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 봄 맞은 다인의 마음

기자명 법보신문

정진하듯 준비하는 채다(採茶)

마음 준비하며 개화기-기온변화 주시
찻잎 따기는 자기 점검법…구도와 닮아

은은한 꽃 향이 언뜻 코끝을 스친다. 무심코 하늘을 보니 환한 등불을 켜 놓은 듯, 화사한 살구꽃이 눈에 가득 하다. 황사가 천지를 덮고 우박까지 내린 어수선한 틈에도 어느 새 화사하게 봄의 문장(文章)을 이루었다.

문득 차 잎은 어찌 되었을까. 감나무 가지를 살펴본다. 작디작은 맹아(萌芽)가 겨우 겨울 꿈에서 깨어난 듯, 푸시시 고개를 들었다. 몇 해 전인가. 우연히 감잎이 피는 시기가 차 잎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차 밭이 먼 곳에 있는 탓으로 일일이 차 잎의 상태를 볼 수 없는 필자에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하여간 궁여지책(窮餘之策)이긴 하지만 감잎을 보면서 나름대로 차 잎이 피는 시기와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기실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겨우 동지(冬至)만 지나도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아직 봄이 오기는 먼대도 서서히 차를 만들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우선 제다인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다. 꽃이 피는 시기와 기온의 변화를 주시한다. 한편 지난 해 미흡했던 점들을 꼼꼼히 점검하여 무엇을 세심히 해야 할지를 계획한다.

사실 이런 점검은 향상(向上)을 꿈꾸는 이의 자기 점검법이기도 하다. 차를 만드는 것이 어찌 차를 만드는 날만의 일이겠는가. 차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며 정성과 오랜 관찰을 통해 얻어낸 결과를 드러내는 일이다. 따라서 차는 단순한 물품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남다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한 잔의 차에는 자연이 담겨 있으며, 제다인(製茶人)의 연륜과 고뇌, 그리고 정성, 꿈과 이상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차를 만드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도자기를 빗는 것처럼 만든 사람의  일상과 이상이 투명된다. 결국 제다(製茶)는 오랜 연찬(硏鑽)을 통해 맑고 걸림 없는 세계를 하나하나 점진(漸進)하는 구도(求道)인 것이다.

차나무에 핀 잎은 하나의 생명으로서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차를 만드는 사람은 고귀한 생명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따라서 채다 시기를 정하는 일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원료는 맑고 담박한 영혼을 담기에 족하다.

초의 스님(1786~1866)의 『다신전(茶神傳)』에 “차를 따는 시기는 그 때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이르게 따면 맛이 온전하지 않고, 늦어지면 차의 신령한 기운이 흩어진다. (採茶之候 貴及其時 太早則味不全 遲則神散)”고 하였고 『동다송(東茶頌)』에서도 “그러나 경험해 보니 우리나라 차는 곡우를 전후하여 차를 따는 것은 너무 빠르다. 그러므로 입하 이후가 알맞은 때이다. (然而驗之 東茶 穀雨前後太早 當以立夏後爲及時也)”라고 하였다. 이미 잘 알려진 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초의스님이 말하고 있는 채다 시기에 대한 핵심을 이해하고 있는가. “채다 시기는 그 때가 가장 귀하다”라고 하는 행간(行間)을 잘 이해해야한다. “그 때”는 어느 때를 말하고 있는가. 얼마 후면 본격적인 차 철이 돌아온다. 맑고 향기로운 차가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