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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는 탐진치 버리는 정진의 길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04.30 10:49
  • 댓글 0

경주남산마라톤 운영위원장
동작세무서 한 명 로 서장

가난으로 시작한 공직생활
남다른 열정으로 승승장구
한순간 실수로 거리 내몰려

절체절명서 떠오른 부처님
마라톤 수행삼아 참회정진
불국토 건설에 도움 되고파

“경주 남산은 절터 112곳, 석불 80기, 석탑 61기, 석등 22기 등 총 672점의 문화재가 산재한 그야말로 불교성지입니다. 남산 산길을 일주하는 것은 곧 성지순례를 뜻하며 자연스럽게 불교를 접하는 기회가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경주남산마라톤대회는 운동경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동작세무서 한명로(58) 서장의 경주남산마라톤대회 예찬론이 끝없이 이어진다. 672점이나 되는 남산 문화재를 일일이 열거하며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흥까지 한껏 묻어난다. 한 거사의 말처럼 경주남산마라톤대회는 분명 불교와 남산에 대한 그의 사랑 표현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나긴 고통의 시절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다.

1970년, 한명로 거사는 국가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중앙행정부서인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가난으로 인해 다니던 대학마저 중퇴한 그로써는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해 학업의 꿈을 이어간다는 일념뿐이었다. 모진 시간이었다. 혹독하리만치 자신을 채찍질하며 말 그대로 주경야독에 매진했다. 그 결과 불과 6년 만에 학사와 석사 과정을 모두 마칠 수 있었고, 그의 열정은 업무에도 그대로 이어져 경제기획원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앞을 향해 달음박질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 막 태어난 한 살배기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시절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했다. 가까운 지인의 거절할 수 없는 부탁으로 도장 한 번 찍었을 뿐인데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법 집행은 이뤄졌고 결국 그는 빈 몸뚱이만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자존심 때문에 가족 모두가 고통 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특히 태어난 지 채 돌도 안된 딸아이를 눕힐 곳이 없어 사과궤짝 안에 넣어 달래야 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섭니다. 어찌할 도리도 없이 빈털터리로 세상에 내팽개쳐지고 나니 남은 것이라고는 온통 분노와 절망뿐이더군요.”

암흑의 시기, 그의 유일한 위안은 아스라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행복한 추억이었다. 희미한 기억 너머 유독 또렷이 생각나는 것은 놀이터 삼아 뛰놀던 경주 남산의 추억과 어머니를 따라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던 기억. 그는 스스로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원까지 개신교계 학교만 10년을 다녔고, 매주 성경을 배우며 스스로를 개신교인에 가깝다고 생각했건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떠오른 것이 부처님이라니.

눈물이 났다. 그대로 법당으로 달려가 부처님을 뵙고, 엎드려 한참을 울고 싶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또한 당시로는 마냥 넋 놓고 누군가의 도움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가족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하는 일이 급했다.

‘인연의 씨앗은 무량겁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불교와의 인연은 오래지 않아 우연치 않게 그를 찾아왔다. 뜬금없이 한 친구가 능인불교대학에서 함께 불교를 배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인연이 스스로 찾아온 것이다.

삶은 고단했지만 법당을 찾아 불법을 배우는 시간만큼은 한없이 여유롭고 편안하기만 했다. 불법이 그의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서 분노와 증오는 점차 사라지고 오직 이타심만이 남게되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참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났고 행동에는 여유로움이 배어났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면서 조금씩 수행에 대한 바람도 생겨났다. 자신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수행의 방편으로 마라톤을 선택했습니다. 마라톤은 혼자서 무작정 뛰는 운동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온갖 잡념에 사로잡히고 힘겨움에 중도포기의 유혹도 생겨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오롯이 나 자신을 관(觀)하며 탐진치 삼독과 분별심으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습니다.”

마라톤을 수행삼아 완주한 대회만도 74회, 100km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울트라마라톤도 2회나 완주했다. 그는 2002년 지역의 한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구미 대둔사 주지 진오 스님을 만난 후 ‘불교마라톤대회 개최’라는 서원을 세운다. 불교와 마라톤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공유한 스님과 재가자는 쉽게 의기투합했고, 2년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2004년 5월 경주에서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장소는 불교성지이자 한 거사의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바로 남산이었다.

“처음 경주 남산에서 마라톤대회를 하겠다고 하니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이 여간한 게 아니었어요. 성지를 벌거벗은 채 다니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러운데 수 천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남산을 찾으면 문화재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죠.”

주위의 반대는 분명 그의 본심과 대회의 의미를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남산 공부는 그렇게 시작됐다. 시민단체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많이 남산에 대해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남산에 산재된 672점 문화재에 대해 하나씩 배우고 익혀나갔다. 그리고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을 만나 그의 남산에 대한 추억과 사랑을 전하고 마라톤대회가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5월 13일 제4회 경주남산마라톤대회가 열립니다. 경주남산마라톤대회는 불교의 대사회 이미지 제고와 포교를 위해 마련한 이벤트입니다.  대회에는 매년 3000여 명의 인원이 동참하는데 불자뿐 아니라 비불자들도 상당수 참여합니다. 대회는 불교성지 남산을 향해 삼배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해 스님들이 직접 완주 기념메달을 걸어주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결국 참가자들은 달리는 내내 거리낌 없이 불교와 불교문화를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명로 거사에게는 최근 또 다른 서원이 생겼다. 그것은 한국불교스포츠문화원과 전국불자경영인연합회를 조직하는 것. 그는 포교를 위해 이들 조직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자도 그렇지만 비불자의 경우 스님 만나는 것을 어렵고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비불자에 대한 포교가 미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비불자 포교를 위해서는 먼저 불교를 스스럼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되는데, 스포츠만한게 없습니다. 교계에는 마라톤 외에도 축구, 스노보드 등 다양한 분야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한데 묶어 조직화할 수 있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대단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명로 거사는 누구나 인정하는 불자다. 2000년부터 능인불교대학 15기 졸업생 모임인 정불회 회장 소임을 맡은 데다가 지난해 9월에는 국세청 불자모임 보리회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친 겸손일까. 그는 공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직 법명을 받지 않았다.

“불교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활동하는 것뿐입니다. 맑고 향기로운 불국정토를 건설하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지난날 좌절과 절망의 시간,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보답이 될 테니까요.”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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