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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욕설에 응대하지 않은 부처님

기자명 법보신문

“당신의 욕설 받지 않았으니 도로 당신 것”
적에 맞서 생기는 마음속 분노가 진짜 적

『손자병법』을 저술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략가 손자는 “백전백승(百戰百勝)이 좋은 것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백 번을 싸워서 백 번을 다 이긴다 하더라도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방법에 비하면 전쟁은 그리 좋은 방법이 되지못하다는 뜻이다.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어떤 장수가 굳이 희생이 동반되는 싸움을 자청하겠는가.

부처님 역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그 방법이 조금 다르다. 『법구경』 쌍서품(雙敍品)에 나오는 경구다.

‘남이 만약에 나를 욕할 때 / 나를 이긴 듯해도 이긴 것 아니라고, / 이런 마음에 즐거이 따른다면 / 원한은 마침내 그치지 않으리라. // 남이 만약에 나를 욕할 때 / 그가 이기고 내가 진 것이라고, / 이런 마음에 즐거이 따른다면 / 원한은 마침내 그쳐지리라.’

앞서 적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살펴본바 있다.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상대는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여 있는 존재이므로 우리의 진짜 적은 상대가 아닌 분노 그 자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분노라는 적에 대항하는 것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들 마음속의 분노이다. 결국 우리 마음의 평화를 깨고 우리를 괴롭히는 진짜 적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노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마가다의 왕사성 밖에 있는 죽림정사에 계실 때다. 인근에 지체 높은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안의 젊은이가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제자가 되었다. 그 바라문은 이것이 집안의 수치라 여기며 부처님을 찾아와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처님은 아무 대꾸도 없이 바라문이 욕을 그치기를 기다려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바라문이여, 당신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음식을 내 놓았을 때 손님이 음식을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건 할 수 없지요. 우리 집에서 먹을 수밖에요.”

부처님께서 조용한 목소리로 바라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방금 당신은 내게 온갖 욕지거리를 퍼부었소. 그러나 나는 그것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러니 그 욕설은 당신 것이오. 만약 내가 당신의 욕설에 맞장구를 치거나 욕설로써 응수했다면, 주인과 객이 같은 음식을 먹은 거나 다름없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으니, 그것은 당신이 먹을 수밖에 없지 않겠소?”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끝에는 ‘남이 성낸 것을 보고 정념(正念)으로 자신을 진정시킨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고 또 남을 이기게 된다.’라는 게송이 덧붙여져 있다.

상대의 분노에 대항해 내 마음이 분노를 일으킨다면 본인이 아무리 원치 않는다 해도 상대의 분노는 고스란히 나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분노를 일으키거나 원망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외부의 분노는 나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할 수 없다. 외부의 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에겐 수행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노와 번뇌, 그것이 진짜 우리의 적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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