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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과 체념은 금물입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천상의 바이올린』
진창현 지음 / 에이지21

가난한 조선의 청년 진창현.

그에게는 선생님이 되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국적을 지닌 사람이 아무리 우수한 성적으로 교사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일본 그 어디에서도 교단에 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갑자기 삶의 좌표를 잃어버린 그를 달래준 것은 아주 오래 전 일본인 선생님이 들려주었던 바이올린의 선율이었습니다. 그는 바이올린연주자가 되려고 개인교습을 받지만 코흘리개 시절 고향의 강가에서 들었던 그 추억만으로는 연주자가 될 수 없음을 절감하고 그는 연주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 대신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제작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당시 일본은 이미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조선 청년을 문하에 받아들여서 기술을 가르쳐주는 대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청년은 온갖 고생을 해가면서 홀로 바이올린을 만들어갑니다. 노숙을 해가면서, 스즈키 바이올린 제작소에 들어가 유리창 너머에서 훔쳐보기도 하고, 바이올린 제작소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기술을 하나씩 터득해갑니다.

이미 17,8세기 이후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바이올린제작의 명인들이 기술의 정수를 자식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고 타계했기에 세상은 바이올린을 만드는 일을 잃어버린 기술(Lost Art)이라 불렀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니스를 칠하고 현을 올리고 조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똑같은 나무통과 네 줄의 현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가장 완벽한 선율을 토해내게 하는 기술은 각자가 더듬더듬 온 몸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고차원의 예술 세계에서는 인간이 인간에게서 배우는 지식이나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고도의 기술이나 예술은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감성을 연마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의해 창출된다.”

그리하여 진창현은 반미치광이가 되어 오로지 독학으로 가장 완벽한 천상의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 제작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마침내 19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국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제작자 콩쿠르’에서 6개 부문 중 5개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겁니다. 게다가 전 세계에 다섯 명밖에 없는 ‘무감사 마스터 메이커 제작자’ 중 한 사람이 되고, 동양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제작하는 명인이 됩니다.

돌아갈 곳도 없었고, 달리 선택할 길도 없어 항상 막다른 골목에서 굶고 지내며 가장 천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던 사람. 하지만 그의 일대기를 읽어보자면 ‘이 길 아니면 죽는다’라는 극단적인 치달림도 느껴지지 않았고, ‘이것으로 성공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세상을 향한 오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에게는 아주 어렸을 때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던 고운 선율이 흐르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런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그에게 자연이 친구가 되어 ‘잃어버린 기술’을 일러주었습니다.

“예술에 만족과 체념은 금물이다. 이것이 기술자로서의 나의 신조이다.”

너무나 가진 것이 많은 나. 그래서 쉽게 실망하고 쉽게 고무되는 나는 그의 말을 이렇게 바꾸어서 기억하려 합니다.

“인생에 만족과 체념은 금물이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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