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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루비를 삼킨 거위

기자명 법보신문

탁발하던 스님 도둑으로 몰려…“누명도 업의 결과”
진짜 적은 ‘분노에 휩싸인 자’ 아닌 ‘분노’ 그 자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사바세계라 한다.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Saha’에서 유래해 음역한 것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번뇌를 겪어내야 하고 고통을 참으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참아야할 고통이 수없이 많기에 사바세계라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과 만나는 것은 우리가 사바세계에서 겪는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우리는 ‘적’이라고 규정하는데, 만약 우리가 적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안다면 그것을 참고 견뎌내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법구경』 126게송은 인과에 대한 가르침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이가 진짜 적인가에 관한 이해를 구할 수 있다.

탁발을 나갔던 스님이 루비 도둑으로 몰리게 됐다. 그 집에서 기르던 거위가 루비를 먹이인줄 알고 삼켜버린 것인데 그 사실을 모르는 주인은 스님을 붙잡아 몽둥이질을 하며 “루비를 내 놓으라”고 핍박했다. 하지만 스님은 ‘거위가 루비를 삼켰다고 말하면 주인은 분명 거위의 배를 갈라 루비를 꺼낼 것이고 그로인해 저 주인은 살생의 죄를 범하게 될 것’이라며 입을 다물고 묵묵히 매를 맞았다. 결국 화가 잔뜩 난 주인은 옆에 있던 거위를 걷어찼고 거위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 거위가 죽은 것을 본 스님은 하는 수 없이 거위가 루비를 삼켰음을 말했다. 그때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깨닫고 용서를 비는 주인에게 스님이 말했다.

“이것은 그대나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번 일은 당신과 내가 과거 생에 지어 놓았던 행위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는 생사윤회 속에서 이런 빚 갚음을 수도 없이 주고받는다오. 나는 조금도 당신을 원망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런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를 고민하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 상대를 원망하곤 한다. 그 원망의 근저엔 나에게 닥친 고통과 난제가 본질적으로 나와는 아무 상관없이 외부로부터 던져진 견디기 힘든 상황일 뿐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어려움과 맞서 치열하게 싸워 이기거나 묵묵히 견뎌내야 하고 결국 어느 쪽이 되었든 나에게 고통을 주는 상대는 영원히 ‘나의 적’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강설을 살펴보면 “분노라고 하는 번뇌 때문에 적이 나를 향해 분노를 일으킬 때 나는 그것으로 인해 해를 입게 된다”며 “그렇기에 적이 누구인지를 잘 살펴보면 진짜 적은 그의 마음에서 일어난 분노임을 알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나에게 해를 입히는 상대방, 우리가 쉽게 적이라고 규정하는 그 사람도 사실은 분노에 휩싸여 있는 사람일 뿐이다. 또 적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이 그 같이 분노에 휩싸이게 된 것은 그가 쌓은 업의 결과이며 그 업의 한 자락에 나 자신도 엮여 있기 때문에 어느 날 우리는 ‘적’과 마주치게 되는 것임을 『법구경』은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내 앞에 서서 나에게 분노의 위해를 가하는 저 사람이 진짜 나의 적인가, 아니면 그를 휩싸고 있는 저 분노가 나의 적인가. 그것을 잘 생각해 깨닫는 것이 인욕행자의 수행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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