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경』 ⑭
『무량수경』 ⑭
  • 법보신문
  • 승인 2007.06.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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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위주의 자비는 독약일 뿐이다

잘 나가던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위기에 봉착한다. 착실하던 아들이 돌연 삐딱한 행동을 한다. 깊은 우정을 다지던 친구가 몹쓸 짓을 저지르고 잠적한다.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벌어지는 일들로 산적한 인생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참으로 견디기 힘든 현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여부가 참된 삶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범부(凡夫)는 범부로서 익숙하던 현실(現實)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 가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스스로 그 안에 갇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위주의 자비(慈悲)가 독약일 수도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범부는 제게 익숙한 현실에 갇힌다

알코올중독자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 벌컥 화를 낸다. 그 상대가 부모이든 형제이든 친구이든,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다. 갖은 욕을 퍼붓다가 안 되겠다싶으면 칼이라도 들고 덤벼들 태세다. 알코올중독자의 처지에서는 술 먹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이 악마보다 더 못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어리석은 범부라고 지적하신다. 생각해보라. 그 사람이 앞으로 제대로 살려면, 알코올에 대한 욕구의 좌절 즉 단주(斷酒)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유일한 필요충분조건이다.

한계 속의 자기만이 있다고 착각하는 범부는 일으키는 생각마다 두려움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소득이 있어도 “얻은 것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행복의 자리에서도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하는 식으로 끝없는 생사(生死)의 수레바퀴를 스스로 굴리며, 그 범주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절대적인 위기상황을 시시각각 맞이하면서도 자신이 범부임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죽음이라는 현실을 앞에 두고서도, “어떡하면 극락왕생할 수 있겠는가?”하면서 비방(秘方)이나 물으러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비방을 묻는 그 마음이 삿된데, 가는 곳이나 만나는 사람이 삿되고 따라서 결과도 삿되리라는 것은 불 본 듯 환하다.
이렇게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제멋대로 뻐기다가, 한계를 맞고 나서야 “아하, 이거 가지고 안되겠네” “그래 술만 가지고는 안되겠네”하면서 꼭 당해봐야 안다. 그러니 이보다 한심한 인생도 다시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태어난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 절대절명(絶代絶命)의 위기를 감당해 줄 다른 사람이 있을까? 단정하건데 아무도 없다. 자기 이외의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엄연한 인생살이다. 자식 대신 물 한 컵도 못 마셔주고, 부모 대신 밥 한술도 못 먹어준다. 형제가 넘어져서 생채기가 나도 대신 아파할 수가 없다.

대리인생(代理人生)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관심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삶이라는 게 본래 그러하니 어쩌겠는가? 때문에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고, 혼자 가고 혼자 온다”

부여된 사명은 스스로 해결해야

물론 이는 무척이나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기만은 예외일 것 같다. 하지만 태어날 때 누구하고 손잡고 태어난 적이 없듯이, 죽을 때 같이 죽자고 하는 사람은 보았어도 그 소원을 이룬 사람 또한 보질 못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혼자 와서 혼자 가는데, 따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태어날 때 혼자 태어난 것처럼 죽을 때도 혼자 죽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부여된 사명은 스스로 마무리하여야 한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지 못한다. 안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못해준다.

그러므로 자신이 범부(凡夫)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 반성적인 인식이 확실한 사람에게는 구원의 빛이 떠나지 않는다. 나의 참생명인 부처님생명께 온전히 의지한다는 역설이 성립하기에, 부처님의 이끄심에 따라 자연히 극락왕생은 약속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여여 문사수법회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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