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의는 ‘기복 없는 종교가 존재할 수 있으며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 하는 문제와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는 법계 현상(본래면목)을 깨닫지 못한 범부 대중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올바른 접근 방법인가’ 하는 문제부터 성찰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
우선 기복 없는 종교가 존재할 수 있으며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의 문제이다.
깨달음의 경지, 아라한의 경지에선 복을 기원하는 그 자체가 번뇌요 망상이며, 기복 하는 마음이 밝음을 가려 실복(失福)하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사실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서원마저도 없애는 게 참다운 부처님의 가르침이며 기복은 궁극의 불교가 아니라는 말씀을 수긍한다.
그러면서도 미물(迷物)인 탓인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기복 없는 종교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깨달은 분들의 세계에 무슨 종교가 필요하겠는가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대답은 쉬우리라 믿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복’의 이해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세속적인 부귀와 영예를 버리고 고행의 길을 택하신 부처님의 결단을 생각해 보아야 하고, 超生了死하는 大覺의 기쁨보다 세간의 부귀영화가 더 행복하다면 누가 출가를 하겠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결국 즐겁게 살자고 수행하고 즐겁게 살자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이 또한 기복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낱 범부인 필자가 부처님의 품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필자가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필자가 바보로 보일 수도 있고 미련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편안하게 골프나 치며 건강이나 돌보며 즐겁게 지내지, 주중 골프를 즐기며 지내던 친구들과 거래처 고객들을 다 멀리하고 왜 불교TV에 미쳐 지내느냐는 많은 친지와 지인들의 비아냥이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필드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보다, 넓은 사무실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보다, btn가족들과 함께 하는 고생이 더 행복하기에 필자는 btn을 떠나지 못한다. 이것은 저급한 기복에 속한다고 해야 할까?
어떤 불자가 세속의 복잡함을 피해 사찰에서 기도함으로써 얻어지는 행복 때문에 계속 불자로 자리 매김 된다면, 이는 기복이어서 참된 불자가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전을 읽으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경전 구절을 두고 깊은 기도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 순간 그 참뜻이 맑게 다가올 때의 행복감을 위해 기도하는 불자도 많다.
깊은 기도 없이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하시는 불법승’, ‘동체대비’, ‘화광동진’, ‘중중무진 인다라망’이라는 말씀의 참뜻에 접근할 수 있을까? 부처님과 대 보살님들의 말씀을 증득했을 때의 기쁨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 이밖에도 병을 낫기를 바라는 기원, 아기를 낳게 해 달라는 기원, 재화를 얻게 해 달라는 기원, 공부를 잘 하게 해 달라는 기원, 좋은 곳에 환생하기를 바라는 기원 등 여러 가지 작은 바람을 갖고 절을 찾는 불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서원이자 동시에 기복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범부 중생들의 세계에서는 기복 없는 종교는 존재할 수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고 여겨진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깨달음의 경지에서는 기복 그 자체가 수행에 걸림돌일 수가 있으며, 궁극엔 종교다 불교다라는 이름에 얽매여서도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수덕(불교텔레비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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