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민화장 송 규 태
⑨ 민화장 송 규 태
  • 법보신문
  • 승인 2007.05.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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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세운 붓 ‘겨레의 그림’ 소생 시키다

6·25 종전 직후
마음 달래려 동양화 입문
해학·파격 구성·강렬색채
이끌려 민화 공부 시작

서궐도-고구려 고분벽화 복원
독보적 업적으로 평가 받아
대중 ‘민화사랑’에 감사
70여 제자에 만화기법 전수

<사진설명>백발의 송규태 민화장. 겸손과 당찬 기운이 배어있는 장인이다.

창경궁과 창덕궁을 일러 동궐이라 한다. 이 동궐의 전경을 그린 그림이 ‘동궐도’인데 세로 273cm, 가로 36.5cm로써 다섯 번 접게 되어 있는 화첩 16개가 연결되어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데 합치면 세로 273cm, 가로 584cm의 대작이다.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후원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구도를 잡아 각 건축물의 위치와 모양, 부속 시설물, 주변 산세와 나꾸까지도 채색으로 세세하게 묘사돼 있다. 이 동궐도를 그린 사람이 누군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창경궁과 창덕궁과 달리 경희궁은 서궐로 불렸다. 현재로서는 ‘서궐도안’만이 남아 있다. 즉 경희궁의 건물을 비롯한 건조물과 주위 산세, 수묵의 윤곽을 먹선으로 묘사하고 건물의 지붕면이나 또는 벽면에 건물 명칭을 써넣은 범본이다.  ‘동궐도’에 이어 ‘서궐도’도 그리려 한 것으로 보이나 어찌된 영문인지 완성된 ‘서궐도’는 없고, 그림을 완성했다는 기록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궐도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효명세자가 서거함에 따라 ‘서궐도’는 중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남아 있다.

2004년 기존의 ‘동궐도’를 모사복원한 ‘동궐도’가 빛을 보는데 바로 그 ‘동궐도’를 복원한 인물이 송규태 민화장이다. 그는 ‘동궐도’에 그치지 않고 이듬해 ‘동궐도’복원의 필력을 살려 자신의 역작 ‘서궐도’를 세상에 내놓는다. 붓으로 세운 ‘경희궁’이었다. 원래의 그림에 선이 보태지고 색이 입혀져 건물은 준공되었으며 기물 설비는 제 자리를 찾았고 초목 또한 소생했다. 감동과 애잔함이 묻어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진설명>해학적인 호랑이와 까치가 노니는 ‘작호도’.

1934년 경북 군휘에서 출생한 송규태 씨가 민화의 길로 들어선지 벌써 40여년. 그는 1953년 군에 입대해 6.25한국전쟁의 마지막 병사로서 민족의 쓰라린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그는 제대 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규격화되어 있거나 복잡한 구조를 가진 서양화 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하고, 여유가 넘치는 동양화로 다가갔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는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그였기에 먹의 농도와 붓 터치는 빠르게 터득해 갔다. 그러던 중 그는 기존의 사군자를 비롯한 문인화나 산수화와는 다른 세계에 깊이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보고만 있어도 함박 웃음을 터지게 하는 해학이 압권이었지요. 호랑이는 분명 호랑이인데 어찌 보면 이빨 빠진 한심한 호랑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호랑이 그리려다 제대로 못 그려 고양이가 된 듯도 하고.....어쨌든 강아지 한 마리 가슴에 품듯 사람 옆에 앉아 재롱떨 것만 같았지요.”

그는 당시 이러한 풍류의 그림이 ‘민화’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민화’에 대한 이론 정리는 70년대 들어서서야 시작됐으니 그에게 민화는 동양화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이 때부터 그는 전국의 민화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민화를 모사하며 민화 세계를 체득해 간다.

<사진설명>파격적 구성을 통해 이상과 현실을 담은 ‘해학반도도’.

겨레의 숨결과 함께 이 땅에 맥을 이어온 민화는 무속신앙이나 신화, 설화 등의 전설에서 또는 악을 물리치고 복을 구한다는 의미 등의 소박한 소재와 독특한 미감은 분명 새로운 것이었다. 따라서 민화는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일반 민중에 의해 그려졌으며 내용이 다양하고 독특하며 매력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다. 서민들의 사상과 거짓 없는 삶의 진실을 담아 온 민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회화양식의 중요한 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정통회화에 비해 묘사의 세련도나 격조는 뒤떨어지지만, 익살스럽고도 소박한 형태와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구성, 아름다운 색채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양식은 오히려 한국적 미의 특색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1960년대에 접어들며 그의 민화 활동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에밀레박물관, 한국민속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호암미술관 등에 소장된 고서화를 보수하기 시작해 80년대에는 안악3호분과 무용총, 부여 능산리 백제고분, 순흥 읍내리 고분의 벽화를 재현했다.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 풍기읍 순흥리 벽화 재현 등은 그의 업적에서도 빠질 수 없는 독보적 업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진설명>먹선으로만 존재했던 ‘서궐도안’은 송규태 민화장에 의해 ‘서궐도’ 부분도‘서궐도’로 완성됐다.

