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해 쏟아내는 ‘욕’ 상을 버리는 명약이더군요”
“나를 향해 쏟아내는 ‘욕’ 상을 버리는 명약이더군요”
  • 법보신문
  • 승인 2007.05.14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현자연수련원 조정숙 원장

“남이 없는데 내가 있을 수 있겠어요. 부처님의 자비도 이웃이 있기에 아름답고 수승한 가르침 아니겠어요.”

1996년 3월 27일, 경주 정토법당을 찾은 조정숙(51·진여성) 보살은 한참을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법륜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들어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찾아간 그곳에서 1시간이나 눈물을 쏟았다. 알 수가 없었다. 연기법을 한두 번 들어본 것도 아닌데 스님의 법문이 이어질수록 눈물은 점점 굵어졌다.

법륜스님 만나 이상 무너져

눈물과 함께 지난날의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부끄럽지 않은 부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만큼 매사 열심이었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는 이웃의 행복을 부처님께 기원했고, 어려운 곳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갔었다. 그런데 정토법당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지난날의 자부심이 자꾸만 부끄러움으로 변해만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순간 그토록 짓누르던 괴로움의 뿌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선행들, 그것은 본래의 내가 아닌 나라는 이름의 빈껍데기가 행한 가식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상(相)을 내면서 실천한 행위였던 것이다. 아상으로 가득 찬 자신의 모습을 알아 차렸기에 참회의 눈물이 범벅이 된 것.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앞에 그녀는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참회하고 또 참회했다.

경북 영천 보현마을 보현자연수련원 조정숙 원장. 그녀는 올해로 꼬박 8년째 이곳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차별받는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1남 2녀의 자녀를 둔 평범한 보통 엄마가 산골의 폐교를 인수해 대안학교 보현자연수련원을 개원한 것은 ‘상에 집착하지 않는 삶’이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고부터다. 지금이야 환한 미소가 그녀의 일상을 대변하고 있지만 지난 8년의 시간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1999년 3월, 법륜 스님을 만나면서 시작한 3년 참회기도를 회향한 그녀는 부푼 희망을 안고 경북 영천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청소년 포교를 위해 한때 출가를 생각할 정도로 불심이 깊었던 그녀. 그런 그녀의 꿈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영천의 한 시골 중학교가 폐교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찾아간 그곳은 나지막한 산들이 호법신장처럼 폐교를 감싸 안고 있었으며 밤이면 별들이 쏟아지는 그림 같은 곳이었다. ‘자연 속에서 사랑을 심어줄 터전을 만들겠다’는 그녀의 서원을 이루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어 보였다. 곧바로 대구 집을 처분해 학교를 임대했다.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낡은 부분을 수리하는 그녀의 눈과 귀에는 이미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픈 고통도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이내 가라앉았다.

달콤한 열매를 맛보기에 3년의 참회가 부족했던 것이었을까. 생각지도 못한 고통과 시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시련은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서 시작됐다. 생면부지의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와 사는 것만으로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을 판에 주민들의 추억이 어린 장소를 마음대로 뜯고 고치고 했으니 불만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사회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만 골라 교육을 한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지역의 여론은 부정적이다 못해 금방이라도 반대 집회가 열릴 것만 같았다. 어느새 학교를 수리해 팔아먹을 것이란 유언비어까지 나돌면서 조 보살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상대를 배려하고 세상을 맑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었는데 저부터 그렇지 못하고 있었던 거지요.”

경북 영천서 수련원 개원

‘주민의 동의 없이는 더 이상 일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녀는 마을 주민들을 한명씩 찾아다니며 설득에 나섰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문전박대는 물론이거니와 욕설과 비난 등 갖은 수모를 감내해야만 했다. 설상가상 천재지변으로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자 외지인이 잘못 들어와 마을이 해를 입었다며 위협을 가해 오는 이도 있었다. 가난한 농가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혹여 마음이 돌아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절마다 축제를 구상해 인근 도시민들을 마을로 불러들였다. 행사준비에서부터 홍보까지 모두가 그의 손을 거쳤고, 실질적으로 농가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오히려 그녀의 본심을 외면한 채 ‘여자가 너무 휘젓고 다닌다’, ‘행사를 치를 때마다 엄청난 돈을 챙긴다’는 등의 근거 없는 비난이 더해졌다.

그토록 노력했건만 본심을 몰라주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에는 상처와 분노가 쌓여갔다. 끝도 모를 고통의 시간이 이어지면서 그대로 모든 것을 정리해 떠날까도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를 잡아 준 것은 ‘상에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법륜 스님의 법문과 지금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그녀를 지지해준 가족들이었다. 마을 주민들과의 불편한 관계는 3년이나 계속됐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매일 인근 거동사(巨洞寺)를 찾아 부처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이었어요. 문득 마을 주민들의 성난 목소리가 저의 업을 씻어주는 고마운 법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난의 소리가 커질수록 마음가짐을 더욱 바로 세우게 되고 그로인해 탐진치 삼독으로 짓게 될 악업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생기던지.”

마음의 움직임은 행동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상대의 마음을 돌리려는 행동 자체가 이미 아만에서 출발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거스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분명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줄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참회로 하루를 시작해 참회로 일과를 마무리했다. 청소년·가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계절마다 지역의 특성을 살려 산나물, 전원생활, 별보기 등을 주제로 축제마당을 열었다. 모든 행사에는 지역 주민들을 초청했고 마을의 어려운 일에는 부르지 않아도 내 일처럼 달려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마을 주민들은 그녀가 내민 손을 잡기 시작했다. 그녀를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니라 마을의 식구로 받아들인 것이다.

비난도 나를 깨우는 법문

2005년 조 보살은 마을 주민의 도움으로 보현자연수련원 내에 어린이집과 정보화센터를 설치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주민들의 마음에 보답코자 어린이·청소년 방과후 교실, 어르신 한글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보현자연수련원은 지역에서만 하루 200여명의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찾는 오는 사랑방이 된지 오래다.

“남을 이기려는 마음은 아상과 아집, 번뇌의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남이 던지는 욕은 신구의로 지은 삼업을 멸하는 명약임을 알아차린 것이 수련원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지요. 이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다른 분들에게도 알아차려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영천=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