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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첫 안거

기자명 법보신문

비가 그치고 나니 도량은 초록의 합창으로 가득하고 강물은 어느덧 바다에 이르러 흐름이 끊어지고 적멸에 들었다.

제방 선원은 지금쯤 정진의 열기로 달아오를 것이다. 봉암사에서 기라성 같은 구참스님들을 모시고 다각 소임으로 첫 안거를 지내던 때가 엊그제처럼 떠오른다. 지금 첫 철을 나는 스님들의 눈빛은 일진일퇴의 검객처럼 날카로워서 털끝만큼의 번뇌도 용납하지 않고 한 여름의 태양처럼 이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안거와 더불어 매실차를 담갔다. 지난 겨울 모진 추위를 견디고 코끝을 찌르던 매화가 속찬 열매로 잘 여물었다. 티끌 같은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어서 한 바탕 화두를 들고 일대사를 치러야 한다. 세상사에서 부딪치는 일들은 오히려 향기를 기르는 좋은 벗이며 향기 속에는 바로 열매를 감추고 있어서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바다처럼 초록의 광명을 나툰다. 한번 크게 죽어 깨달음의 빛을 얻었다면 빛을 감추고 일체경계로 활발하게 살아서 다시 나와야만 한다. 매실이 다시 곰삭아서 향기로운 매실차가 되어야 하듯이 덕과 지혜를 겸비하여 일체 중생의 목마름을 해갈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조 스님의 제자인 대매 법상 스님은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말에 깨닫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초암을 짓고 살았다. 어느날 마조 스님은 제자의 공부를 시험해 보고자 사람을 보내어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법을 설한다고 전했다. 이에 대매 법상은 그 노장이 뭐라고 하던지 나는 마음이 부처일 뿐이라고 했다. 이에 마조 스님은 매실이 익을대로 익었다고 인가를 해주었다.

마음은 부처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며 성품도 아니어서 일체 이름을 벗어났다. 마음은 한계를 지어놓으면 온전한 마음이 아니어서 마치 살아있는 생물에 자갈을 물린 것과 같다. 바다에서 갓 낚아 올린 성질이 급한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면 곧 죽어버리듯 마음도 이와 같아서 마음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마음이 아니다. 사람은 물고기가 한 번도 물을 벗어난 적이 없듯이 마음을 벗어난 적이 없지만 잃어버린 줄 알고 헤매고 찾아 나선다. 하지만 깨달으면 미망이었음을 안다.

마치 경에서 연야달다라는 사람이 자기 머리가 없어졌다고 사람들에게 묻고 찾아 헤매다가 갑자기 한번 부딪치는 바람에 머리를 확인하고 마음을 쉬어버린 것과 같다. 수행이란 이런 과정인줄 모르고 상을 부린다면 자기 얼굴에 분뇨를 바르는 것과 같아서 부끄러운 줄 알고 항상 하심을 하고 마음을 덕스럽게 써야 할 것이다.

거금도 금천 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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