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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악몽을 꾼 사라나 비구

기자명 법보신문

원수 갚으려다 오히려 자신의 몸만 해쳐
분노는 깨달음의 씨앗 해치는 독의 근본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충족돼야 할 욕구 중의 하나는 바로 수면이다. 잠을 잘 자는 것. 이것이야 말로 먹는 것, 배설하는 것과 함께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할 조건인 것이다. 경전 속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편안히 깊은 잠을 주무신다”는 말씀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분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잡아함경』을 살펴보면 “성냄을 죽이면 편히 잘 수 있고 성냄을 죽이면 근심 걱정이 없다. 성냄은 깨달음의 씨앗을 해치는 독의 근본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성냄, 즉 분노를 가리켜 ‘깨달음의 씨앗을 해치는 독의 근본’이라고 했으니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서 날마다 편히 주무실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꿈틀거린다면 누구라도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 분노는 바로 나 자신을 해치는 가장 위협적인 적이 아닌가.

『잡보장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사라나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본래 왕자로 태어났지만 일찍이 수행에 뜻을 두고 출가했다. 수행자가 된 사라나 비구는 어느 날 우연치 않게 악생왕과 마주치게 됐다. 악생왕은 그의 궁녀들이 수행하는 사라나 비구를 칭송하는 것을 보고는 분노가 치밀어 사라나 비구를 붙잡아 때리기 시작했다.

매를 맞는 사라나 비구는 처음엔 ‘인욕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를 참았지만 고통이 점점 심해지자 ‘내가 속가에 있었다면 한 나라의 왕자로서 저 왕보다 세력이 못할 것이 없는데 출가하여 이런 욕됨을 겪는다’며 괴로운 생각이 밀려왔다. 결국 사라나 비구는 수행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스승에게 하직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제자의 마음을 눈치 챈 스승은 신통을 부려 사라나 비구로 하여금 환속한 후 악생왕과 전쟁을 벌이다 그의 포로가 되어 죽음을 맞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라나 비구에게 말한다.

“살고 죽는 싸움에는 어느 편에도 승리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현재에 이겨야 속이 시원하겠지만 장래 세상에서는 삼악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지금 매를 맞아 몸이 아픈 고통에 비할 것인가. 만일 네가 지금 생사의 두려움과 매 맞는 그 고통을 떠나려고 한다면 부디 그 몸을 잘 관찰하고 원한을 쉬어야 한다. 원수를 없애려면 먼저 번뇌를 없애야 한다. 이 세상의 원수는 아무리 중하더라도 고작 한 몸을 해칠 뿐이지만 번뇌라는 원수는 법의 몸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생기는 근본은 바로 번뇌에 있는 것이다. 너는 지금 번뇌란 도적은 치지 않고 왜 악생왕만을 치려 하는가.”

사라나 비구가 악몽을 꾼 것은 스승의 신통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만약 악생왕에 대한 분노를 품고 원수를 갚으러 나섰다면 그는 매일 밤 이보다 더한 악몽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분노는 마치 적을 제압하기 위해 내 손에 쥐어진 보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자신을 괴롭히는 은밀한 적이기 때문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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