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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자수장 유 희 순

기자명 법보신문

삼천배 올리듯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고려불화 수 놓고 싶어

김태숙-한상수 문하서
동양-한국전통기법 사사
천연염색-창조성 돋보여
최고 자수 반열 올라

자신 머리카락 사용 ‘비천상’
맥끊긴 고려기법 복원한 명작
중국상품에 밀려 힘겹지만
각고 정진으로 하나씩 극복

<사진설명>유희순 자수장은 30여년 동안 틀 앞에 앉아 세상만물을 수 놓았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실/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 내올 듯
머언/ 극락정도 가는 길도/ 보일 성싶다.
 (허영자 시인의 ‘자수’)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가는 여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섬섬옥수 따라 비단 위에 스쳐 간 실은 점차 학이 되어 창공을 날고 연꽃으로 피어나며 강과 산이 되어 만물을 포용한다. 여인의 심성이 청정하지 않은 들 화폭 위에 이처럼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날까? 허영자 시인이 말한 것처럼 “머언 극락정토 가는 길도 보일 성싶다.”

지난 2002년 ‘명장’으로 선정된 유희순 자수장은 30여 년 동안 올곧이 자수길 만을 걸어 온 자수공예의 대가다. 1983년 전승공예대전에서의 입상을 시작으로 전승공예대전 14회 수상과 1997년 신미술대전 공예부문 대상, 2000년 한국 밀레니엄 상품으로 선정돼 산업자원부장관상 및 우수공예 문화 100에도 선정된 바 있는 인물이다.

덕수궁 유물전시관에 ‘길상도 팔곡병풍’, 전통공예미술관에 ‘문·무관 흉배 한쌍’이 전시되어 있으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한 당시 자수를 선물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특히 그의 작품 ‘다라니 주머니’는 불교 신행단체인 여여회가 달라이 라마 친견할 당시 선물로 증정하기도 했다.

<사진설명>2005년 APEC 정상회의장에 놓였던 ‘일월오봉도 병풍’.

그러나 그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적으로 받은 것은 ‘일월오봉도’병풍일 것이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정상회의장 벡스코 컨벤션홀 의장석 뒷편 벽면에 놓인 작품이 바로 그와 그의 제자 18명과 함께 제작한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다. 해와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 폭포 또는 바다의 파도를 뜻하는 형상이 좌우대칭으로 배열돼 있던 이 작품은 국내 최대 규모인 가로 624㎝, 세로 348㎝ 크기로, 모두 12㎏의 명주실이 들었다고 한다.

0.5밀리미터의 수 한 땀 한 땀은 서로의 인연을 만들며 직선과 곡선으로 이어져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하지만 실과 천, 바늘만 있으면 어떤 것이든 표현할 수 있는 게 자수의 매력. 보편적인 미감과 개인적인 미감을 마음껏 연출할 수 있기에 자수의 미학은 다른 회화나 조각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유희순 씨가 자수 세계에 접어든 것은 1976년.

<사진설명>길상문 사층농.

평소 회화와 고미술에 관심이 날랐던 그는 인사동을 걸으며 본 자수에 눈길이 쏠렸다. 바느질 솜씨가 대단했던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아서일까! 그는 그 자수에 금방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원력이 있으면 인연이 닿는다고 했다. 그는 그 해 지인의 소개로 한국자수협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바 있는 고(故) 김태숙 선생 문하로 들어가게 된다. 김태숙 선생으로부터 3년여 동안 동양자수를 사사 받은 그는 1981년 한상수 선생의 자수를 보고는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 자수는 중국과 일본과는 분명히 다른 색다른 미감을 간직하고 있었어요, 중국과 달리 푼사(한 가닥으로 펴진 실)가 아닌 꼰사(꼬인 실)를 씀에도 둔탁하지 않고 미려하며 해학과 품위가 배어 있었어요.”

우리의 전통 자수는 감상용 자수도 있지만 실용적인 자수에 무게가 실려 있다. 따라서 일상에서 직접 쓰는 자수이기에 손이 많이 닿아도 쉽게 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실도 ‘꼰사’를 썼던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80호 한상수 자수장으로부터 우리의 전통 자수를 사사받으며 그는 그야말로 동양자수와 우리의 전통 자수를 고스란히 터득할 수 있었다.

1985년 독립(?)한 그는 자신만의 자수세계를 열어갔다. 궁중 자수 복원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그는 실과 바탕이 되는 명주천의 배경색을 내기 위해 천연염색에도 몰입,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키워갔다. 자수의 원류를 알고 싶다는 신념에 방송통신대 중문과를 거쳐 동국대 불교대학원에서 예술사를 전공하며 남다른 학구열도 보인 그는 1993년에 일본 도쿄, 오사까, 요코하마 4개 도시를 18일간 순회하며 ‘한국의 전통공예전’ 초대전도 가졌다.

그의 수많은 전시회를 통해 선보인 작품 중에서도 ‘108골무’와 ‘주악비천상’에 눈길이 쏠린다.

<사진설명>복원작인‘자수 현우경’표지(좌) 108골무-꿈과 사랑·애환(우).

