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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봄엔 아파야 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風花日將老),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佳期猶渺渺).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不結同心人),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느냐(空結同心草).

이 시는 중국 당나라 때 여류시인 설도(薛濤, 770~832)의 ‘춘망사(春望詞)’ 4수중 세 번째다. 김성태(1910~) 작곡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창곡에 많이 꼽힐 만큼 친근한 가곡 ‘동심초’ 가사이기도하다.

이 시의 한글풀이는 김소월(1902~1934)의 스승인 안서 김 억(1896~?)의 것이다. 설도는 당시의 수도인 장안(長安)에서 태어났고, 하급 관리였던 부친의 죽음에 따라 가세도 기울어 16세에 ‘악적(樂籍-기생)’의 길에 접어든다.

어린 시절,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정원에 앉아서 나무 한 그루를 놓고 시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먼저 아버지가 “마당에 늙은 오동나무 한 그루, 줄기가 구름 속에 솟아있네(庭除一古桐, 聳干入雲中)”하자, 설도가 화답했다. “가지는 남쪽·북쪽의 새들을 맞고, 잎은 오고가는 바람을 보내는구나(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이 시를 들은 아버지는 울었다 한다. 뭇 새와 바람을 맞이하는 나무와 잎. 어찌하랴, 주인이 없으니. 그녀는 훗날, 열 살 아래의 원진(779~831)과 각별한 정이 있었지만 이뤄지지 못하고, 성도(成都)의 완화계(浣花溪)라는 냇가 대숲에서 홀로 살아갔다.

최근(5월 1일~2일), 우리 불일미술관에서 비구니 지연(기원사)스님이 회장으로 있는 ‘보림 꽃 예술 중앙회’의 꽃꽂이 전시가 있었다. 준비의 정성을 생각한다면 한 며칠 더해도 되지 싶은데, 꽃꽂이 전시는 흔히 하루만 한다나? 절정에서 잠깐 머물다 소멸된다는 것이 무척 허무했다.

‘아! 그래서 봄이 잔인할 수 있겠구나…’ 하긴 이 비장함이 미의 본질이기도 하다.

『화엄경』할 때의 ‘華’는 ‘花’와 함께 쓰인다. 꽃이 ‘因(원인)’이고, 부처님은 불법의 ‘果(결과)’에 해당된다. 어쩌면 봄은 개척자의 정신인지도 모른다. 꽃이 꽃에 머무르면 결실을 맺을 수 없다. 향기가 아까워 움츠리고 잎을 열지 않으면 다음 차원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힘들어도 포기할 건 포기하고, 아쉬워도 털건 털어야 하고, 아파도 떠날 땐 떠나야 한다. 인생의 가을과 겨울이 익숙한 것으로의 귀향이라면, 봄과 여름은 떠나고 땀 흘리는 노동이다. 미약할지라도 공을 들이고, 준비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할 일을 하는 것이다.
향기의 주인은 꽃이 아니다. 향기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의 것이다. 보살행의 원력을 갖는 순간, 이 향기는 바람을 타고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간다.

뒤뜰에 나갔더니 라일락이 지고 있었다. 이 봄이 흥미롭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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