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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차 수확기의 기쁨

기자명 법보신문

벗과 함께 햇차의 싱그러움 나눈 선조들

모내기를 끝낸 들녘, 땅내 맡은 벼들이 미풍(微風)에 일렁인다. 눈 두렁 사이 재두루미 두어 마리, 한 폭의 수채화처럼 싱그럽다. 초여름의 정경(情景)치고 이만한 절경(絶景)을 보기 쉬운 일은 아니다. 부처님께 차 공양을 올리러 가던 길에 우연히 마주친 광경이니 성의를 다한 후 얻은 여유, 부처님의 보상(報償)인가.

차 꾸러미를 만들어 벗에게 보냈다. 차를 만든 후 연중행사처럼 하는 일이니 손에 익숙하다. 몇 마디 안부쯤이야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無妨)하다. 이런 저런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차 속에 담긴 소박한 마음을 이미 느끼고 있을 터. 공연한 형식은 서로가 번거롭다.

우연히 간 책방에서 이숭인(1349~1392)의 「백염사혜차(白廉使惠茶)」를 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햇차를 받은 기쁨은 매한가지. 차를 받은 기쁨을 행간(行間) 속에 숨겼으나 은근한 그의 마음이 더욱 또렷이 드러났다. 도은(陶隱) 선생은 고려 말 문인으로 도은(陶隱)이란 이숭인의 호이다. 성균사성(成均司成)을 역임했으며 정몽주의 일당으로 몰려 조선 개국 후 유배되었으며, 후일 정도전 일파에게 살해되는 불운을 맞았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살았던 그는 차를 즐기던 인물답게 수편의 다시(茶詩)를 남겼다. 조선 초기의 사회적인 분위기이야 억불(抑佛)을 주장했지만 융성했던 고려의 음다 풍속이 일시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차를 전한 따듯한 마음을 노래한 이 많았으니 차의 진정(進呈)이야 어찌 변할 수 있을까! 도은선생의 「백염사혜차(白廉使惠茶)」는 백염사(白廉使)가 보낸 차에 대한 화답으로 서로간의 정을 이렇게 노래했다.

선생이 보낸 화전춘(火前春)
색향미가 하나같이 새롭구려.
천애에 떨어진 한(恨) 깨끗이 씻어주니
좋은 차는 가인(佳人)과 같음을 알았다네.
맑은 물 손수 끓여 차를 다리니
향기로운 푸른 차 더러운 흔적 씻어주네
내 비록 속된 세상에 창생(蒼生)이 되었지만
봉래산 신선들과 비겨 묻고 싶다네.

先生分我火前春 色味和香一一新
滌盡天涯流落恨 須知佳茗似佳人
活火淸泉手自煎 香浮碧椀洗暈
嶺崖百萬蒼生命 擬問蓬山刻位仙

화전춘(火前春)은 차의 이름이 분명하다. 청명절(淸明節)전에 딴 고은 차를 백염사(白廉使)가 보냈단다. 염사는 아마도 청렴한 관리인 듯, 좋은 차 벗에게 보낸 정리가 더없이 아름답다.

햇차의 싱그러움은 고금(古今)이 같은 것, 색과 맛, 향기가 하나같이 새롭단다. 맑은 물 손수 끓여 홀로 차를 마셨으니 선경(仙境)에 드는 이치 이미 옛사람이 증명했다. 차의 품성을 이른 말, 가인(佳人)이든 군자(君子)이든 같은 의미. 차를 마시는 공효(功效)는 몸과 마음이 모두 깃털 같아서 봉래산 신선도 부럽지 않나 보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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