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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좋은 햇차에 대한 기대

기자명 법보신문

기품-품색 갖춘 차가 수행에 유용

<사진설명>일교차가 고르고 기온이 일정하면 좋은 햇차를 얻을 확률이 높다. 좋은 햇차는 선정에 유용한 효과가 있다.

화사(華奢)하던 산자락, 연록 빛이 완연하다.

조막만한 잎엔 생명(生命)의 애잔한 고뇌(苦惱)가 묻어 있다. 하지만 자연은 자연대로 위육(位育)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화창한 봄날, 꽃을 찾아 나섰던 당대(唐代)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꽃 찾아 나섰다가 나도 모르게 자욱이 핀 꽃에 취해, 나무에 기대어 잠이 든 사이 해가 이미 기울었다. 객은 흩어지고 술 깨어보니 한밤중, 다시 촛불 밝혀 남은 꽃을 구경하였네. (尋芳不覺醉流霞 依樹深眠日已斜 客散酒醒深夜後 更持紅燭賞殘花)”

꽃에 취해 봄밤을 즐기는 풍류, 즐길 이 몇이던가. 꽃에 취할 틈도 없이 차를 만들 준비로 분주하다. 차를 따는 시기가 하필이면 만화방창(萬化方暢)한 시절이니 한가한 여유는 틈틈이 부리는 호사(好事)이요, 농번기와 맞물려 인부(人夫)를 수급하는 일조차 녹녹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올해의 날씨이다. 일교차(日較差)가 고른 편이고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지 않았던 까닭에 좋은 차 잎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이다. 기대는 탱탱한 긴장감을 주어서 좋다.

좋은 차는 일정한 기품(氣稟)과 품색(品色)이 있다. 색(色), 향(香), 기미(氣味)가 온건한 차는 두어 잔만 마셔도 땀이 나고 몸이 따뜻해진다. 수행 중에 차를 이용한 것은 바로 이런 작용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이 차의 기운이다.

초기 선종에서 방선(放禪)할 때 차를 허용한 이유 또한 응체(凝滯)된 기운을 풀고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함이요, 차의 향기와 기운이 몸에 흐르는 것을 관찰하여 입정(入靜)에 들게 하는 유용성 때문이었다. 차는 참선 자체는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선정(禪定)으로 유도하는 매개물(媒介物)로 탁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응송스님(1893~1990)은 제다의 원리가 바로 이 차의 기운을 들어내는 것임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초의 스님(1786~1866)이 한국 차의 정신을 중(中)과 정(正)에 둔 이유도 기실 이것이다. 응송 스님의 차는 덖음 차이다. 차를 덖어 내는 원리가 바로 중(中)이며 정(正)에 있다. 무엇이 정(正)이고 중(中)인가. 차를 설익히지 않는 원리 즉 불의 장악(掌握)이다. 결국 누가 불을 장악하여 적절히 쓸 수 있는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차가 익는 시점을 아는 것은 간극(間隙)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실제 차가 익어가는 간극(間隙)은 은미(隱微)하나 틈은 넓고도 길다. 결국 깨어 있는 사람을 향해 큰 길을 열고 있는 셈이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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