40여년 공안 민화를 그려서 일까! 누구든지 그를 보면 그 자체가 한 폭의 민화라는 느낌을 가질 법 하다. 겸손하고, 꾸밈새 없으면서도 밝고 기운찬 인품은 푸근하게 다가온다. 산사를 찾을 때면 108배를 올린다는 그의 심성만 보아도 그의 손끝에 묻어 나오는 인자한 붓 터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한 폭의 ‘연화도’지만 하늘거리는 연꽃 한 잎에 충만한 자비를 엿볼 수 있다. 작은 연못에 다소곳이 피어있을 연꽃 위를 내려앉은 새 한 마리나, 그 위를 넘어서는 새 한 마리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유유자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웃음을 짓는다.

꽃나무와 두 쌍의 새가 노니는 ‘화조도’는 강렬한 원색의 색조를 내뿜고 있지만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노니는 두 쌍의 새가 정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설명>하늘거리는 연잎이 돋보이는 ‘연화도’.

‘해학반도도’는 그야말로 민화의 결정체가 아닐 수 없다. 강과 산, 꽃과 나무, 새와 물고기 들이 한 폭에 모두 들어 앉아 있다. 뿐만 아니라 섬에서 나온 봉숭아 나무줄기는 강 전면을 뒤덮고야 만다. 실존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큰 봉숭아 나무일 것이다. 상식의 구성을 완전히 파괴한 이 구도는 민화가 아니고서는 그 어느 회화세계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봉숭아 나무 아래서 이상세계를 꿈꾸었다면 이 ‘해학반도도’의 봉숭아 나무 아래는 꿈속이 아니라 이미 이상세계에 도달해 살고 있는 현실인 듯하다. 그만큼 정겹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임을 뻔히 알면서도 이미 그 세계서 자신의 삶을 진행시키고 있는 듯한 이러한 도상과 색감, 그리고 해학은 삶의 풍요로움과 가치를 더하게 한다.

송규태 민화장이 그리고자 하는 민화세계가 바로 이러한 세계다.

“민화는 잘 들여다 보면 두 세계가 공존합니다. 우리 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과 현 세계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 함께 자리합니다. 서민들의 이상과 현실, 그 두 세계 모두 소중한 것이기에 선조들은 어느 한 켠에 치우치지 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어느 쪽에 기울어져 있지 않았기에 ‘중도의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습니다. 삶의 애환과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을 동경하며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한 지혜가 엿보입니다.”

그는 한 시대가 지났음에도 대중들이 민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저버리지 않은데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정통 회화에 밀려 자칫 사라져 버릴수도 있었던 우리의 전통 그림 민화가 지금도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은 대중들의 힘이라는 것이다. 사실 송규태 민화장은 제자만도 70여명에 이른다. 한국 민화의 어른이요 독보적인 존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화를 향한 대중들의 사랑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한국민화아카데미 소장을 맡으며 홍익대 미술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민화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다.

파인(차巴人) 송규태 민화장. 붓으로 ‘서궐’을 세웠듯 그의 붓에 의해 우리의 민화도 새롭게 소생하고 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해초 사이 노니는 잉어 있으니 ‘어해도’
민화의 종류

<사진설명>정리정돈이 예사롭지 않은 ‘책거리 병풍’.

화조영모도: 꽃과 함께 노니는 한 쌍의 새가 주요 소재. 화조도는 매화, 진달래, 오동나무, 버드나무, 해당화 등과 봉황, 원앙, 공작, 학, 제비, 참새, 까치 등을 물이나 바위와 함께 그린다. 이 밖에도 작약, 월계, 모란, 옥잠화, 수선, 들국화, 난초에 나비나 메뚜기 등을 그린 초충도(草蟲圖)와 사슴, 말, 호랑이 등을 산수 속에 표현한 영모도가 있다.
어해도: 물속에 사는 붕어, 잉어, 송사리, 조개를 소재로 한 그림으로, 꽃과 해초를 곁들여 그린 경우가 많다.

작호도: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와 그 밑에서 이를 바라보며 웃는 듯이 앉아 있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십장생도: 장수(長壽)의 상징인 거북이, 사슴, 구름 등을 한 화면에 배치하여 장식적으로 처리한 그림이다.

산수도: 산천을 소재로 그린 실경산수(實景山水)와 중국식(中國式) 산수로 나눌 수 있다.
풍속도: 농사짓고 베짜는 모습을 그린 경직도(耕織圖)와, 태어나서 출세하고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평생도(平生圖), 사냥하는 장면을 그린 수렵도(狩獵圖), 일상생활의 장면이라든가 사철의 풍속을 그린 세시풍속도(歲時風俗圖) 등이 있다.

고사도: 고사와 민화(民話), 소설 등의 내용을 간추려 표현한 그림으로, 교화용(敎化用)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문자도: 글자의 의미와 관계가 있는 고사 등의 내용을 자획(字畵) 속에 그려넣어 서체(書體)를 구성하는 그림으로, 수(壽) 또는 복(福)자를 도식화한 수복도와 효(孝), (悌), 충(忠), 신(信), 예(禮)등을 도식화한 효제도(孝悌圖)는 교화용으로 제작되었다.

책가도: 책거리라고도 하는데, 책을 중심한 문방사우도(文房四友圖)나 문방구도에서 온 것이다. 책뿐만 아니라 책과 관계없는 술잔, 담뱃대, 항아리는 물론이고 여자치마, 족두리까지 그려 어떻게 조화가 이루어지는가를 표현한 그림이다.

무속도: 산신(山神)이나 용신(龍神)을 비롯한 무교(巫敎)의 여러 신과, 도교(道敎)의 신들, 그리고 불교의 불보살(佛菩薩)들을 무속화한 그림으로 신당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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