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선법회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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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보신문
  • 승인 2007.04.1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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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 기르는 수련은 결국 자아 집착 강화
몸·마음은 관찰하여 깨달아야 할 대상

저는 선도 수련을 하다가 불교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쪽에서도 수련을 통해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과연 그러한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선도 수련을 직접적으로 해보지 않아 그 경지가 어떠한지는 단정적으로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단체에서 체험 되는 수련의 경지는 부처님이 가르치시는 깨달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모든 단체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선도 수행 단체에서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아야 한다고 하면서 단학 수련이나 기공수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련을 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집중력도 높아져 능률이 향상되고 삶에 활력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또한 수련이 완성되면 소우주로서의 인간이 대우주가 되어 자유를 얻을 뿐만 아니라 부처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영원 불사한다고 말하는 단체도 있습니다.

선도에서는 우주와 만물에 존재하는 기를 인정하고 이 기를 기르거나 운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선도에서는 자신의 몸 안에 흐르는 기를 연마하여 정을 만들고 그 정으로써 신을 만들며 그 신이 허로 돌아가면 불사를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소주천을 지나 대주천에 이르고 대주천을 지나 소약에 이르고 소약을 지나 대약에 이르고 대약에서 입태를 하여 출신을 하는 것으로 선도 수행은 완성 됩니다.

그러나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들 단체의 견해와 경지를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선도 수련이 모두 잘못되었다거나 쓸모없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수련을 하면 여러 가지 육체적 정신적 이익이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익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는 이들의 수련에 불만족을 표합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불교는 몸과 마음과 세계를 바라보는 입장이 선도와는 다릅니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몸과 마음 그리고 세계는 중생들의 근원적 무지가 지어낸 허망한 경계에 불과하다고 말 합니다.

여기에는 선도 수련에 있어 가장근본이 되는 기의 존재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띠는 것은 당연 합니다. 이 기가 비록 우주와 생명을 이루는 근원이 된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안목에서 보면 인연으로 일어난 망령 된 기운에 불과 합니다.

따라서 중생들이 이러한 기운을 기르는 것은 몸과 자아에 대한 집착을 강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다. 몸과 마음이 인연으로 나타난 거짓 모습 인 줄 모르고 이를 길러 어리석음만 더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몸과 마음은 자세히 관찰하여 깨달아야 할 대상이지 어떤 기술을 익혀 강화시키고 길러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가령 선도 수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호흡의 경우에도 불교에서는 호흡을 단지 바라보게만 할 뿐 호흡을 들이 쉬고 내쉬는 방법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더구나 몸 안의 기를 돌리거나 단전을 기르는 따위의 수행은 말 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깨달음은 단지 한 군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바로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지와 번뇌를 어떻게 없애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호흡을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 수련이니 단전호흡이니 하는 것들을 자세히 보면 모두 몸뚱아리에 집착하는 공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련이 어찌 자아의 속박을 벗어 날 수 있겠습니까? 설혹 그 수련으로 출신을 하여 신선이 된다 해도 무상을 면 할 수 없고 윤회를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유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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