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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자비심 99%분노 잠재웁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05.29 17:34
  • 댓글 0

전국불자교정인연합회 임 장 수 회장

<사진설명>임장수 전국불자교정인연합회장은 “마음 속 불덩이를 완전히 제압하는 것은 오로지 지극히 낮은 마음뿐”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 5월 24일 새벽, 임장수(56·각우) 거사는 갑작스런 상부의 지시에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1979년 10월 26일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주범 김재규의 사형집행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교도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지 겨우 1년밖에 안된 그에게 사형집행 참관 명령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형 집행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긴장한 것은 김재규 씨보다는 오히려 그였다.

김 씨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한 듯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따르며 무언가를 계속 읊조렸다. 김 씨는 마지막 종교의식마저 거절했고, 형은 곧바로 집행됐다. 그 순간 김 씨의 입에서 읊조리던 작은 공성이 또렷이 들려왔다. 그것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염송이었다. 짧은 순간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그의 지극한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고 그렇게 형장의 이슬이 됐다.

김재규 사형 집행 참관 후 귀의

충격이었다. 사법고시 준비를 위해 시작한 공직생활. 그러나 생과 사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장면을 목격한 뒤 더 이상 시험 준비는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간절해지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답을 찾는 것. 텅 비어 버린 그의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망자가 놓지 않았던 ‘관세음보살’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찾곤 했던 부처님. 목탁 소리, 범종 소리,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가. 임 거사는 그렇게 잠시 잊고 있었던 부처님과의 인연을 다시 맺으며 그 속으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우리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군사정권에 대항한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는 연일 계속됐고, 그로 인해 서울구치소는 시국사범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때론 그들이 수적 우위를 무기로 교도관들을 위협해 왔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그들이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성토할 상대는 오직 교도관들뿐.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던지 수형자들은 가슴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법을 집행하는 차원에서 폭력과 강압으로 이들을 제압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방법은 결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위협을 감수하더라도 진솔한 대화 상대로써 그들을 대해야만 마음속 불덩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때 지극히 필요한 것이 바로 낮은 마음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야 말로 재소자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최고의 방편이라 확신했다. 그렇지만 불법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편이 아닌, 한낱 교화의 도구로 여기지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마음을 여는 과정이 필요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당시 금서인 『붉은별』, 『사회인식론』과 같은 이념서적을 구해 수없이 읽었다.

실제 수용자들에게 에워싸여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낮은 자세로 다가오는 그를 알아본 몇몇 학생들이 나서서 보호해준 일도 있다. 근무가 24시간 3교대로 이뤄지다보니 불교 역시 대부분 책을 통해 접해야 했고, 잠시 짬이 나면 인근 사찰을 찾아 스님들께 법문을 청하며 신심을 쌓았다. 당시의 이러한 노력들은 고스란히 습이 되었고, 지금도 그의 손에는 불서가 떠나지 않는다.

불법은 변화 이끄는 최상의 방편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이르는 곳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모든 일을 부처님 모시듯 하라. 임 거사의 일상이 이렇지 않을까. 마음의 밭을 일구기 위해 불서를 읽고, 스님들의 법문을 되새기며 조그만 일에도 먼저 참회한다. 그의 서원은 단 하나, 재소자 없는 텅 빈 구치소를 하루라도 보게 되는 것. 부처님의 제자이기에 한때의 실수로 죄를 지은 중생들을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분별없이 대하고 그들이 지닌 불성을 찾도록 길을 밝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마음은 1996년 간첩 혐의로 구속 수감된 무하마드 깐수 정수일 교수를 만난 후 더욱 확고해졌다.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남파한 정수일 교수는 철저히 격리된 채 수감 생활했다.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정 교수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누구나 꺼리는 일이었고, 그 역시 어떠한 만남도 원치 않았다. 그런 정 교수가 마음을 연 단 한 사람이 바로 임장수 거사다. 임 거사는 ‘불교’를 주제로 그와 대화했고, 결국 발심해 수계까지 받게 했다. 부처님의 가피인지 정 교수는 불법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형량도 줄어들어 무기수가 5년 만에 출소해 2003년에는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우리 사회를 향기로운 불국정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옥중생들이 모두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님의 대원과 같은 성성한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부처님의 품으로 안내하는 길에 도반들이 함께 한다면 더욱 빨리 불국정토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자신을 비롯한 서울구치소 불자 교정인 모임인 ‘불심회’ 회원 30여명을 동산불교대학에 입학시켰다. 불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수용자들의 변화를 이끌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공무원불자연합회 창립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기관별로 움직이던 불자모임을 하나로 묶어 집중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3배, 4배로 발현할 것이라 믿었다. 또 올 5월 전국불자교정인연합회장으로 취임할 때에는 오탁악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불심을 심어주기 위해 ‘연꽃총재단’을 발족시켰다.

연꽃총재단은 총무원장 지관, 포교원장 혜총, 불국사 전 주지 종상, 통도사 주지 정우, 동국대 불교대학장 법산, 능인선원장 지광, 호법부 상임감찰 정현 스님, 김흥국 씨 등 교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동참, 대중의 참여 유도를 약속했다.

원망-분노 결코 용서 못 이겨

그는 교정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으로 사회의 지탄과 증오의 대상인 사람들을 하루에도 수 백 명 상대해야 한다. 정치, 경제, 조직폭력, 살인 등 다양한 죄목으로 사람들은 콘크리트 철창 안에 갇히고 김대중,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만났다. 그는 세상사람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미워하거나 분별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지장보살의 대원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배운 것도 많다. 그것은 원망과 분노가 결코 참회와 용서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 동일한 공간에서의 획일적 삶이지만 참회와 용서, 재기의 기회로 삼는 이들은 결코 또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다. 2006년 발표된 형사정책연구에 따르면 재소자 600명을 대상으로 재범률을 조사한 결과 불자의 재범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인 마음을 1%만 가져보세요. 1%의 자비심이 마음속 99%의 분노를 희망으로 변화시킵니다. 분노와 부정, 원한은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낮은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세요. 당신이 어려울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는 이는 이웃입니다. 그렇기에 이웃이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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