108 번뇌를 상징하는 ‘108 골무’는 골무마다 각기 다른 문양의 수를 넣은 작품으로 그의 현대적인 감각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무엇보다 그가 붙인 부제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붙인 제목은 ‘꿈과 사랑·애환’. 조선 시대 여인들의 애환과 가슴 속에 묻어 둔 자유를 향한 자신들의 꿈과 미래의 사랑을 담고 있는 것이다. 자수의 절정기를 맞이했던 조선시대의 자수에 묻어 난 감성을 그는 그대로 이어받고 싶은 모양이다.

‘주악비천상’은 강원도 상원사 동종에 새겨진 비천상을 머리카락으로 수놓은 작품이다. 그 머리카락은 다름 아닌 자신의 머리카락이다. 사실, 머리카락으로 수놓는 기법은 빛의 방향에 따라 독특한 질감을 선보일 수 있고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나 고려 시대 이후로 맥이 끊겼다. 고려시대 기법을 복원해 보자는 원력도 있었지만 이면에는 그의 불교를 향한 불심이 자리하고 있다.

“삼천배를 하는 마음으로 바느질을 합니다. 그럼에도 나의 모든 것을 바쳐 부처님께 진심으로 공양하고 싶은 마음이 늘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상원사 동종 비천상을 본 순간 내 신체의 일부로 저 비천상을 새겨 불은에 조금이나마 갚자는 원력을 세웠던 겁니다.”

꽃구름을 탄 선녀가 서로 마주하여 비파와 생황을 불고 있는 이 비천상은 명주에 천연염색을 해 동종의 원색을 만들고 18년여 동안 기른 자신의 머리카락 18올을 꼬아 전통 자수 기법으로 정교하게 수놓은 것이다. 언뜻 보기에 간단한 작업 같지만 머리카락은 명주실에 비해 자주 끊어지고 엉키고 겉돌아 바늘에서 빠져나가기가 일쑤이기에 이는 고난도의 집중과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사진설명>유희순 자수장의 머리카락으로 수 놓은 ‘주악 비천상’.

자수 이외의 취미(?)가 있다면 유적답사와 사진촬영이다.

“공방에만 앉아 있으면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작업하게 되요. 공방만 나서면 1000년 동안 보여준 선조들의 솜씨가 눈앞에 펼져지잖아요. 그 속에 담긴 얼을 보듬고 그들이 보여 준 문양을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템이 떠오르곤 합니다. 특히 사찰 벽화나 탱화, 조각상에 새겨진 문양으로 보는 순간 번뜩 스쳐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그는 좀 더 신선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전국의 산사를 찾고 있다. 중국 자수 물결에 밀려 위기에 처한 우리의 자수를 지켜내기 위해서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 감각의 자수 세계를 구축한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러나 그는 쉼 없이 정진하고 있다. 이미 그는 타고 난 미적 감각으로 인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현대감각을 선보인 작품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눈길이라 해서 함부로 걷지 말라 하지 않습니까? 뒤에 오는 사람이 그 발자국을 따라 오기에. 저 역시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린 밑 그림에 후학이 색을 입힌다면 그보다 더 귀중한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상계동 20여평의 작은 아파트에 마련한 작업실 ‘여선수방’ (汝善繡房. 02-3391-4428)에서 개인전 준비로 한창이다. 향낭, 국운복대, 화조도, 십장생 등의 자수 작품이 공방에 가득하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 스님들이 입을 가사와 고려불화에 나오는 불교세계를 수놓아 보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금사를 비롯한 자신만이 선보일 수 있는 실도 준비해 놓았단다. 하지만 경제 문제로 쉽사리 틀 앞에 앉지 못한다. 수요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작업하겠지만 아직 우리의 전통 자수가 대중적으로 각인되지는 못했기에 전시회 출품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해야지요. 고려 관세음보살도나 감로탱화는 물론이고 새롭게 도상한 자수 불화도 선보일 겁니다.”

고려 불화에 도전하겠다는 유희순 자수장. 그의 손길 따라 이어지는 실의 인연 따라 우리 가슴에도 한 땀 한 땀의 정성과 꿈이 새겨지는 듯하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직물 표면에 ‘실’ 이용해 삼라만상 표현
자수(刺繡)란

<사진설명>달라이라마에게 선물한 ‘다라니 주머니’.

자수는 직물 표면에 실로 문양을 조성하는 섬유공예로써 염색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 직물공예다.

가장 오래된 ‘방추차’(紡錘車. 섬유를 꼬아 실을 만드는 방적기구)를 볼 때 자수공예는 청동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 접어들며 직물 종류와 생산량도 증가해 적색과 청색 등의 다양한 색조가 등장하며 응용 범위가 확대됐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로 접어들며 ‘불교자수’가 발달했는데 실용자수와 감상용 자수까지 있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자수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보물 653호 ‘자수사계분경도’(刺繡四季盆景圖)는 고려시대의 자수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비단에 포도무늬의 분(盆)과 분재(盆栽), 연꽃무늬의 분과 꽃병이 수 놓아져 있다. 또한 다른 2폭에도 매화의 분재와 꽃병에 나비 한 쌍씩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만(卍)자가 수 놓아져 있어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조선시대 접어들며 궁중자수와 민간자수가 경쟁하듯 발전해 자수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조선후기 접어들며 외래요소가 가미되며 실용에서 감상 지상의 자수로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1970년대 초부터 자수는 다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회생했으나 작금에는 중국 상품의 유입 등으로 경제성에 밀려 전통자수는 점차 힘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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