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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명차(名茶)의 조건

기자명 법보신문

순리 터득하고 화력의 완급 관건

뭉개 뭉개, 구름이 산허리를 두른 듯, 산 벚꽃이 한창이다. 차 밭이 있는 남녘에야 복숭아 꽃 점점(點點)이 붉고, 자운영(紫雲英)도 논바닥에 즐비하게 피었겠다.

이름이 아름다워 듣기도 좋은 꽃. 이 꽃이 필 때면 차를 만들 시기이다. 이미 보성이나 화계골에는 햇 차를 만든단다. 하지만 깊은 산 속, 은밀한 곳에서 자라는 차나무이야 겨우 매부리만한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다.

한 열흘 쯤 후면 향기로운 첫 차를 만들 수 있을까. 이렇게 노지(露地)의 차밭에서 햇차 소식이 들리면 천천히 차를 만들 준비로 분주해진다. 차를 따는 시기에 비가 오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하늘의 일을 어찌 알랴. 그 해의 좋은 차는 하늘이 점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사람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겸손하게 시절의 인연을 갈무리할 뿐이다.
따라서 채다 시기를 정하고, 차 잎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정갈히 차를 따야한다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체득된 사람들의 지혜이다.

초의스님이 정서(整書)한 《다신전(茶神傳)》에는 ‘새로 딴 차 잎에서 묵은 잎이나 억센 줄기, 부스러기를 골라 내야한다.(新採去老葉及技梗碎屑)’라고 하였다. 이것은 제다(製茶)가 정결한 잎의 관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첫째로 강조한 것이요, 기실 명차(名茶)는 좋은 차 잎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차 잎의 상태는 일창일기(一槍一旗), 혹은 일창이기(一槍二旗)가 최적의 상태이다. 만약 이 시기를 잃게 되면 차의 오묘한 기미를 갖출 수 없다. 채다 시기에서 하루 이틀의 차이는 기미와 향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그 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명(明) 허차서(許次)의 《다소(茶疏)》에 ‘생잎을 처음 따면 향기가 들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화력(火力)을 빌어 그 향기를 발하고 그 본성을 들어낸다.(生茶初摘香氣未透必借火力以發其香然性)’고 하였다.

결국 차를 만드는 일은 차의 향기를 잘 들어내기 위함이며, 차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하는 고민인 것이다. 차의 본성은 은미하게 숨어 있는 차의 성품이니 기미(氣味)를 말하는 것이다.

항간에는 차를 만드는 법으로 구증구포(九蒸九暴)를 말한다. 구증(九蒸)이라든가 구포(九暴)에서 구(九)라는 의미 때문에 아홉 번을 찌고 말려야한다고 이해하고 있나보다. 하지만 차가 접물성(接物性)이 강한 잎이라는 사실을 간과(看過)한 것은 아닐까. 아마 구(九)라는 의미는 차의 본성을 지극한 곳 까지 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 구(九)는 양수(陽數)의 극(極)이므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기점을 장악하라는 의미라면 제법 구(九)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를 차원 높게 이해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명차를 만드는 비법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일이며, 화력(火力)의 완급(緩急)을 어떻게 장악(掌握)하는가이다.

따라서 차를 만드는 일은 순리를 터득하는 수행이다.

명차(名茶)는 과욕(過慾)한 사람의 유희(遊戱)를 위한 것이 아니다. 소박한 사람들의 정신적인 벗이요, 정결(貞潔)한 이상(彛常)이기도 하다. 만금(萬金)과도 바꾸지 않는 차를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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