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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놀이삼매 들 때 가장 행복한 법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04.16 10:30
  • 댓글 0

선재학교 교장 유 지 선 법사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충북 충주시 양성면 영죽리에 위치한 선재학교는 ‘보물’이라는 노래가 절로 맴돌게 한다. 초가와 너와로 지붕을 얹은 흙집인 선재학교는 토담까지 있어 영락없이 옛 시골의 풍경을 담은 한 폭의 수채화다. 얼기설기 대나무로 엮어 만든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초가지붕 위로 삐죽이 솟은 굴뚝에선 연신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 아래 툇마루에는 유지선 법사가 방금 따온 표고버섯을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다.

‘유·지·선’이란 이름 석 자는 어린이법회나 청소년법회에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본 불자들에겐 아주 친근한 이름이다. 청소년포교 연구모임인 ‘선재연구모임’을 비롯해 불교 캐릭터 전문 팬시용품 ‘선재마을’, 청소년포교 지도지침서 「월간 선재」, 어린이 문화프로그램 ‘전래놀이캠프’ 등이 모두 그에 손에 의해 만들어진 포교 콘텐츠들이다.

유지선 법사에게 ‘동심 포교’는 평생을 두고 풀어야 할 화두와도 같은 존재다. 그가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청소년 시절 ‘불교’를 통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

중학생 때부터 어린이 지도

1979년 중학생 유지선은 고향인 충주를 떠나 서울 동대부중으로 전학을 오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춘기 시절 타지에서 전학 온 학생이 새 학교에 적응하기란 그리 녹녹치 않은 일. 학교 수업이야 노력 여하에 따라 극복할 수 있다지만 급우들과의 거리감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을 추스를 곳은 부처님이 계신 학교 법당뿐, 의식하지 않아도 늘 불자라는 ‘말뚝 불심’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그는 집 근처 한 포교당에 불쑥 찾아갔다. 그리고 “법회를 보고 싶은데 학생들을 위해 법석을 여는 곳이 없다”며 무작정 학생법회와 어린이법회를 만들자고 스님들에게 떼를 썼다. 스님들은 어린 학생이었던 유 법사의 갑작스럽고 당돌한 제안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스님들은 그 자리에서 학생회와 어린이회 창립을 결정했다. 단 조건은 그가 어린이법회 지도교사를 맡아야 한다는 것.

“제가 졸라서 결정된 일인데 거절할 수가 있나요. 당시는 어린이·청소년 포교를 위한 기반이 거의 불모지였어요. 어렵사리 어린이법회 교재 한 권을 구해 매주 스님들과 상의하며 법회를 준비했습니다. 결국 그것이 인연이 돼 어린이·청소년 포교와 법회에 필요한 교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는 청소년법회 지도교사도 함께 맡았다. 어린이와 청소년 포교는 군 생활 중에도 계속 이어졌다. 군대를 제대할 즈음에는 ‘어린이와 청소년 포교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 이름만 대면 얼른 알만한 대기업 기획홍보실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지만 1992년 법사 품수를 받은 후,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매진하기 위해 그마저도 과감히 포기했다.

그가 ‘법사’로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어린이·청소년 포교를 위한 교재와 팬시용품 개발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포교 현장에서 그의 최대 고민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불교용품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 조계사 주변에서 판매되는 어린이·청소년 제품이라고는 기존 상품에 ‘卍’자 스티커를 붙여 놓은 수준이었다.

서울 보문동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한 유 법사는 가장 먼저 어린이·청소년 불자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 개발에 착수했다. 질 높은 캐릭터가 있어야 어린이·청소년 불자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의 격도 높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몇 푼 안 되는 퇴직금과 적금, 후원금을 모두 쏟아 부었다. 동자승과 부처님, 연꽃 등을 응용해 가방, 스케치북, 연필, 지우개 등을 만들고 어린이·청소년법회 교재 등을 제작해 ‘선재마을’ 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교계의 반응은 과히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팬시용품과 교재들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입소문만으로 주문이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유 법사의 기쁨은 그리 오래지 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어린이·청소년법회 관계자들의 뜨거운 호응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과 스님의 모습을 희화화시켰다’며 일부 스님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게다가 선재마을의 상품이 인기를 끌자 이곳저곳에서 모조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설상가상 그를 장사치 정도로 비하하며 비난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결국 이러한 악재들은 매출 감소로 직결됐고 수익금의 대부분을 어린이·청소년 포교 비용과 새로운 모델 개발에 사용해왔던 그로써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 소재 놀이에 동심 ‘열광’

“비록 작은 오해가 있다고 해서 중학생 시절부터 발심해 걸어온 이 길을 접을 수는 없잖아요. 교계의 시선을 바로잡는 길은 그저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제 길을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계의 냉랭한 시선에도 불구하는 그는 ‘선재연구모임’을 조직, 지도교사연수회를 개최하고 포교지침서 「월간 선재」를 발간하는 등 어린이·청소년 포교를 위해 쉼 없이 달려갔다.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진심을 알아보는 이들은 점점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의혹과 비난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3년이 지나자 그는 밀려오는 법회 지도요청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1997년 여름 한 달에만 5000여명의 청소년들이 유 법사를 통해 부처님 품에 안겼다.

<사진설명>유지선 법사는 “참고 인내하면 참다운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법회나 수련회 횟수가 늘어나자 또 다른 고민이 생기더군요. 예전과 비교해 어린이법회나 청소년법회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지만 여전히 귀찮고 돈 안 되는 모임이라는 편견을 면하지 못했어요. 많은 인원이 동참하는 수련회의 경우 이러저러한 이유로 장소 제공을 거부하기가 부지기수였으니까요.”

유 법사는 결국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다. 2002년 그는 서울 생활을 모두 정리해 충주의 한 폐교와 폐가를 임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선재학교’라는 이름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간의 문을 열었다.

선재학교의 유일한 교칙은 유희삼매(遊戱三昧), 어떠한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내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선재학교에서 차를 마시고 명상을 하며, 빈그릇 실천을 통해 발우공양을 배우고 연꽃을 감상하며 자연을 느낀다. 격식과 형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가장 불교적인 소재를 이용한 놀이들로 이웃 종교인들도 거리감 없이 쉽게 동참한다. 이러한 독특한 운영방식은 지난해 어머니들이 선정한 ‘제1회 대한민국 캠프 대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강요와 채찍은 오해와 반감만 낳을 뿐입니다. 마음을 열면 장애와 걸림은 절로 사라지지요. 참고 인내하면 참다운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충주=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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