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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야기하는 조선의 선비들

기자명 법보신문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한정주·엄윤숙 엮음 / 포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너무’ 존경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굶어도 책을 놓지 않은 선비를 은근히 높이는 일부 지식인의 행태는 결국 책을 현실과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 시대 율곡선생께서도 이렇게 지적하고 계시더군요.

“요즘 사람들은 독서가 일상생활이나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높고 멀어 실천하기 힘든 것으로 어렵게만 생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부와 독서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자포자기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p.17)

하지만 성현의 말씀이 담긴 책이니 정성을 다하여 읽고 사색하라는 당부로 점철된 이 책을 읽자면 독서라는 것은 여전히 글 읽는 거 말고는 할 것이 없는 양반의 자제들에게나 어울렸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가운데 책 읽기에 게으른 이들을 질타하는 내용에선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못난이들이 있었다는 생각에 은근히 동지애마저 느끼니 나도 참 고약한 성미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집에서 책을 구경해 보면, 대개 첫 번째 권은 해지고 더럽혀져 있다. 그러나 두 번째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는 손도 대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다. 글 읽는 사람의 뜻이 처음에는 부지런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게을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p.25)

요즘 서점가는 매우 화려합니다. 소박하게 만들어서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어차피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할 바에야 소수의 독자들에게 만이라도 제작비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더 화려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자연히 책값은 점점 비싸집니다. 그런데 이런 풍조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지 “책장은 가볍고 얇아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풍속은 크고 넓거나 두껍고 무거운 것을 좋은 재료로 여긴다. 그렇다면 옛날에 사용한 죽간이나 목찰을 쓸 것이지 왜 종이를 쓰는가?”(p.49)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마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과 같아서 오로지 빨리 성공에 접근하고 속성으로 성공을 구하는 기술만 찾는다. 반면 옛 성현의 글이 담긴 책들은 높디높은 다락에 묶어 처박아 두고, 매일같이 영악하게 남의 비위나 맞추는 글을 찾는다. 그리고 그 말을 도둑질해 시험 감독관의 눈에 띄도록 글을 지어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p.211)라는 유성룡의 글에서는 ‘○년 안에 ○억대 부자 되기’와 같은 책이 범람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논술과 관련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 출판 세태에 대한 질타를 느껴서 속이 후련하기까지 합니다.

절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한없는 희열에 몸을 떠는 정약용 선생 형제,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면 독서가 최고라는 주자의 말씀 등이 차분하게 나를 독서의 즐거움으로 다시 인도하다가 “책을 다 믿는다면 책이 세상에 없는 것만 못하다. 한번쯤 돌려서 생각해보라”(p.164)는 당부에서는 한번쯤 책장을 덮는 용기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혹시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없다는 분이 계시면 연천 홍석주 선생의 충고에 귀기울여보면 어떨까요.

“한 권의 책을 모두 읽을 만한 여유를 기다렸다가 책을 펼쳐 든다면 평생토록 독서할 수 있는 날을 찾지 못할 것이다.” (p.95)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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