정을 하기 때문에 그 꿈에 자꾸 끌려 다니게 됩니다.

악몽으로 괴로워하다가 꿈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두려워하거나 도망가거나 답답해하기보다는 빨리 눈을 뜨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눈을 뜨려고 해도 잘 안 떠지지요. 그러나 눈을 딱 떠 보면 사실은 다 꿈입니다. 그러니까 꿈속에서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게 수행입니다. 수행자는 꿈을 해몽하지 않고 다만 ‘어, 꿈이잖아!’ 할 뿐입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